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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도 신뢰도 명분도 잃은 새정연의 '재협상'


입력 2014.08.12 16:53 수정 2014.08.12 17:12        이슬기 기자

<기자수첩>새누리 철벽 알면서도 무조건 '재협상' 외쳐, 대안없고 리더 비판 몰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주례회동을 마친뒤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주례회동을 마친뒤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재협상도 아닌 추가협상도 아닌 다시협상이라니.”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장장 4시간30여분의 마라톤 의원총회를 끝낸 12일 저녁. 의총 결과를 발표하는 박범계 원내대변인을 향해 취재진은 재차 물음표를 쏟아냈다.

이날 박 원내대변인은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이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 박영선 원내대표는 다시 협상을 추진한다”면서 “재협상을 요구한 많은 의원들과 실제 협상 당사자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서 재협상이나 추가협상과 같은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원내대변인은 “8월7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이 전면 백지화 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구체적으로 무효 혹 유효한 사항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특정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 “7일 협의가 미흡하지만 결의문에는 넣지 않는다”는 식의 애매한 답변만 내놓을 뿐이었다.

이에 취재진 일부에서는 “재협상도 아닌 추가협상도 아닌 게 뭐냐”면서 특정 대중가요를 비유로 “협상 갖고 ‘썸’ 타는 거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수사권-기소권 보장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반발과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새정치연합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훈수꾼만 있을 뿐, ‘협상 무효화’ 이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국조특위와 청문회 등 사실상 세월호 관련 모든 과정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은 그간 박 원내대표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결코 쉽지 않은 협상 과정을 이끌어 온 것을 모두 지켜봤다.

수사권-기소권에 대해 새누리당이 ‘절대 불가’를 외치는 만큼, 박 원내대표로서는 현실적으로 최대한 가능한 합의를 이끌기 위해 진상조사위 ‘5:5:4:3’ 구성에 무게를 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내대표 합의 직후 당내에서는 비판이 빗발쳤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물론, 자신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 상임고문 역시 트위터를 통해 재협상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그 누구도 재협상을 가능케 할 대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었다.

오죽하면 지난 10일 박 원내대표가 당내 회의에서 “자기들은 해외로 놀러 다니다가 이제 와서 재협상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을 정도다.

실제 전날 의총장에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다수 의원들은 의총 중 밖으로 나와 “재협상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라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부분이 무효이고, 유효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새정치연합이 진정으로 성과 있는 재협상을 원했다면, 차라리 새누리당이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130명이 단결해서 농성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야 할 일이다. 협상 당사자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이른바 발톱 빠진 호랑이 꼴을 만들어 놓고 무조건 재협상을 하라며 전쟁터에 내모는 것은 결코 공당다운 자세가 아니다.

더 심각한 건 자신들이 세워놓은 리더에게 힘을 실어줄 줄 모르는 고질적 문제다. 앞서 새정치연합은 선거 완패와 공동대표 사퇴라는 당의 존립 위기 앞에서 혼란을 수습할 리더로 박 원내대표를 세웠다.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사실상 처음으로 내놓은 성과에 대해 같은 당 동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을 가한 꼴이다.

게다가 이날 의총에는 약 75명의 의원이 참석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중간에 자리를 뜨면서 의총 막바지에는 40명 정도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만 내뱉은 후 자리를 떠나 버린 모양새다.

한편 새누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과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서로 양보하여 대타협을 이룬것을 백지화시키고 재협상을 하자고 하느냐"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자기부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현숙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은 유효하고 다른 내용은 무효라는 것인가"라며 "이는 명백히 야당이 합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이 재협상 불가 입장을 보인 데 따라, 새정치연합은 실리는 물론 협상 당사자로서의 신뢰도 잃게 됐다.

선거 완패를 반성하겠다며 비대위 대신 ‘국민공감혁신위원회’를 내건 새정치연합이지만, 이날 훈수꾼들이 떠난 자리에 어떠한 책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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