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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무산’ 현정화·리분희…23년 전 무슨 일이?


입력 2014.10.02 10:37 수정 2014.10.02 10:40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리분희 서기장 교통사고로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불참

현정화 감독도 불미스러운 일로 선수촌장직 사퇴

리분희가 지난달 25일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예정됐던 한국 방문이 사실상 무산됐다. ⓒ 연합뉴스 리분희가 지난달 25일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예정됐던 한국 방문이 사실상 무산됐다. ⓒ 연합뉴스

23년 만에 '코리아'의 감동을 다시 선사하려던 주인공들의 만남이 어이없게도 무산될 전망이다.

2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오는 18일 개막하는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됐던 북한 리분희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리분희 서기장은 지난달 25일 승용차를 몰고 가다 트럭과 충돌해 크게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로 목뼈가 부러진 리분희 서기장은 뇌진탕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앞서 지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리분희 서기장과 짝을 이뤄 여자 단체전 우승을 일궜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도 불미스러운 일로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장 자리를 내놓았다. 현 감독은 1일 만취 음주운전 사고로 경찰에 입건된 바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탁구 세계선수권에 나선 팀 ‘코리아’는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중국의 독주를 저지해 한반도 전체에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탁구 세계선수권은 1926년 런던에서 첫 대회를 시작, 초기만 해도 헝가리와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눈에 띄는 강세를 보였다. 이후 1950년대에는 일본의 독주 시대가 있었고,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이 세계 최강자로 발돋움했다.

중국은 1959년 도르트문트 대회서 롱궈탄이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어 1961년 자국(베이징)에서 열린 제26회 대회에서는 남녀 단식과 남자 단체전을 휩쓸었다. 특히 70년대에 이르면서 중국의 본격적인 독주가 시작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한국도 선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1973년 사라예보 대회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데 이어 1987년 뉴델리 대회 현정화와 양영자의 여자 복식, 그리고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 현정화-유남규 혼합복식, 1993년 예테보리 대회에서의 현정화 여자 단식 우승의 성과를 일궜다.

무엇보다 1991년 남북 단일팀 구성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당시 ‘코리아’는 최강 중국과 이를 견제하기 위한 2인자 스웨덴의 양강 체제에 제대로 일격을 가했다.

‘코리아’는 김택수의 남자 단식 동메달, 리분희의 여자 단식 은메달, 리분희-김송희의 혼합복식 동메달, 그리고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특히 여자 단체전에서는 현정화와 리분희, 홍차옥, 유순복으로 구성되었는데 세계 최강자 덩야핑이 버티고 있던 중국을 물리치는 ‘사고’를 터뜨렸다.

당시 중국은 이 대회 전까지 여자 단체전에서 9개 대회 연속 우승은 물론 20연승의 대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국은 ‘코리아’에 패한 뒤에도 다시 8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만큼 ‘코리아’가 세계 탁구 역사에 아로 새긴 발자취는 깊게 남아있다.

현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리분희 언니와 만나게 된다니 꿈만 같다”며, “20년 넘게 보지 못했지만 항상 다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23년만의 감동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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