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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천재라 부르지 못한 박지성, 그리고 이승우


입력 2014.09.16 09:35 수정 2014.09.18 00:27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왜소한 체격에 지도자 혜안 부족 ‘결국 해외서 인정’

이승우처럼 일찍 재능 발견했더라면? 이른 은퇴 아쉬움

박지성과 이승우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건 해외였다. ⓒ 연합뉴스 박지성과 이승우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건 해외였다. ⓒ 연합뉴스

‘천재를 천재라 부르지 못했다.’

지금은 ‘캡틴 박’으로 불리지만, 12년 전 박지성(33)은 2002 한일월드컵 엔트리 탈락 1순위였다. 박지성 가족은 아직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원통함에 눈시울 붉힌다.

박지성은 K리그 입단테스트에서도 떨어졌다. 왜소한 체격 등의 이유로 선택받지 못했다. 박지성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팀은 한국이 아닌, 일본 J리그였다.

월드컵 성공 이후 ‘타고난 상인’ 네덜란드가 박지성을 데려갔다. 네덜란드 명문 에인트호벤은 박지성 소속팀 교토 퍼플상가에 이적료 한 푼 안 주고 박지성을 영입했다. 박지성이 자유계약신분(FA)으로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뒤 에인트호벤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이적료 80억 원을 챙기고 박지성을 보내줬다. 한국 K리그가 박지성 잠재력을 일찍 발견했다면 그 구단은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박지성은 맨땅에서 헤딩한 학원 축구 세대이기도 하다. 학원 축구는 승패(결과)가 중요하다보니 박지성의 창의력은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의 잠자고 있던 ‘천재적 기질’을 깨웠다.

간결하고 전투적인 양발 드리블, 집념의 공 투쟁력,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은 야생마 기질, 강철 심장이 살아 꿈틀거렸다. 본인도 놀랐을 정도로 박지성의 잠재력을 무한대였다.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진가가 용솟음쳤다.

박지성은 일생일대 두 번째 은사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만났다. 퍼거슨은 박지성의 ‘천부적인 공간 지각력’을 극대화했다. 박지성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입체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공간을 수없이 찾아내 상대의 압박을 파괴했다.

히딩크-퍼거슨을 거친 박지성은 세계 축구에서 희소가치 높은 아이템으로 평가받았다. 한 마디로 천재다. 노력파 자수성가 이전에 박지성도 리오넬 메시처럼 축구 감각을 타고났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1%의 영감이 없다면 120% 노력을 기울여도 천재 반열에 오를 수 없다. 박지성은 ‘1% 영감의 소유자’다.

박지성을 보면 이승우가 떠오른다. FC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 후계자’로 지목된 이승우도 전율적인 천재다. 16살 이승우는 최근 후베닐A로 월반, 폭풍 성장 중이다. 모든 국제 대회마다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쓸었다. 스페인은 물론 영국 유수의 클럽에서 주목하는 예비 축구 거장이다.

바르셀로나와 한국축구의 훈련 방식은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어린 선수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반면 한국은 개성보다 조직력을 중시한다. 튀어나온 돌은 망치질하는 편이다.

‘학원축구 세대’ 박지성은 재능에 비해 영광을 덜 누렸다.

박지성도 이승우처럼 조기에 유럽에 진출했다면 무릎 연골이 닮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 살기로 뛰는 박지성의 폭발적인 활동량이 맨땅 한국에선 독이 됐다.

박지성도 8~9살 때 유럽에 진출했다면 번뜩이는 착상으로 넘쳤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이며 장점을 극대화한 슈퍼스타로 성장했으리라는 상상도 무리는 아니다. 발롱도르를 놓고 호날두와 경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축구는 박지성의 잠재력을 몰라봤다. 왜소하다는 겉모습이 박지성의 전부라고 오판했다.

'원석' 마이크 타이슨을 '보석'으로 빚은 커스 다마토(1908~85)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한 소년이 불씨 같은 재능을 갖고 왔다. 내가 불을 지피자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키울수록 불은 계속 타올라 결국, 열정의 활화산이 됐다.”

한국에 커스 다마토와 같은 혜안을 가진 스승이 필요하다. 천리안과 직관으로 무장한 지도자가 많을수록 제2의 박지성, 제2의 이승우, 제2의 김연아 탄생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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