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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 사라졌는데…'기술금융' 속도전에 은행권 '눈치'


입력 2014.08.30 09:20 수정 2014.08.30 09:25        이충재 기자

'울며 겨자먹기'로 동참하지만, '어차피 사라질 것' 전망도 많아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대구기계부품연구원에서 열린 기술금융·서민금융 릴레이 간담회에서 "모험자본이 기술금융의 촉매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대구기계부품연구원에서 열린 기술금융·서민금융 릴레이 간담회에서 "모험자본이 기술금융의 촉매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시중 은행들이 정부의 ‘보신주의’ 질타에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표면적으론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기술금융 정책과 관련한 조직·상품을 만드는데 부산한 모습이지만, 물밑에선 부실 우려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기술금융 드라이브 이후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관련 상품과 대응안은 줄잡아 20여개 남짓이다. 그나마 내놓은 상품과 방안이 현장에선 금융지원 규모가 제한적이거나 기존 거래업체에 지원이 집중돼는 등 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단 은행들은 금융보신주의 이슈가 어디로 어떻게 향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은행들이 기술금융 확대 조치 등과 관련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중은행의 예금·대출 금리 담합 여부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는 등 대형 쓰나미가 휩쓸고 간 상황이다.

무엇보다 은행권은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독해지겠다”는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지난 27일 기술금융 현장 간담회에서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에서 부하의 목을 친 읍참마속 장면을 언급하며 “앞으로 독한 신제윤, 독한 금융위원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신 위원장은 “대통령으로부터 금융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말씀을 들은 지 오늘로 딱 1년6개월이 됐다”며 “자리에 있는 동안 기술금융이 뿌리내릴 때까지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은행권은 신 위원장의 발언을 기술금융을 따르지 않는 금융사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기술금융 확대에 나서는 등 정부의 조치에 ‘화답’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발언→금융당국의 제재’가 반복되면서 은행권도 정치논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코드맞추기 경쟁이 시작될 것 같다”고도 했다.

'금융 정치학'의 학습효과 "녹색금융도 사라지지 않았나"

지난 정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금융권을 휩쓸었다. 이른바 ‘녹색금융’열풍이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키워드로 삼은 지난 2008년 이후 녹색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준다는 정책이 금융계에 몰아쳤다.

우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확대했고, 다른 시중 금융기관도 녹색상품을 만드느라 부산을 떨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압박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총 28개의 녹색 예·적금 상품이 출시했지만, 녹색이라는 이름의 상품은 자취를 감췄다. 마진폭이 적은 탓에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지 않으면서 녹색금융은 결국 채 1년도 되지 않아 소멸 단계로 접어들었다.

금융권에서는 기술금융 역시 녹색금융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이른바 ‘금융 정치학’에 따른 학습효과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기술금융은 정부의 경제팀이 바뀔 때마다 타이틀만 바꿔서 수없이 반복됐던 정책”이라며 “그때마다 은행들이 서둘러 대책을 반짝 내놨다가 이슈가 가라앉으면 소리없이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은 이번에는 ‘개인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겠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기술금융을 안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시중은행 한 인사는 “당국이 아무리 개인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A지점장이 기술금융으로 대출사고를 냈고, B지점장이 무난하게 영업을 했다면 은행은 누구를 승진시키겠느냐”고 되물었다. 각 은행들의 ‘자체평가’가 더 가혹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각 영업점 목표와 달성수치 등이 내부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은행원들이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은행과 경쟁보다 내부 경쟁이 치열한 조직의 특성상 모험을 걸기 쉽지 않다고도 했다. “은행 내부에 견제와 경쟁구도가 엄연히 형성돼 있는데, (기술금융 사고에 대한)면책이 말처럼 쉽게 되겠냐”는 것이다. 정부의 지침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가는 손실과 징계를 모두 떠안았던 은행의 트라우마도 풀어야할 숙제로 꼽힌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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