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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됐지만...세계 최고 걸작의 보물창고 '델포이'


입력 2014.08.10 10:16 수정 2014.08.10 10:19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박경귀의 ad Greece>신탁의 예지에 대한 경배,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가 되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델포이 성역을 채운 보물창고들

델포이의 아폴론 성역은 신탁에 감사하는 뜻에서 아폴론에게 봉헌하는 전 세계 각지에서 보낸 기념물과 보물로 가득 찼다. 각국은 저마다 보물창고를 지어 자신들이 바친 보물들을 수장하거나 아폴론 신전에 이르는 ‘신성한 길(Sacred Way)'의 양옆에 기념물을 세웠다. 신에게 받치는 감사의 작품들은 최고의 숭배가 표현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예술작품과 귀중품들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탁월한 작품이 봉헌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아폴론 성역은 그리스 세계의 걸작 예술품의 경연장이 되었다. 델포이를 방문하는 모든 참배자들은 환상적인 작품과 진기한 보물들을 보면서 그 위용과 아름다움에 취하고 아폴론을 경배하는 신비한 성역의 기운을 더욱 더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델포이를 빛낸 숱한 봉헌 작품들은 오랜 세월 동안 대부분 약탈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몇몇 작품들은 당시 아폴론 성역을 가득 채웠던 수천 점의 작품 가운데 천분의 일도 안 될 양일 듯싶다. 그래도 이 단편적인 작품들만으로도 그리스 세계의 탁월한 예술미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델피 박물관은 주변의 깎아지른 절벽과 조화를 이루듯 아폴론 성역의 남서쪽 기슭에 대리석 건물로 건축되었다. 1903년 프랑스 건축가 투르네르(Tournaire)가 설계하여 건축한 이래 여러 차례 증축 및 개축되었다. 뒤로 파르나소스 산정의 암벽이 바라보이는 가운데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서있고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전경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대리석 계단 입구가 아폴론 성역에 오르는 또 다른 ‘신성한 길(Sacred Way)’ 같은 느낌을 준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1층 입구로 오르는 계단이다. 장애인들은 0층(한국의 1층에 해당)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다. 파르나소스의 산정의 절벽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마치 ‘신성한 길’을 오르듯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며 가슴이 설렌다. ⓒ박경귀 델피 고고학 박물관 1층 입구로 오르는 계단이다. 장애인들은 0층(한국의 1층에 해당)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다. 파르나소스의 산정의 절벽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마치 ‘신성한 길’을 오르듯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며 가슴이 설렌다. ⓒ박경귀

델피 고고학 박물관, 대리석을 직립시킨 단순한 구조가 마치 아폴론 성역을 둘러싼 석회암 절벽의 남서쪽 끝자락의 연장 역할을 하는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박경귀 델피 고고학 박물관, 대리석을 직립시킨 단순한 구조가 마치 아폴론 성역을 둘러싼 석회암 절벽의 남서쪽 끝자락의 연장 역할을 하는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박경귀

아폴론 신전에 오르는 ‘신성한 길(Sacred Way)’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보물창고는 아테네 보고(寶庫)다. 여러 나라의 보고의 잔해가 신성한 길 좌우에 늘어서 있지만 복원된 것은 아테네 보고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고는 도리아 양식의 2개의 기둥이 받든 매우 단출한 건물 형태를 보이고 있다. 건물의 메토프에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업적과 그리스 최고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노역과 아마존과의 전투가 부조되어 있었다고 한다.

복원된 아테네 보물 창고 ⓒ박경귀 복원된 아테네 보물 창고 ⓒ박경귀

추정 복원도에 의하면, 건물 외부에 화려한 조상(彫像)들이 장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입구의 오른쪽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신상이 있고 입구 좌우에 스핑크스와 또 다른 신상, 삼족(三足) 향로가 조상(彫像)되어 있다. 또 맨 왼쪽에 수많은 창과 방패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BC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대파하고 노획한 전리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라톤 전쟁의 승전의 기념물을 추가로 조성한 듯하다. 아테네 인들이 그리스 세계를 지켜낸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모든 그리스 국가에서 경배하는 아폴론 성역에 승전의 전리품을 쌓아 기념물을 조성했으리라.

마라톤 승전은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맞붙은 최초의 동양과 서양의 접전이었다. 이미 아테네인들은 전투에서 획득한 전리품으로 ‘영광의 신’ 에우클레이아(Eukleia)를 위한 신전에 봉헌했고, 파르테논 신전의 조상들을 위한 건축물도 제작했다. 따라서 이들이 전투의 승리에 대한 감사 표시로 당연히 델포이의 아폴론에게도 다양한 보물의 진상으로 보답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아테네 보고를 가득 채웠을 보물들은 어느 탐욕스런 약탈자의 손으로 들어갔을까?

