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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대한민국 외환위기에서 구하고 산화”


입력 2014.10.17 16:26 수정 2014.10.17 20:20        조진래 기자

15일 토론회서 좌승희 교수 "박정희식 경제정책 지속했으면 대우 건재"

박정희식 경제정책이 지속됐다면 대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일 부산 남구 부경대학교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식 경제정책이 지속됐다면 대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일 부산 남구 부경대학교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과 좌승희 KDI 정책대학원 교수. 한 사람은 (주)대우의 마지막 대표로, 다른 한 사람은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마지막까지 김우중 회장을 보필했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김우중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했나’를 주제로 시민정책연구원(대표 김강수)이 15일 연 토론회에서 다시 만나 주목을 끌었다. 그들 만큼 대우와 김 회장의 마지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우의 해체가 대우의 잘못 이전에,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재벌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의 턴 어라운드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망할 지도 모른다며 제조업 기반의 산업경제 시스템 재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좌승희 "박정희식 경제정책 지속됐다면 대우 안 망했다"

좌승희 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대우그룹이 M&A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박정희식 경제정책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잘 하는 기업 도와준다”는 경제철학 덕분에 능력있는 기업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며 대우가 그런 기업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박 대통령 재임 18년 동안 한국 경제가 꾸준히 역동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좌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면서 “시장은 항상 우수한 기업을 끌어올리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좌 교수는 "그러나 80년대 중후반부터 박 대통령과는 반대로 가는 게 옳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며 아쉬워 했다.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분 하에 대기업 지원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하향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나마 잘 하는 중소기업을 더 지원해 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결국 모두가 나눠갖는 ‘n분의 1 경제’ 시대가 왔다고 좌 교수는 주장했다. 이런 하향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대한민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게 되면서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 희생양이 대우그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 회장을 “한국경제를 외환위기에서 구출하고 산화한 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1조원 규모의 국내 설비를 풀가동해 수출하면 위기 극복이 가능할 것임을 끝까지 주창했고 실제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직접 만들어 내 위기 탈출의 기반을 다졌으나 정작 자신의 그룹은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좌 교수는 “대우가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역동적인 기업성장 신화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시장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이긴 사람에게 성과를 몰아주던 박정희 식 모델이 계속됐더라면 대우의 상황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장병주 "외환위기는 기업들 책임이 아니라 정부 책임"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관료들의 잘못된 보고에 크게 섭섭했음을 토로했다. 대우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충분히 회생할 수 있었는데, 고위 경제관료들이 오히려 부실을 부풀림으로써 대우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우그룹의 몰락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장병주 전 대우 대표(오른쪽)와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환란의 랙임을 기업에만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대우가 위기극복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안 대우그룹의 몰락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장병주 전 대우 대표(오른쪽)와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환란의 랙임을 기업에만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대우가 위기극복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안

장 회장은 대표적인 예로 수출 금융 문제를 들었다. 1998년 6월에 당시 한국경제연구원장이던 좌 교수는 김 회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경상수지 흑자 확대 방안’을 공개했다. 당시 정부가 IMF 처방에 따라 고환율 정책을 펼 때였으니 수출금융 지원 등을 제대로만 해 주면 50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도 가능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관료들은 코웃음을 치며 “대우가 위기를 모면하려 꼼수를 부린다”고 깎아 내렸다. 그러나 그 해 수출금융 지원도 받지 않았음에도 대우는 143억 달러, 국가 전체로는 416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이후 대우에는 배제됐지만 수출금융이 지원되었고 덕분에 이듬해에도 역시 큰 폭의 경상흑자를 기록, 한국은 IMF에서 조기졸업할 수 있었다.

장 회장은 이에 대해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IMF에서 꾼 돈이 210억 달러였다”며 그 정도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음을 안타까와 했다.

그는 대우의 성과나 부실에 관해서도 잘못된 보고가 많았다고 했다. 당시 고위관료들은 대우가 가공수출로 밀어내기를 해 흑자를 크게 부풀렸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장 회장은 “그렇다면 해외에 재고가 쌓여 있어야 하는데, 나중에 감사해 보니 전혀 그렇질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봉균 수석 등이 사실대로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다.

장 회장은 외환위기의 근원을 기업으로 몬 정부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YS(김영삼) 정부 때 OECD 가입 후 환율 관리를 못해 대규모 적자를 낸 게 외환위기의 시작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단기금융회사에 외환거래를 허가해 준 게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보나 기아를 위기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만 안 맡았어도 대우 망하지 않았을 것"

좌 교수는 “결과적으로 세계 경영이 대우 실패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 회장이 해외사업에 매진하느라 국내 실정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OK하면 모든 게 성사됐지만, 이젠 실무진이 틀면 안 될 수도 있다는 바뀐 메카니즘을 파악하고 인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좌 교수는 “다른 그룹 회장 가운데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지 않았다면 대우가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로 전경련 회장직을 맡은 후, 대우 보다 국가 경제를 생각해 날선 비판을 많이 하게 됐고 그것이 결국 화를 불렀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장 회장은 김 회장과 DJ 간 인연도 소개했다. “DJ가 대선에서 지고 정계은퇴 선언 후 영국으로 갔을 때 음으로 양으로 김 회장이 도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였을까. DJ가 1998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을 때,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그 만이 유일하게 IMF와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미셸 깡드쉬 IMF 총재가 급히 날아와 재협상 포기 각서를 받고, 이후 클린턴 대통령까지 방한해 “5대그룹의 구조조정이 미진하다”고 협박하면서 모든 게 무산됐다고 한다. 장 회장은 “당시 DJ가 북한과 뭔가 만들어 보려 할 때 였고, 미국의 도움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어쩌지 못했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대기업에 대한 인식 전환 없으면 대한민국 미래 없어"

좌 교수는 “요즘처럼 기업과 기업인을 낮게 평가하는 사회에선 경제발전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른바 재벌기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관료들에 대한 고언(苦言)도 잊지 않았다. “6공화국 때 까지는 박정희 대통령 때 뽑은 인재들이 ‘갑(甲)질’은 해도 경제는 제대로 굴러가게는 했는데, 이후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좌 교수는 특히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사실상 우리 관료들의 작품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IMF 구제금융 받은 나라 중에 기업구조조정까지 강제한 나라는 우리 뿐인데, 기업을 손보려던 관료들이 이 참에 20년 동안 갖고 있던 기업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다 틀어 넣었다는 것이다. 못미더운 기업을 통제하려고 우리 정부가 IMF 프로그램에 온갖 규제를 끼워 넣었다는 얘기다.

장 회장도 “당시 공무원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겠지만 종합적인 안목이 부족하지 않았었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관료들 가운데 재무부 쪽은 반(反)기업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기획원 쪽은 구조조정론자들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획원 출신들이 구조조정을 감행하게 되고 그들에 밉보인 대우가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끝으로 좌 교수는 김우중 회장에게 부과된 20조원이 넘는 추징금과 관련해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지금 큰 부실기업이 많은데 김우중 회장에게 이런 기업들 몇 개를 모아 살려 내라고 기회를 주고 추징금을 상쇄시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장 회장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조진래 기자 (jjr201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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