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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 둘러보니...스스로 결정하는 학생들의 천국


입력 2014.09.28 16:03 수정 2014.09.28 18:51        목용재 기자

<심층취재-자사고 폐지 논란을 파헤친다④-르포>

사교육 없는 학교 하나고 "스스로 하니 스트레스 없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폐지'를 목표로 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행보는 분주하기만 하지만 정작 대상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는 여전히 의문이다. 도대체 자사고 폐지의 근본적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유다. 당장 진학을 결정해야 할 중3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에 빠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취소한다고 하고 교육부는 반대 입장이다.

문제는 '자사고 폐지'만이 공교육 활성화의 토대가 되느냐에 교육 전문가들도 학교 현장도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이다. 차분히 공교육 살리기의 대안에 머리를 맞댄 것도 아닌 '자사고'를 재물로 하는 조희연 교육감의 밀어부치기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데일리안'은 자사고를 둘러싼 논쟁, 자사고 폐지가 공교육 살리기의 해법인지, 그렇다면 조희연 교육감이 추진하는 혁신학교는 무엇인지, 아울러 자사고 현장을 찾아 현재 자사고 폐지 논쟁을 살펴보았다. < 편집자 주 >


하나고등학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하나고등학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등하교 시간이 아닌데도 오전 3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올리자 학생들이 가방을 싸들고 복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분주하다. “왜 가방 들고 돌아다니느냐, 집에 가나”라고 물으니 “다음 강의실 찾아가는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곳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인 하나고. 자신이 신청한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대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고등학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 15일 오전 찾아간 하나고는 다른 여타 고등학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강의실에는 교육을 위한 온갖 멀티미디어 장비들뿐만 아니라 기타 등 악기와 악보 보면대도 놓여 있었다. 하나고가 자랑하는 ‘1인2기’ 수업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정규수업시간 외, 자율학습을 위해 학교 내부에 학생 1인당 1좌석씩 면학실을 마련해놨다.

특히 토론식 수업이 활성화돼 있다는 것도 하나고의 특징이다. 책상 5개를 붙여 학생 간 얼굴을 마주보고 토론을 유도하고 있었다. ‘수학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주어진 문제의 솔루션을 지정자가 제시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학생끼리 주고받는다. 지도 교사들도 학생들이 생각지도 못한 솔루션을 내놓으면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해보라”고 피드백을 해준다.

하나고등학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하나고등학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회화 수업은 ‘소수 정예’다. 이 강의는 9명의 소수인원을 원어민 교사 주변으로 둘러앉히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원어민이 회화수업을 진행하니 교육 효과도 높다.

하나 고등학교? 대학교?…영락없는 대학 풍경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도 복도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앉아 노트북으로 문서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공강시간을 이용해 대학 수시입학을 준비하는 3학년 학생들로 입시지원서를 작성 중이었다. 정철화 하나고 교감은 “3학년들은 수시철만되면 정신없다. 스스로 고치고 또 고치느라 말붙이기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기주도적 학생 육성을 표방하는 고등학교답게 하나고의 점심시간은 분주하다. 점심식사 전후 여유 있는 시간에 단순히 논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날 4교시를 마친 일부 학생들은 깔아놓은 매대에 교복 한 무더기를 펼쳐놓더니 “교복 팔아요”라고 외친다.

졸업한 선배들이나 재학생들에게 맞지 않는 교복을 무료로 수거해 헐값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교복은 1000~2000원에 판매되며 수익금 전액은 은평구 소재 복기기관에 기부된다.

하나고의 한 재학생은 “하나고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동복, 하복, 춘추복, 체육복, 기숙사복, 활동복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교복이 있는데 이것을 모두 돈으로 구입하기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특히 교복을 사도 금세 치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교복 판매 바자회를 통해 스스로 맞는 교복을 구입해 입는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 교복 바자회는 시작단계부터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한 것”이라면서 “이런 바자회나 동아리, 자치활동 등은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직접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수강하는 과목명도 예사롭지않다. ‘창체(글쓰기)’, ‘수학세미나’, ‘퍼블릭스피킹과 프리젠테이션’, ‘미술감상과 비평’, ‘합주’, ‘과학융합’, ‘국제정치’, ‘국제법’, ‘기초디자인공예’ 등 흡사 대학교 수강과목을 연상케한다.

