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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실패 책임, 삼성전자에 과녁 맞추는 의도는?


입력 2014.10.21 11:00 수정 2014.10.21 11:18        데일리안=이강미 기자

<이강미의 재계산책> 정책실패 인정 대신 책임전가 점입가경

통신요금 인하 취지 단통법,정작 통신요금 핵심문제는 쏙 빠져

시민단체 '컨슈머워치' 회원들이 지난 8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위한 거리 캠페인을 하며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 '컨슈머워치' 회원들이 지난 8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위한 거리 캠페인을 하며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단말기유통개선법(이하 단통법) 파국을 둘러싼 정치권의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정책입안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있는 자세는 고사하고, 정책실패의 불통이 튈까 전전긍긍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기에만 바쁜 모양새다.

법을 만든 장본인인 정부는 지난주 제조사ㆍ통신사 CEO를 긴급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특단의 대책’까지 언급하며 기업에 엄포를 놓았다. 단통법의 취지에 맞게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에 단말기 값을 찍어 누르고 보조금을 인상하라는 강요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통법을 입법발의한 여야 의원들도 단통업 실패원인을 제조사 탓으로 돌리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정작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건 정부와 정치권이다. OECD국가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묵은 요금인가제와 보조금상한제로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 ‘담합’을 조장하고, 공정한 거래 대신 불공정을 부추기는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책실패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기는 커녕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단통법 정책실패의 원인을 제조사로 돌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삼성전자를 겨냥하고 있다.

단통법이 성공하려면 분리공시를 해야하는데, 삼성전자가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법안이 되면서 단통법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투명하게 단말기 장려금을 공시함으로써 누가 어디서 단말기를 구입하든지 동일한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이를 따라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단통법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여러가지 헛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같은 부작용들은 분리공시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이는 게임판에서 참여자들에게 판돈을 배팅을 하기 전에 패를 먼저 까 보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통법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가격공시제도이다. 기업이 정부정책을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자유시장에서의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된다. 상품의 가격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제품이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에서 뒤떨어지면 낙오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이다.

특히 공산품인 단말기는 글로벌 IT시장에서 첨단 기술전쟁과 특허전쟁을 펼치고 있는 분야이다. 이는 기업의 존폐가 달린 문제다. 최근 실적이 반토막난 삼성전자 내외부에 언제 노키아처럼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치산업인 통신은 다르다. 전형적인 내수산업인데다 규제산업이다. 이통사들은 공공재인 주파수를 국가에서 임차해 통신업을 수행하는 사업자이다. 통신사들이 규제당국의 규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요금인가제란 이름으로 정부가 앞장서 이통사들의 '담합'과 '독과점'을 조장해 왔던 것이다.

제조사는 인·허가와 무관한 전문 제조기업이다. 통신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규제를 풀어 기업활동하기 좋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정책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로 기업을 옭아매려 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제학 이론에도 없는 '공평한 가격'이란 감언이설로, 반기업 정서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데일리안 산업부/이강미 부장 데일리안 산업부/이강미 부장
당초 단통법은 소비자권익 차원에서 통신요금 인하를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통신요금문제를 손댔어야 했다. 하지만 단통법은 단말기 가격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단말기값이 지나치게 비싸고, 이 때문에 통신시장의 과열양상을 초래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통신시장의 과열은 이통사끼리 도를 넘어선 고객뺏기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오히려 엉뚱한 곳에 화살을 날리고 있다.

이를두고 업계 일부에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일명 ‘통피아’(통신+마피아)때문이란 견해가 있다.

방송·통신분야가 규제사업이다보니, 어쩔수 없이 인·허가권을 거머쥔 미래부와 방통위, 그리고 이통사들간 인적·물적으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철의 삼각끈’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통사들은 각사별로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50명까지 대외협력(대관) 인력들을 배치해 국회, 정부 등 이른바 힘센 기관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미래부와 방통위 등 관련부처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왔다. 이들이 이른바 '통피아'를 형성해 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업계에 유리한 쪽으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 왔다는 것이다. 현재 통신3사에서 영입한 관련부처 출신 임원들이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단통법이 재개정되더라도, 또다시 이통사에 유리한 쪽으로 입김이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단통법 통신대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통피아부터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가계통신비를 낮추려면 통신사업자간의 요금인하경쟁이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여년간 지속돼 오면서 이통사들의 독과점을 묵인해온 요금인가제부터 폐지하고, 자율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통신요금은 쏙 빼고, 단말기 가격만 어찌해볼 요량이다보니 자꾸만 정책혼선을 빚고, 시장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더이상 파국을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 정책실패의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된다. 시간이 흐르면 안정화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도 접어야 한다. 현행 단통법 파국이 분명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재개정 대신 하루속히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강미 기자 (kmlee50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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