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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일반인 생존자, 특별법에 가려져 '삼중고'


입력 2014.09.13 22:15 수정 2014.09.15 10:51        이슬기 기자

단원고 유가족에 밀려 피해보상 대책 말도 못꺼내

모임조차 없어 정부 지원대책도 '필요하면 알아서'

세월호 참사 100일을 2시간여 앞둔 23일 저녁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100일의 기다림' 문화제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참사 100일을 2시간여 앞둔 23일 저녁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100일의 기다림' 문화제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참사로 아내를 잃은 정모 씨는 요즘도 아내 얘기가 나올 때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다.

배가 기울 당시 정 씨는 밖으로 나오려는 아내를 향해 ‘배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9일 후 다시 만난 아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함께 떠난 여행이 아내와의 마지막 순간이 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지만, 그는 “더 이상 끔찍했던 것 생각하기 싫다”고 선을 그은 후, “죽고 싶다. 아내더러 배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 한 게 평생의 한이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계속 생각난다”고 토로했다.

사고 이후 정 씨는 줄곧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에 의지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고통보다도 훨씬 괴로운 것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사고 당시 배 안에서 긁히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등이 환청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제대로 잠을 자본지도 오래다. 길을 걷거나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는 때도 허다하다.

살아남은 게 고통인 건 화물차 기사 A 씨도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등과 다리를 비롯한 근육 파열이 심각해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데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세월호에 실었던 4.5톤의 화물차와 트레일러만 해도 1억원을 훌쩍 넘는 거액이고, 그 중 8000만원 이상은 대출을 받아 구입했다. 시에서 지급하는 긴급생계비 60만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형편에 대출금은 갚을 길이 없다.

단원고 학생에 가려 방치…“살아남은 죄책감 더 괴로워”

정 씨와 A 씨 같은 일반인 생존자는 9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이나 희생자들에 묻혀 사실상 방치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일단 일반인 생존자들은 이렇다 할 대책위나 공식 모임조차 따로 없다. 일반인 희생자 유족은 그나마 위원장과 대변인 등 지도부를 갖춘 대책위가 꾸려졌지만, 일반인 생존자들은 아예 모임 자체가 없다. 여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단원고 학생 측에 쏠리면서, 생존자들은 위로는커녕 살아남은 죄책감에 몸을 사리며 정당한 배·보상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게 된 탓이다.

현재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있지만, 사실상 단원고 학생 유족이 주축이 됐다. 특히 진상규명의 방법론을 두고 일반인 유족 측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여야 원내대표 재합의안을 존중하고 진상규명에 착수하자”고 밝히면서 또렷이 노선이 갈린 터다.

여야 정치권 역시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단원고 학생 유족 측에만 기웃거리다가 최근 한 차례씩 일반인 희생자 유족 대책위를 만나 얼굴을 비췄을 뿐, 생존자들을 방문한 적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해 한성식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과 부위원장은 11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정기국회 개회일에 의원총회 때문에 못 오게 됐다면서 정책위의장과 비서실장, 인천시 의원 몇 명만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날 우리에게 ‘인천지역 의원 중 한 명을 소통 창구로 정해서 일반인 피해자들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지만 말 뿐이었다. 그날 이후 의원을 보내주거나 연락을 한 적도 전혀 없다”라며 “추석 전에라도 올 수 있게 하겠다고 했는데 아예 연락도 없는 상태”라고 분개했다.

한 씨는 이어 “일반인 희생자 유족도 이렇게 소외되는데 생존자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다. 이러니 화물차 기사분과 아내 잃은 그 분들이 ‘취재도 싫고 (정부에)기대도 안 한다’고 절망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보험 처리 가능 여부도 불투명하다. 단원고 학생 및 정규직 교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단체 여행자 보험 등으로 보험금을 수령했지만, 일반인들은 개별적으로 승선했기 때문에 단체 보험에 해당이 안 돼 관련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게 한 씨의 설명이다.

그는 “산재를 알아봤는데 국가 보·배상 문제와 상충된다면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그러더라”면서 “국민연금도 알아봤지만 일반인들이 받을 수 있는 보·배상과는 연관이 없고 산재처럼 또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서 기대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대책 안산에만 집중, ‘필요하면 알아서’ 안내 부족

정부 역시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회복지원 대책은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일반인 생존자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일반인 생존자 지원책으로 거주지 인근에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또는 상담전화를 설치하고 주민센터에서 100여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생존자는 거의 없다.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오라’는 식이다.

실제 아내를 잃은 정 씨는 얼마 전 동네 주민센터에서 생계비 지원을 받았지만, 이 같은 지원책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나 경기도청으로부터 안내 받은 적은 없다. 우연히 뉴스를 보고 알게 돼 자신이 직접 찾아가 받은 것이다.

여기에 여야 의원들이 앞 다퉈 발의한 9건의 세월호특별법 역시 대부분 단원고 학생 지원책과 진상규명에 집중돼있고, 생존자의 경우 희생자·생존자·유가족으로 묶어 두루뭉술하게 기술했을 뿐, 구체적인 지원책을 명시한 법안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여야가 대치중인 진상규명 방안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피해보상 대책을 논의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만큼, 단원고 학생도 아닌 ‘생존자’ 지원 대책이 다뤄지기까지 이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기간은 너무 길다.

전화 인터뷰 말미에 한 씨는 “솔직히 우리 일반인들은 ‘의사자 지정’ 이런 거 뭔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야당이 먼저 안산 분향소로 와서 해주겠다고 하길래 그런가보다 했지, 우린 그때 정신도 없었고 그런 거 먼저 말한 적도 없다”면서 “부모 형제 잃은 것도 서러운데 왜 우리가 요구한 적도 없는 의사자나 수사권·기소권 때문에 욕까지 먹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건, 죽음과 고통을 차별하지 말라는 거다. 똑같은 배를 탔다가 죽음을 당하고 피해를 입었는데 왜 소외돼야 하느냐”면서 “당장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라도 좀 살 수 있게 무슨 지원이라도 해 달라”고 재차 호소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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