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연설전문이라는 유령이 국회를 배회한 이유는


입력 2014.10.30 09:07 수정 2014.10.30 09:12        최용민 기자

<기자수첩>시정연설 일부매체에게만 먼저 배포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잠재적 문제아' 취급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2015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2015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대통령의 말은 가장 중요한 기사 원천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정 운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연설 등 공식적인 발언이 있을 때 이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먼저 배포하는 이유는 단순히 '말'을 보기 위함이 아닌 그 배경과 향후 전망까지도 고민할 깊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 전 청와대 출입기자보다 국회 출입기자가 연설문을 먼저 받아보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알고보니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부 매체의 출입기자만을 상대로 연설문 전문을 먼저 배포한 것이다. 이 연설문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회 출입기자에게까지 전달됐다.

청와대 출입기자도 받아보지 못한 연설문을 국회 출입기자가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까? SNS의 위력을 아직도 청와대는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일부 매체의 기자에게만 연설문을 전달하면 그들은 그 연설문을 꽁꽁 숨겨 놓고 있을 것이라고 황당한 생각을 설마 청와대가 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기자도 같은 시간 청와대 춘추관이 아닌 SNS를 통해 연설문을 받아보는 황당함을 경험했다. 청와대 상시출입기자로 등록은 물론 출입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SNS를 통해 연설문을 보내 온 청와대 출입기자도 연설문을 보내오면서 청와대 출입기자가 외부로부터 연설문을 받았다는 황당함을 토로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시간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연설문 전문을 미리 배포해 발생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전에 연설문을 미리 배포했을 때 아직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대통령이 연설문 그대로를 읽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결국 오보가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해명에 의문이 생긴다. 그럼 일부 매체에는 왜 미리 전문을 보냈다는 말인가? 일부 매체의 경우 전문을 미리 줘도 이같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지만 다른 언론사들은 이같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마치 일부 매체를 제외한 언론사를 미리 범죄자(?) 취급을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순간 청와대에서 본 기자를 '잠재적 문제아'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또 청와대는 이같은 자신들의 행동이 관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흡사 이 말은 청와대가 언론사를 구별하고 언론에 대한 정보 공유 여부를 알아서 정리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관행은 문제가 생기면 바꾸는 것이 상식이다. 청와대에서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춘추관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든 기자들에게 똑같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대변인실에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일은 대변인실에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입을 대변하고 있는 대변인실이 이렇게 언론사를 구별하고 있다는 것은 곧 대통령이 언론사를 구별하고 있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충분하다. 무슨 의도인지 어떤 의미인지 대변인실의 답변이 궁금할 뿐이다.

최용민 기자 (yongmi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최용민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