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김우중 "대우 해체, IMF 수용론자들과 맞섰기 때문"


입력 2014.08.22 11:07 수정 2014.08.22 15:13        박영국 기자

신장섭 교수 책 내용 일부 공개서 새로운 주장

"DJ가 '구조조정론' 관료들과 싸우게 했는데 그때 밉보여"

대우그룹 부채 증가 상황 및 요인 설명(단위 : 조원).ⓒ신장섭 교수 대우그룹 부채 증가 상황 및 요인 설명(단위 : 조원).ⓒ신장섭 교수

대우차 자산가치 평가 변동 및 GM 매각 시나리오별 손실 계산서.ⓒ신장섭 교수 대우차 자산가치 평가 변동 및 GM 매각 시나리오별 손실 계산서.ⓒ신장섭 교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원인이 ‘경영실패’가 아닌 ‘김대중 정부의 기획해체’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제 관료들과 논쟁을 벌였다가 소위 ‘미운털’이 박혔다는 주장이다.

대우그룹 몰락의 원흉으로 꼽히는 대우자동차 매각 과정에 있어서도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경제에 3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김 전 회장은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신장섭 교수가 김 전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집필한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공개됐다. 신 교수는 26일 출판간담회를 앞두고 서적의 내용 일부를 22일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신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당선 직후 자신에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대통령’이 돼 줄 것을 요청했고, 청와대 회의까지 참석시키면서 경제팀과 논쟁을 하게 만들었다는 비화를 전했다.

DJ는 대통령 후보들 중에서 유일하게 IMF 재협상론을 제기했던 인물이며, ‘IMF프로그램에 따라 철저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관료집단에 맞서 다른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 믿음직한 인물이 바로 김 전 회장이었다는 것.

김 전 회장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을 키워냈을 뿐 아니라 금융위기가 빈발했던 신흥국에서 사업을 개척한 경험으로 금융위기와 관련된 실물경제, 정책 등에 관해 누구보다 해박했다는 게 그 근거다.

DJ가 짜준 토론장에서 김 전 회장은 관료그룹과 달리 ‘연간 무역흑자 500억 달러 달성을 통한 IMF체제 조기탈출론’이라는 민족주의적 해법을 내놓았다고 한다. IMF프로그램이 한국을 돕는 게 아니라 한국을 국제 금융기관들의 ‘관리체제’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당시 세계경제가 괜찮은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환율에서는 돌을 팔아도 수출할 수 있다”며 1조달러 어치에 달하는 국내 생산설비를 최대한 돌려 수출을 대폭 늘리고 고용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인 신 교수는 1997년 초 정부의 연간 무역흑자 예상치가 28억달러에 불과했던데 반해 실제 416억달러의 흑자를 냈다는 점을 들어 김 전 회장의 주장이 맞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과정에서 경제관료들과 크게 충돌했다. 공개석상에서 “관리들이 열심히 안 한다.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핑계만 댄다. 이래서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자기들이 못하면 자리를 비켜줘야지…. 그러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데, 안 비켜줘서 할 일도 못하게 한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 결과 청와대 쪽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우에 대해 나쁜 보고가 올라갔다고 김 전 회장은 회고했다.

DJ 경제팀의 ‘대우 견제’는 998년 7월, 금융감독위원회의 ‘CP 발행 한도 제한조치’와 10월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등 두 차례의 유동성 규제조치로부터 시작됐다고 신 교수는 기술했다.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 이틀 후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금융권의 자금회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은 11월 28일 DJ가 김 전 회장을 만나기 직전에 ‘김우중 회장 접견 자료’를 DJ에게 제출했다고 한다. 보고서에는 대우그룹의 총차입금이 1997년 말 28.7조 원에서 1998년 9월 말 47.7조 원으로 9개월 사이에 19조 원이나 늘어난 사실이 강조돼 있었다. 또, 대우가 ‘부실’로 인해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가공수출을 늘려 자금난을 넘기려 하고 있다는 의견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김 전 회장과 경제관료들을 경합시키려 했던 DJ는 결국 경제관료들의 손을 들어줬고, 대우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회수가 이어지면서 대우는 1999년 8월 ‘워크아웃’으로 처리됐다는 게 김 전 회장이 밝힌 비화다.

김 전 회장은 당시 대우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본말이 전도됐다’고 주장했다. 수출금융이 막혀서 16조 원이 갑자기 필요해졌고, 금융권이 BIS비율 맞추기 등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3조원의 대출을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대우의 잘잘못여부와 관계없이 외부 여건 때문에 할 수 없이 19조원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것이 왜 ‘기업부실’의 증거냐는 주장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원인이 ‘경영실패’가 아닌 ‘김대중 정부의 기획해체’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자료사진)ⓒ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원인이 ‘경영실패’가 아닌 ‘김대중 정부의 기획해체’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자료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정황들을 근거로 김 전 회장은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는 소위 ‘기획 해체론’을 주장했다.

정부가 대우해체 이후 대우자동차를 미국의 제네럴모터스(GM)에 거의 공짜로 넘긴 것도 큰 판단 오류라고 지적했다.

GM이 대우가 개발한 누비라(라세티로 명칭 변경)를 상하이GM으로 가져가 ‘뷰익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주장이다. 중국에서 후발주자였던 상하이GM은 매출의 70%를 점유한 뷰익 엑셀을 앞세워 중국 1위 자동차회사로 발돋움했다는 설명이다.

또, 대우의 마티즈도 ‘쉐보레스파크(Chevrolet Spark)’로 이름을 바꿔 상하이GM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김우중 회장은 정부가 이렇게 대우차를 잘못 처리해서 한국경제가 손해본 금액만 21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30조 원)가 넘는다고 추산했다. 이는 한국이 금융위기 때에 IMF로부터 빌린 금액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저자인 신 교수는 “한국 정부가 대우자동차를 실패한 투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우 해체에 따르는 비용은 한국경제가 고스란히 부담했고, 투자 성과는 GM이 다 가져갔다”며, “대우 해체는 실패한 정책이고, GM의 성공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