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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이제 당연해야한다


입력 2014.10.30 09:27 수정 2014.10.30 09:31        이상휘 대표

<칼럼>박 대통령의 약속이행 새로운 정치문화 이루는 첫걸음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5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5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했다. 취임 후 두 번째다. 작년에 약속했다. 해마다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겠다고 말이다.

국회법 84조가 있다. “행정부의 예산 결산을 국회 소관 상임위 회부하고, 소관 상임위는 그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한다.” “이 경우 예산안에 대해 본 회의에서 정부 시정연설을 듣는다.” 명시된 바와 같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한 것이다. 불과 4명의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했다. 그것도 재임기간 동안 단 한차례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시정연설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삼권분립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다. 취임 첫해만 하고 주로 총리가 대독했던 탓이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대통령 중심제라는 특성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논쟁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연설이라고 한다. 매년 1월과 2월 사이에 대통령이 직접 연설을 한다. 1790년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그 첫 번째다. 이후 미국도 대독을 했다. 서기를 보내 대신 읽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하는 관례는 1913년부터다. 윌슨 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었다. 상원, 하원의 연합회의때 반드시 대통령이 직접 하도록 한 것이다.

재미있는 비교가 있다. 우리나라의 시정연설은 후유증이 있다. 연설할 때도 여러 형태의 반발행동도 있다.

2003년 10월, 고 노무현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했다. 환영하거나, 내용에 답을 하는 박수도 없었다. 대통령이 입장할 때도 여당만 기립박수를 보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십명만 기립으로 맞았을 뿐이다.

물론 시정연설의 내용이 박수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측근비리와 관련해 재신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2008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했다. 야당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연설내내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등 딴전을 피웠다. 민노당은 경제정책에 항의하며 단체로 퇴장했다.

또다시 5년이 지났다.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했다. 야당의원들은 침묵했다. 입장시에도 기립하는 것에 인색했다. 일부 의원은 연설 도중에 퇴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이런 것이다. 정상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예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정전반에 걸쳐 국민 앞에 설명하는 것이다.

굳이 국가 통수권자임을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예우를 갖추고 존중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렇치 않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그 자체로 존중한다. 회의장 입장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대통령의 경호 책임자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의장각하, 미합중국 대통령이 입장합니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일까? 순수한 대통령의 존엄 때문이다. 목소리만으로 주위를 환기시켜 대통령의 입장을 알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위를 그렇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또한 연설내용이 담긴 봉투를 하원의장과 부통령에게 전달한다. 이후부터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연설의 격식에서 부터다. 물론 연설도중에 반발하는 행동은 없다. 고성이나 야유도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입장시에는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만약 대통령의 연설도중에 고성이나 야유를 하면 거센 역풍을 맞는다. 비판하는 방법도 합리적이다. 연설이 끝난 뒤 국정연설 반론을 공식적으로 한다. TV녹화를 통해 하는 것이다. 1966년부터 그랬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부러운 정치문화가 아닐 수 없다. 권위란 서로 존중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두 번째다. 다행히 볼썽사나운 일은 없다.

대통령은 많은 얘기를 했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비판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시정연설의 의미는 다른데 있다.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에 대한 정신이다. 국회를 존중하는 게,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행동으로 먼저 실천했다. 비록 미국이나 유럽처럼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의미있는 두 번째 시정연설인 것이다.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첫 걸음인 셈이다. 그게 민생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다. 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다듬어 지는 법이다. 두 번째 시정연설에 큰 의미를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국민을 존중하는, 세 번째 시정연설을 기대해 본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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