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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방중때 모욕줬던 중국, 다시 우릴 속국 만드나


입력 2014.10.09 09:54 수정 2014.10.09 09:58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서평>강대국에 굴종하는 현상인 '핀란드화' 급속히 심화돼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복거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복거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지난 7월 초 방한했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역사 속 한중 관계를 각별히 회고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 세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던 일과 함께 임진왜란 역사까지 회고하며 "한중이 전략적 협력자가 돼 양국 관계에 가장 좋은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새삼 밝혔다. 그런 레토릭을 통해 그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중국이 견지하고 있는 반 일본, 반 미국 노선에 한국을 더 깊숙이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그날 그는 중국은 평화와 화목을 추구하는 대국이 될 것이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런 중국 지도자의 속마음을 충분히 읽어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강연 중 무려 26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청일전쟁 이후 내내 존재가치가 없던 대국의 굴기(崛起)라는 변화된 현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던 자리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때 중국이 보였던 의도적 무례(無禮)

소설가 복거일의 국제정치 분석서책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를 다시 읽으며 2개월 전의 그 일을 떠올렸다. 참고문헌 목록까지 합쳐서 15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인데, 이만큼 한국-중국 사이의 역학(力學) 구조와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도 드물다. 책 중간에 저자가 새삼 환기시켜주는 게 6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이미 드러났던 한중 관계의 냉정한 현주소였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작년(2008)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다시 괴로운 모습으로 드러났다. 5월 27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친강(秦剛)은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며 냉전시대의 군사동맹으로 현대 세계의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정상회담과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웃나라 정상이 도착하기 전 그 나라 외교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을 이렇게 무착하게 공박하다니! 명백한 외교적 결례인데, 논란이 일자 대변인은 한 술 더 떴다. 이틀 뒤 그는 문제의 발언이 “완전한 것이며 계통을 밟아 이루어진 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재확인했다. 물론 그는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침입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중국은 군사원조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중조우호협력조약’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 복거일의 설명이 이렇다.

"이처럼 억지를 써가면서, 중국 정부는 일부러 한국의 국가원수를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과시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중국의 무례를 감싸기 바빴다."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는 이 땅의 새로운 외교 이데올로기이자, 암묵적 사회적 합의인 친중국 노선에 대한 반성으로 딱 좋다. 많은 이들은 지금 움직임을 친중국 사대주의라고 명명하는데, 저자는 조금 다르게 이름 붙인다. 그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고 한다. 핀란드화는 국제정치학의 정식 학술용어이기도 한데, 그러면 왜 우리사회가 핀란드화를 크게 걱정해야 할까?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이웃의 대국 러시아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작은 나라 핀란드

오랫동안 러시아의 속령(屬領)이었던 핀란드는 러시아혁명의 와중이던 1917년 12월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 직후 핀란드는 치열한 좌우 내전을 치렀지만 제정 러시아군 장성 출신인 만네르하임 원수가 공산분자들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1939년 스탈린의 소련은 핀란드의 국경이 레닌그라드에서 불과 3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핀란드에 영토할양을 요구했다.

핀란드가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그 해 11월 핀란드를 침공했다. 핀란드군은 영웅적으로 항전했지만 소련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핀란드는 결국 이듬해 3월 강화조약을 맺고 소련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후 절치부심하던 핀란드는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히틀러의 편에 서서 잃어버린 영토의 수복을 꾀했다. 하지만 나치독일의 패색이 점점 짙어지자 핀란드는 1944년 9월 단독으로 소련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핀란드는 탈환했던 영토를 비롯해 전 국토의 12%를 소련에 할양해야 했고, 군비의 제한, 반소적 정치인의 숙청과 처벌 등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소련에 병합되는 것을 두려워한 핀란드는 이후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에게 굴종하는 길을 택했다. 핀란드의 정치와 외교 • 국방 정책은 소련에 철저히 종속됐다.

소련의 승인을 받은 자만이 대통령이나 각료가 될 수 있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입신출세를 꿈꾸는 자는 모스크바에서 든든한 줄을 찾아야 했다. 더 나아가 언론인, 학자, 문화예술인들도 소련의 비위를 거스르는 발언이나 보도, 창작활동을 스스로 삼가게 됐다. 반소·반러시아적 서적들은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자기검열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핀란드는 패전 직후 걱정했던 것처럼 소련에 합병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거대한 전체주의 국가를 이웃에 두고도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대가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것은 처음에는 독립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시작됐던 소련에 대한 굴종이 핀란드인들의 체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은 소련에 대한 굴종을 ‘원숙하고 지혜로운 정책’이라고 선전했고, 핀란드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거대한 위선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정치학자들은 ‘핀란드화’이라고 한다. ‘핀란드화’란 ‘자신과 체제정체성(正體性)이 다른 강대국과 이웃하고 있는 약소국이 독립을 보존하기 위해 일정 부분 주권의 침해를 감수해가면서 강대국에게 양보하고 굴종하는 현상’을 말한다. 시쳇말로 대국 앞에서 스스로 기는 것이고, 이런 현상이 외교영역을 넘어 정치-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체질로 바뀐 현상을 말한다.

참고 참아왔던 중화 민족주의의 분노 폭발을 조심하라

사실 핀란드화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게 아니다. 천하라는 관념 아래 주변국가를 조공국가로 다스렸던 중화제국은 이웃나라들에게 핀란드화를 요구했다. 우리 옛 역사, 특히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핀란드화의 과정이었다. 그걸 책봉(冊封)체제라고 하건, 사대주의 질서라고 말하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책은 힘센 중국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지난 100년의 예외적 역사기간이 끝나고 한국이 다시 핀란드화할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이 처음 등장한 것은 5년 전인 2009년. 이후 우리의 핀란드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로 진행돼왔다. 그래서 핀란드화는 더 이상 논쟁이자 전망을 넘어 현실로 다가왔고, 그래서 이 책의 설득력이 크다. 저자가 걱정하는 건 또 하나 있다. 중국이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고, 민족주의로 포장된 제국주의를 더욱 공격적으로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은 당분간 민족주의로 자신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고대 이후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찬란했던 역사를 되살려보고 싶은 열망이 유난히 크다. 이런 낭만적 애국심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적 특질을 지니게 되어 둘레의 나라들과 부딪치게 된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이게 어떻게 펼쳐지고, 통일한국과 길항관계를 갖게 될지를 이 땅의 엘리트들이 따져볼 일이다.

서평의 앞 대목에서 필자는 시진핑이 중국은 평화와 화목을 추구하는 대국이 될 것이라며 우리를 애써 안심시키려 했다는 점을 떠올렸다. 하지만 외교라는 게 그런 호의(好意)와 제스처로만 이뤄지던가? 그런 중국 지도자의 발언에 26차례의 박수를 보냈던 이들은 중국이 조만간 공격적 제국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에도 귀 기울이길 바란다.

"앞으로 공산당 정권이 장악한 중국 정부는, 바라든 바라지 않든,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제국주의적 정책을 따를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민족주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는 대중의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정책을 필연적으로 만들 테고, 그렇게 북돋우어진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은 중국 정부가 공격적 제국주의를 추구하도록 강요할 것이다."(48~52쪽 요약)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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