하나고 학생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교과목을 선택해 시간표를 구성한다. 때문에 수강신청 당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PC를 켜놓고 ‘광클’을 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공강은 4시간까지 허용된다.

하나고등학교 도서관과 열람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하나고등학교 도서관과 열람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철화 교감은 “수강신청일 만 되면 아침부터 PC를 켜놓고 수강신청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어떤 친구들은 PC방까지 가서 수강신청을 한다고 한다”면서 “그렇지만 대학교처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예비수강신청을 통해 수요를 미리 예측, 수요가 몰리는 과목은 적절하게 분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교과목 외에 다채로운 강의를 진행하려면 교사들의 강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뻔한 수업’은 듣지 않기 때문에 이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들의 기대에 교사가 부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학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규 하나고 교사는 “다른 학교에 비해 수업준비가 힘든 편이다.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수준높은 강의를 할 수 있고 이를 학생들이 잘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면서 “아이들의 만족감이 올라갈수록 나 스스로의 만족감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조 교사는 “대학교처럼 강의계획서를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의 토론·참여식 수업이 많아 이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면서 “하나고에서 교육의 주안점은 아이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스스로 찾아볼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하나고 학생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인2기’, ‘200m 수영인증제’가 대표적이다. ‘1인2기’는 학생 한명이 체육 종목 한 분야(구기종목, 검도, 댄스, 국궁, 요가 등)와 음악과 미술 가운데 한 분야를 선택해 체득해야 하며 200m를 완주 인증을 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정 교감은 “필수이수 과목을 제외하고 교과목 자체들이 대학입시와 관련이 없는 것들이 많다”면서 “때문에 학교 설립 초기 이런 교과목 운영과 ‘1인2기’ 교육방침으로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하나고 학생들(5기, 현 1학년 기준)은 하루에 1시간씩 ‘1인2기’ 활동과 봉사·진로탐색 시간을 30분씩 가진다. 여기에 학교특색활동과 동아리 활동도 각각 1시간씩 해야 한다.

사교육 조장한다고?…“하나고 입학 조건은 자기주도적 아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시설, 다양한 교과목과 자율적인 학습분위기, 여기에 월등한 대학 입시 성과까지 내면서 하나고는 명실상부 명문으로 부상했다. 때문에 하나고에 입학하기 위한 또다른 ‘사교육 전쟁’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하나고 측에서는 하나고 입학에 사교육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주입식 교육에 매몰됐던 학생은 면접에서 드러나게 돼있고, 이런 학생은 하나고에 입학하기 힘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철화 하나고등학교 교감.ⓒ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철화 하나고등학교 교감.ⓒ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 교감은 “입시설명을 할 때 중학교 때 사교육으로 찌든 아이들은 들어오기 힘들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면서 “하나고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감은 “면접이 중요한데, 면접자의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진행된 면접은 주로 아이가 준비해 온 자소서에 대한 맞춤형 질문을 구성해 진행해왔다. 면접을 진행하면 아이의 표현, 태도 등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감은 “때문에 1학년 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상당수였다”면서 “대학입학만을 보고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하나고는 맞지 않다. 하나고는 입시교육은 부실하다”고 덧붙였다.

하나고에 입학을 해도 과외 등 사교육은 받을 수 없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교프로그램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을 겨를이 없다.

올해 초 하나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오재호 씨(20, 하나고 2기)는 “학생마다 다르지만 대개 한 달에 한번 집에 돌아가기 때문에 사교육 받을 시간이 없다”면서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다채로운 학교 프로그램, 또 제가 스스로 원하는 동아리, 봉사활동 등을 하느라 과외를 받는다는 생각은 못한다”고 말했다.

오 씨는 “시간표만 보면 다른 학교 학생보다 ‘빡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수업이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다”면서 “정규수업이후 진행되는 ‘1인2기’, 동아리, 특색활동, 봉사활동 등을 자율적으로 하기 때문에 여유도 있고 즐겁다”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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