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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말하는 '세월호'는? "큰 양(良)을 이끄는 업(業)"


입력 2014.09.02 09:16 수정 2014.09.02 11:46        데스크 (desk@dailian.co.kr)

<특별기고>구원파 탐욕과 국가 무능때문에 발생했다고?

반드시 거쳐야할 시커먼 선방 이제 거기에 화엄경 펼쳐야

김지하 시인.ⓒ연합뉴스 김지하 시인.ⓒ연합뉴스
인류의 미래는 바다 밑 새 우주

바다 앞에 서니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 무엇이냐?

아무도 그 민족사적인 숨은 의미를 찾거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구원파의 탐욕과 국가 기능의 무능으로 인한 단순한 오류에 불과한 것이냐?

그렇다.
그러나 아니다.
탐욕이고 무능이고 오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역사 속에 감추어진 '冥(명)'이다. '冥'은 불교에서의 '귀신소굴','어둡고 거친 통로', '반드시 거쳐야하는 시커먼 禪房' 같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지난 60년의 가난과 전쟁의 고통을 간신히 이겨내고 이제 막 '대박통일'과 '환태평양해양경제'(TPP)와 '유라시아 경제이니셔티브'를 달성하고자 이제 막 발돋움할 때 그 도약에 필요한 뜀질 기력을 기르기 위해 주어진 힘든 훈련 같은 것이다.

더우기 시절은 바다의 어려움을 향해서 열려있다. 미국 과학도 바다의 90%를 아직도 모른다. 이때 우리는 천 년 전 서해바다를 주름잡아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 일본사이에 우리 민족의 독특한 창조경제를 바다의 저 거친 물결위에 이룩한 '장보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일본인들에 의해 학대당한 남해안 여인들에 대한 고마운 대접을 통해 지난 날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보고를 한번 생각해 보자.
장보고는 당시 중국 산동성 저간에 '법화원'을 두고 완도와 진도에 '청해진'을 두어 바다를 주름 잡았다.

그는 머언 ‘바닷골(海印冥)’에서 일어날 한 '菩薩宝菓'(보살보과, 보살의 희망에 의해 이루어지는 찬란한 황금보화의 넘쳐남)의 환상이 중국 산동성 적산의 법화원과 진도의 청해진에서 여러 번, 여러 사람에게, 그 중에도 바닷일하는 여성들의 눈에 자주, 많이 나타난 것을 두고 '從海湧出宝菓'(종해용출보과)라 하여 “돈 많이 버는 우수대통 꿈”으로 해석해 주어 큰 용기를 북돋우었다.

적산의 스님들은 그것을 ‘법화경(法華經)’의 바로 그 ‘용출품(湧出品)’의 헌신이라고 해석하였다.

오늘 진도의 맹골수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과연 무엇인가? 그 보다 못한 불행이기만 한 것인가?

적산 법화원과 청해진 양쪽에서 전후 2번에 걸쳐 10여 명의 젊은 사공들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이것을 양쪽에서 제사를 지내고 '법화용출제'(法華湧出祭)라 이름하여 숭상하였다. 젊은 보살혼의 앙신(仰身)이라 부르짖었다. 모두들 ‘좋은 조짐’이라 하였다.

적산과 진도 양쪽을 오가는 배에 타고 있던 선원 수십 명이 희생당한 배사고가 났다. 이른바 '비일일선'(飛逸一船, 하늘을 나는 큰 한 보살의 배)이라고 이름붙은 이 승천사(昇天事)는 그 뒤로도 내내 잊히지 않는 기념사건이었다.

그것은 큰 良(좋은 일)을 이끌어 당기는 業(불행)으로 기억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실들을 어찌 생각해야할까? 바보같고 병신같은 미친 짓인가?

세월호 참사 100일을 2시간여 앞둔 23일 저녁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에서 참석자들이 실종자들의 귀환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을 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참사 100일을 2시간여 앞둔 23일 저녁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에서 참석자들이 실종자들의 귀환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을 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또 있다.
'비이재충'(非二災充,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유념사항)이란 명목의 두 개의 배사고, 사람사고가 있었다.

조심사항은 두 가지로 내려졌다.

'어떤 경우에도 맨발로 배에 타지 말라!' 그 하나이고
'어떤 경우에도 무릎을 배바닥에 꿇지 말라!'가 둘이다.

이번 세월호 경우 선장과 선원들, 해경들은 어느 정도의 신경을 써서 손님들을 보호하였던가?

한 가지 독특한 사건이 있다.

한 젊은 여성(아마도 해남사람이라고 한다)이 배가 물에 잠겼을때 돛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기 옷을 다 벗어서 '保糧'(보양, 배기구를 갖추어주는 행위)하다가 미끄러져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다. 여성의 이름은 그 뒤 청해진에 길이 남았다. '糧女'(보양하는 여자)다.

우리는 이 일들을 웃어버리고 말 것인가? 이제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기록들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장보고의 측근 '韓良子'(한양자)는 '於海岸涯'(어해안애)라고 그 맹골수도의 '冥'(귀신소굴)을 이름 지었다고 한다.

'冥'은 자장율사에게 문수(文殊)사리가 준 가르침 중의 '화엄경이 있는 강원도의 산악들'을 말한다.

우리는 이 冥에 이제 화엄경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거대한 세계 최고의 해양대학이요, 크루즈선들이요,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이요, 미국, 호주, 동남아와 협동하고 남미와 손을 잡아 '大 TPP, 대규모 환태평양동맹무역'으로 인류 경제의 새로운 길 '바다의 낙원'을 개척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바다의 해적인 ‘아베’ 따위의 일본 극우파와 천안함 사태의 북한 깡패들을 바다에서 소탕해야 되는 것 아닌가! 아닌가?

아이슈타인도 스티븐 호킹도 똑같이 “인류의 미래는 바다, 그 바다 밑의 새우주에 있다”고 말한다.

그 우주는 '진정한 詩'다. 아닐까! ‘김약국의 딸들’의 가덕도 앞바다에서 죽은 윤옥의 가슴에서 아기시체 대신 떨어진 '흰 십자가'!

글/김지하 시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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