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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부? 단통법 보니 창조는 커녕 미래도 없다


입력 2014.11.16 10:06 수정 2014.11.16 10:10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도덕적 명분 확보가 세상을 바꾼다는 '멍청한' 관료들

전국 휴대폰 유통망 단체인 전국이동통신협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종각 앞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전국 휴대폰 유통망 단체인 전국이동통신협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종각 앞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시간여행을 해보자. 1993년 방글라데시 아동들이 월마트(Walmart)에 납품하기 위해 만든 의류의 생산 현장이 공개되었다. 작업환경과 급여가 좋을 리가 없었다. 미국 언론은 아동 노동착취로 대서특필했다. 곧이어 사회적 공분(公憤)이 이루어졌다.

아이오아주 상원의원 탐 하킨(Tom Harkin)은 아동 노동착취를 금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미성년자가 만든 의류의 ‘미국내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국가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방글라데시를 겨냥했다. 미국의 의류 수입이 중단되자 방글라데시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동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부모의 품으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길거리의 아이들’로 남았다. 길거리가 공장보다 좋을 리는 없다. 그들에게 공장은 미래의 꿈을 키우는 곳일 수도 있다. 도덕적 ‘명분확보’가 세상을 바꾸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인권과 아동복지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명분만 확보한다고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킨 법안은 그 후 ‘예기치 않은 결과의 가설’(hypothesis of unintended consequency)의 전형으로 교과서에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문제의식도 비슷했다. 약삭빠른 사람은 많은 보조금을 받아 고가 단말기(휴대폰)를 거의 거저 사다시피 하지만 정보에 어두운 노인들은 같은 단말기를 비싼 가격에 구매해, ‘호갱’(호구에 고객을 더한 합성어로 어리석은 고객을 의미)으로 조롱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또한 보조금을 기습적으로 살포해 소비자를 새벽에 이통통신 대리점에 줄 세우는 것이 고객에 대한 예(禮)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단통법의 명분은 “보조금(제조사 장려금 포함) 지급과 관련된 투명성을 제고하고, 소비자에 대한 차별대우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단통법 시행으로 이동통신사는 제조사 장려금을 포함해 최대 30만원 까지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보조금 상한규제), 이동 통신사는 1주 단위로 보조금을 사전에 공시해야 한다.

단통법 시행 후 이동통신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신규 가입자와 번호이동 가입자가 급감하고 중고폰 가입자는 급증했다. 소비자가 ‘보조금 감소’에 합리적으로 반응한 결과다. 하지만 영세 판매·대리점은 죽을 맛이다. 당장 생계가 끊길 지경이다. 단말기 제조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통신시장은 포화상태이고 통신요금은 ‘인가제’로 묶여 있다. 따라서 유일한 경쟁수단은 보조금 밖에 없다. 그동안 보조금 경쟁이 과열로 치달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장이 혼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조금 혼탁을 일거에 해소하겠다고 빼든 칼이 단통법이다.

방아쇠가 당겨진 것은, 단통법 발효 후 ‘첫 보조금 공시’에서 통신 3사 모두 법적 상한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공시해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만약 한 통신사가 ‘통 큰 보조금’을 공시하면 상대방도 방어를 위해 똑 같이 통 큰 보조금으로 대응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고객을 유치하지도 못하고 보조금 부담만 커지게 된다.

이 같은 예상이 공유되면 누구도 통 큰 보조금을 공시하지 않는다. 전략적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통법은 이통사들로 하여금 ‘일주일 간격으로 일주일간 유효한 보조금’을 공시토록 하고 있다. 이 같은 경기규칙은 차라리 ‘각본’에 가깝다. 경쟁은 상대방의 허(虛)를 찌르는 것이다. 따라서 단통법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의 보조금경쟁 마저 작동하지 않게끔 하고 있다. ‘싸우는 척’ 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암묵적 담합에 이를 수 있다.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지급 차별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은 예전에 비해 단말기를 비싼 가격에 사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단통법은 '전국민 호갱법'이 되고 말았다. 통신시장에 대한 이해부족과 명분에의 포획이 빚은 ‘정책 실패’인 것이다.

현실이 빗나가자 당국은 단통법 실패의 희생양을 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분리공시를 강제하지 않아, 즉 이동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보조금과 장려금을 분리공시하지 않아서 ‘규제실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리공시 여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중요한 것이지, ‘그 구성과 원천’에는 관심이 없다. 예컨대 제휴카드 할인에서 카드사와 가맹점이 각각 얼마를 부담했는지를 알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할인율이다.

분리공시 강제는 국가가 강제로 단말기 제조업자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제조사가 국내에 지원하는 장려금이 해외에 비해 높으면, 제조사는 세계에 판매하는 모든 단말기에 동일한 장려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판매 장려금은 신상품의 수요가 불확실한 경우 통신업자의 위험을 분담해주는 완충 역할을 하며 ‘초기 채택자(early adopter)’를 불러 모으는 유인책이기도 하다. 한국이 IT 강국의 면모를 갖춘 데에는 초기채택자의 기여가 컸다. 제조업자의 합리적 경제 계산에 따른 차별적 장려금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

통신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국가에서 임차해 통신업을 수행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규제가 당연하지만 제조사는 인·허가와 무관한 전문 제조업이기 때문에 통신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부과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통신시장은 포화상태이고 통신요금은 ‘인가제’이다. 통신요금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입자 유치를 위한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 같은 상횡에서 단통법으로 보조금을 규제하면 통신사간 시장점유율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이동통신 사업자의 신규진입은 여지없이 봉쇄된다.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면 소비자도 피해를 입게 된다.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려면 통신사업자 간의 요금 인하 경쟁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자동차의 경우, 소비자의 허리를 휘게 하는 것은 자동차의 초기 구매비용이 아니라 휘발유 등 유류가격이 비싸서다. 마찬가지다. 단말기 가격보다 통신요금이 더 중요한 변수다. 현재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지출 규모를 볼 때,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폭은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통신요금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인·허가권을 움켜쥔 것이 원죄인 것이다.

단통법은 미래부의 첫 작품이다. 하지만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차별을 해소시키고 통신요금인하를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규제로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미래부에 대해 ‘창조적이지도 않고 미래도 없다’는 힐난이 왜 나왔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글/조동근 명지대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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