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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일간 법안처리 0' 나라 망친 국회 선진화법의 저주


입력 2014.09.27 08:49 수정 2014.09.27 15:59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다수결 원칙 부정하고 식물국회 자초

초등생 학급회의도 '51% 다수' 헌법 위배 민주주의 발목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한 뒤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한 뒤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6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들이 불참한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들만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6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들이 불참한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들만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법의 이른바 국회선진화 조항이라는 괴물이 끝내 전대미문의 정치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헌정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남긴 18대 국회가 회기 말인 2012년 3월 여야 합의로 이 조항들을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없이 졸속으로 통과시켰을 때 많은 사람들은 19대 국회가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그 우려가 지금 어김없는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당시의 국회법 개정은 어린아이들의 불장난처럼 무모한 처사였다. 당시 여야 지도자들은 국회의 폭력사태를 예방한답시고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의회민주주의의 보편적 원칙이자 지난 60여년간 우리 헌정의 기본원리로 준수되어온 다수결원칙을 내팽개치고 국회 운영을 사실상의 여야합의제로 하루아침에 바꾸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악법의 저주를 받아 세계에서 가장 바빠야 할 국회가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바빠야 할 국회가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린 이유

정책보다는 패거리정치에, 깨끗한 공직자의 길 보다는 개인적 웰빙과 관습화된 부패정치에 물든 한국의 많은 직업정치인들은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정당화되는 근거가 다수의 지배, 즉 다수결의 원칙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의 정치제도인 1인의 절대군주나 독재자 또는 몇 사람의 과두체제 아래서는 다수결 원리는 애당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다수 국민들이 국가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다수결 원리가 아니면 전체국민들의 동의와 지지와 복종을 바라기 어렵다. 물론 다수결의 원칙이 소수의 독재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악용된 예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결원칙은 현대 민주주의의 황금률이다. 다수 의견이 소수의견에 밀려 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결 원칙도 다른 민주국가의 원칙처럼 인간의 평등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다수가 결집시킨 도덕성과 지성과 지혜가 소수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이 가진 도덕적 힘의 근거는 다수의 이해가 소수의 이해에 우선한다는 믿음에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 다수결 원칙은 소수세력은 무조건 다수세력에 따라 가야 한다는 원리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당의 출장소처럼 운영되고 있는 한국 국회의 어떤 안건도 심의 이전에 이미 결말이 나 있는 셈이다. 다수당 의사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한 다수결원칙은 반드시 토론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표출되고 토론을 통해 자신과 상대방의 의견을 비교하면서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는 원리다. 토론의 결과로 찬반의 수적 판가름, 즉 다수의견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여론은 국가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기여하며, 또한 이를 통해 국민적 컨센서스와 국가적 단합을 이룩하는 것이 현대민주주의의 원리이다.

국회선진화 조항은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사생아

국회선진화 조항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여야지도자들의 빗나간 인식에 있다. 좋게 보면 그들의 소박한 정치적 유토피아니즘과 아마추어리즘이 저지른 중대과오라고 할 수 있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국가의 정치제도는 권력은 남용되기 쉽고, 권력을 맡은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국회라는 국가기관과 국회의원이라는 그 구성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국가기관과 그 운영자들의 권력남용을 방지하는 장치가 겹겹으로 마련되어있다. 그러나 문제의 국회선진화 조항은 한국의 정치문화와 정치의 수준에 대한 통찰은 찾아볼 수 없다. 국회선진화 규정이 악용되어 국가에 해롭게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서 아예 생각이 없는 입법이다.

문제의 조항들은 모든 국회의원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또한 애국적이라는 전제 아래 제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밤을 새워가면서 일할 생각은 않고 당리당략에 좌우되어 국회를 보이콧하는 것이 일상화된 현실을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는 입법활동의 이면에 막대한 돈 거래가 있었음이 최근의 검찰수사로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이 극에 달하고 있지 않는가.

18대 국회가 겁도 없이 만든 이들 독소조항들의 내용은 참으로 한심하다. 매년 11월 30일까지 위원회의 심사를 완료하되 그 기한을 넘기면 본회의 자동상정 제도를 두기로 한 예산안 이외에는 국회에서 5분의 3 내지 3분의 2 이상의 찬성 없이는, 다시 말하면 야당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거의 모든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야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국회 상임위 등 소관 위원회 안에 만들기로 한 여야동수의 '안건조정위원회'부터가 활동기간을 90일로 함으로써 안건처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재적위원 3분의 1의 요구만으로 쉽게 구성하는 안건조정위는 일단 구성만 되면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하여 소수당이 반대하면 어떤 안건의 통과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안건을 신속처리대상(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려면 과반수 동의로 발의하고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하도록 했다. 또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국회의 회기가 끝날 때까지라도 무제한 의사지연연설(필리버스터)도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중단시키려면 5분의 3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수결 원칙을 포기한 것은 헌법 규정에도 어긋난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요건도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또는 교섭단체 대표의 합의가 있을 때로 한정했다. 도대체 국토가 분단되어 안보가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고 경제가 어려워진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태평성대의 정치노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다수결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것은 헌법 규정에도 어긋난다. 헌법 제49조는 국회가 안건을 처리할 때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단순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가부 동수인 경우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일반안건이 아닌, 헌법개정안 또는 대통령 탄핵안의 통과에는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대통령이 거부한 법률안의 재통과에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했다.

반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와 해임건의안과 계엄해제요구안 통과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하도록 했다. 이들 안건은 모두 신중을 요하는 것이거나 원칙상 현상변경을 어렵게 하기 위해 고안된 예외적인 절대다수결원칙이다.

헌법은 이 밖의 안건에 대한 의결정족수는 국회가 정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회가 헌법 49조의 정신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의결정족수를 정할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국회가 어떤 안건에 대해 의결정족수를 만장일치제로 하거나 모든 의안에 대해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으라고 법률로 정해도 좋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회법 1조는 국회의 조직 의사 기타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못박고 있다.

이것은 국회의 민주적인 운영과 효율적인 운영을 가장 중요한 양대 원칙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 같은 국회법의 입법목적에서 유추할 때 일반안건의 통과에 재적 3분의 2나 5분의 3을 의사정족수로 정하는 것은 다수의견을 무시하는 동시에 국회의 효율적 운영원칙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테네의 고대민주주의 이래 민주주의국가에서 51%의 다수결원리를 18대 국회가 무차별적으로 60%이상의 찬성으로 강화한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한 무모한 처사였다. 더 이상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를 망치지 않으려면 원내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야당을 설득해서 국회법을 개정하든지, 언론보도처럼 헌법소원을 통해 국회법의 문제조항에 대한 위헌판결을 받아내든지 어쨌든 악법조항을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글/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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