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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에서 '유혹'까지...고품격 불륜이라는 꽃포장


입력 2014.09.17 10:53 수정 2014.09.17 11:02        김헌식 대중문화평롣가

저품격 고품격 차별화하더라도 불륜은 불륜

KBS 인기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쉰밀회' 동영상 화면 캡처. KBS 인기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쉰밀회' 동영상 화면 캡처.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가운데 하나는 '쉰밀회'이다. 상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간의 사랑을 코믹하게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초점은 겉과 속이 다른 세대간의 문화적 인식과 취향의 차이다. 남성은 겉으로는 외모가 20대이지만, 사실은 40대취향을 가졌고 여성은 겉으로는 40대이지만 안으로는 20대 정서와 경험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안에 내재하고 있는 속성은 다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르게 연출을 하고 살고 있는 모순적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현상적인 것과 구조적인 것 사이의 인식차이는 복고 코드와 맞물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추억의 웃음 코드를 이끌어낸다.
이 코너는 원래 드라마를 패러디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로 김희애와 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밀회'였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유아버전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성인 버전으로 보였다. 음악가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제자와 이를 자아투영하는 스승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 상업영화에서 보통 확인할 수 없는 독특한 흥미를 유발 시켰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이성간의 성적 섹슈얼리티는 없었다. 어디 섹슈얼리티만이 성인 딱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적나라한 풍자와 직언이 전면에 등장할 때 이를 성인 버전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은 없었다. 특히 예술계의 부정부패의 현실 비판은 없었다.

드라마 '밀회'가 인기를 끌면서 유행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 고품격 불륜이라는 단어였다. 이 드라마가 고품격 불륜을 다룬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한 설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바로 음대를 둘러싼 부정부패와 위선적인 행태들이었다. 보통의 남녀간 사랑이야기만 다루지 않는 이른바 '의식 있는 드라마'였다. 또한 음악이라는 예술적 매개물을 등장시켰다. 음악을 하던 두 사람이 음악을 매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몰입을 이끌어낸다.

결국 음악은 두 사람의 통념에 어긋나는 사랑을 합리화 해준다. 그렇다면 그림이나 연극은 어떨까. 요가나 피트니스는 어떤가. 골프와 볼링도 가능하겠다. 업무 상 혹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같이 일을 하다가 두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떨까. 문화예술은 고품격 불륜이고 다른 매개물을 통한 불륜은 저속한 불륜일까.

드라마 '유혹'은 한 젊은 유부남(권상우)을 향한 부유한 여성(최지우)의 엉뚱하고도 도발적이며 오만한 제안으로 비롯되었다. 그 제안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가정이 깨어졌다. 그리고 젊은 유부남과 부유한 여성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대신에 부유한 여성은 암에 걸리고 남성은 그녀의 옆을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도 '밀회'와 같이 여러 에피소드와 플롯 그리고 다양한 감정 상태에 관한 메커니즘을 부여하고 있다. 아마도 고품격의 불륜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말 고품격 불륜이라는 타이틀은 가능한 것일까.

일단 고품격 불륜이라는 말은 우리의 불륜은 남들의 불륜과 다르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이들의 불륜은 천박하고 싸구려의 불륜이라는 인식일 게다. 하지만 고품격이건 저품격이거나 불륜임에는 차이가 없다. 남이하면 저품격이고 자신이 하면 고품격이다. 자신이 만들면 고품격 불륜 드라마이고 다른 이들이 만든 것은 저품격의 불륜 드라마이다. 또한 남이 보는 드라마는 저질의 불륜 드라마이며 나 자신이 보는 드라마는 고품질의 드라마이다. 상품과 서비스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차별성의 부각이겠지만 불륜에 이런 차원의 기준 적용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랑과 로맨스는 근대의 발명품이다. 상업적 상품 구조에서 이는 더 강화되고 부각되었다. 상상할 수도 허용할 수도 없던 불륜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정당화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이제 불륜도 저품격과 고품격으로 차별성의 시도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분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품격이든 저품격이든 명분은 진정한 사랑찾기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는 하나같이 모두 비슷하다.

저질이라 비난을 받는 사람들도 고품격이라 여긴다. 상습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사연은 있다. 그러나 범법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드라마들이 취하는 고품격 불륜은 자기중심적인 비신뢰적 행위들을 강화할 가능성이 많을 뿐이다. 드라마 '밀회'는 어린 남성과의 불륜을 포장했으며, 드라마 '유혹'은 돈많은 남자 혹은 여자 그리고 젊은 남성 여성과의 불륜을 포장했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롣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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