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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계좌에서 돈 빼내는 부자들, 그들 돈은 어디로…


입력 2014.11.26 12:18 수정 2014.11.26 15:56        이충재 기자

금괴-금고 '2金' 호황…비과세 보험 '큰손' 몰려

한 은행지점에서 은행직원들이 예금주들과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 은행지점에서 은행직원들이 예금주들과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어제는 월납 8000만원 비과세 보험 가입자가 들어와서 대박쳤죠”

A보험사 관리자 박 모씨는 26일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금융실명제 강화를 앞두고 자산가들이 은행에서 현금을 들고 빠져나와 비과세 보험으로 ‘피난’을 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씨는 “지난주에는 한 사업가가 월납 1억원짜리 상품에 도장찍을 찍었다”며 “평균적으로 각 지점마다 월납금액 2000만원 이상 고액 비과세 보험이 하루 한건 이상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자산가들의 ‘피난’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오는 29일 시행되는 개정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앞으로 차명계좌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액 자산가들은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최대 41.8%에 달하는 누진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끼리 자금을 분산해 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이를 피할 방법이 없어진다.

차명거래로 인한 탈세 등이 적발되더라도 회피한 세금만 더 내면 됐는데 이제는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게 된데다 공소 시효까지 없어져 평생 족쇄로 따라다니게 된다. 이에 현금 거래가 많고, 소득 노출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써왔던 사업가들은 돈다발을 옮길 곳을 찾느라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뭉칫돈은 어디로? 금고+금괴 '2金 시대'열리나

특히 금융실명제 강화로 인한 여파로 자산가들의 예금이 개인금고나 금괴로 몰리는 이른바 ‘2金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에서는 10억원 이상 돈을 맡긴 고액 예금자들의 예금 총액이 지난 5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뚜렷한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고액 예금자가 가장 많은 하나-신한-우리은행의 예금 총액은 지난달 14조4000억원으로 지난 4월보다 3조원 이상 줄었다.

하나은행의 경우, 10억원 이상 돈을 맡긴 고액 예금자의 예금 총액이 10월말 현재 7조원으로 지난 4월 말 7조 6000억원에 비해 6000억원이 빠져나갔다.

우리은행도 10억원 이상 고액 예금 총액이 10월말 4조 2000억원으로 지난 4월(4조 7000억원)에 비해 4000억원 가량 줄었고,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1000억원 이상 줄어들어 5조 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한 시중은행 PB는 “고액 자산가들은 소득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예금을 꺼낸 뒤 5만원권으로 만들어서 장롱에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이런 상황에선 자산가들이 금고나 금괴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 굴리기가 마땅치 않은 서민들은 분위기는 정반대다. 올해 10월 말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은 562조 원으로 4월 말 555조2000억 원에 비해 6조8000억 원 가량 늘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서민들은 정기예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5만원권 환수율 19.9% '장롱으로 숨었다'

자산가들의 현금이 음지로 향하는 부작용이 관련 법 시행 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취지를 벗어난 개정안”, “반쪽짜리 실명제”, “음성화 부추기는 실명제”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일부 자산가들이 금융실명제 강화에 대비해 고액권을 장롱에 쌓아두면서 ‘5만원권 품귀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7~9월) 5만원권 환수율이 19.9%에 불과했다. 100장이 발행돼 20장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이후 10%대 환수율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뭉칫돈이 향한 또 다른 곳은 금괴였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1㎏당 5000만원 가량인 골드바의 판매는 지난달 132㎏으로 지난 1월 (68㎏)에 비해 두배 가량 증가했다.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인 4월에는 59kg였던 판매량이 5월에는 94kg으로 크게 늘었다.

실버바의 판매도 크게 늘어 지난 4월 470㎏이었던 판매량이 5월 740㎏으로 증가했고, 지난달에는 980㎏까지 치솟았다. ‘금-은’ 판매량 증가 역시 금융실명제 강화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금융실명제 강화가 오히려 지하경제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29일 법 시행 전에 자산가들의 돈이 빠져나갔는지 몰라도 결국 언젠가는 그것이 돌아와서 과세가 된다”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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