아테네 보물창고의 복원 추정도이다. 입구의 오른쪽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신상이 있고 입구 좌우에 스핑크스와 또 다른 신상, 삼족(三足) 향로가 조상(彫像)되어 있다. 또 맨 왼쪽에 수많은 창과 방패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있다. ⓒ 박경귀 아테네 보물창고의 복원 추정도이다. 입구의 오른쪽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신상이 있고 입구 좌우에 스핑크스와 또 다른 신상, 삼족(三足) 향로가 조상(彫像)되어 있다. 또 맨 왼쪽에 수많은 창과 방패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있다. ⓒ 박경귀

아테네 보고의 지붕의 코너를 장식했던 말을 탄 아마존 병사 모습의 조각이다. 지붕의 네 귀나 용마루를 장식하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의 하나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테네 보고의 지붕의 코너를 장식했던 말을 탄 아마존 병사 모습의 조각이다. 지붕의 네 귀나 용마루를 장식하던 아크로테리온(acroterion)의 하나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스프노스 보고(寶庫)의 예술작품

수많았던 보고(寶庫)들은 폐허가 되고 현재 주춧돌만 남아 있다. 다행이 에게 해의 작은 섬 시프노스(Sifnos) 보고의 프리즈 부조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여러 보고들이 신전 건축 양식과 동일하게 다양한 부조를 새겨 화려하게 장식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시프노스 보고의 동쪽 프리즈에는 올림푸스 신들이 트로이 전쟁의 당사자인 트로이 인(Trojans)과 그리스 연합군인 아카이아인(Achaeans)들을 나누어 응원하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아레스,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와 아폴론, 그리고 제우스는 트로이를 응원했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와 아테나와 헤라, 데메테르는 그리스 연합군을 응원했다.

트로이군이 군신 아레스와 제우스 여러 신들의 응원을 받아 10년 동안 버텼지만, 막판에 제우스가 중립으로 돌아서고 아킬레우스가 맹활약하는 바람에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을 맡은 그리스 연합군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신전 프리즈 장식에 단골 소재가 되고 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이자 신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충실한 다큐멘터리 역할을 했다.

서쪽 프리즈에는 아테네, 아프로디테, 헤라의 세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뽑는 파리스의 심판이 부조되어 있었다고 한다. 확인할 수 없어 아쉽다. 시프노스 보고의 부조들은 BC 525년에 제작되었고 모두 아르카익기의 성숙한 예술미를 보여주고 있다.

시프노스 보고(寶庫)의 동쪽 프리즈의 부조, 왼쪽에서 트로이 인(Trojans)을 응원하는 신들의 모습.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寶庫)의 동쪽 프리즈의 부조, 왼쪽에서 트로이 인(Trojans)을 응원하는 신들의 모습.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寶庫)의 동쪽 프리즈의 부조, 오른쪽에서 그리스인(Achaeans)을 응원하는 신들의 모습.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寶庫)의 동쪽 프리즈의 부조, 오른쪽에서 그리스인(Achaeans)을 응원하는 신들의 모습.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의 보고 남쪽 프리즈에 트로이 전쟁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의 보고 남쪽 프리즈에 트로이 전쟁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부조에 묘사된 거인족과 전투하는 헤라클레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부조에 묘사된 거인족과 전투하는 헤라클레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부조에 묘사된 올림푸스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 장면,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시프노스 보고의 북쪽 프리즈의 부조에 묘사된 올림푸스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 장면,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신전의 수호자 낙소스의 스핑크스

아폴론 성역에는 보물창고 외부에도 무수한 보물급 조상(彫像)들이 건조되었다. 유명한 작품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낙소스의 스핑크스다. 에게 해의 섬 낙소스 인들이 봉헌한 보고 앞에 조성되었던 원주(圓柱) 위에 세운 거대한 조상이다. BC 570~56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높이 12미터에 이르는 높다란 원주 위에 얹어져 있어서 아폴론 참배객들의 눈길을 확 끌었을 것 같다.

특히 아폴론 신전을 받치고 있는 다각형 축대 바로 아래에 높다랗게 위치했으니 ‘신성한 길’을 숨 가쁘게 올라오는 참배객들에게 더욱 아름답고 신성하게 보였을 듯싶다. 이곳이 아폴론 신전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숭배 받던 무녀 시빌레(Sibyl)의 바위가 있던 바로 옆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상의 위치 하나만으로도 에게 해의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부유한 섬으로 유명했던 낙소스의 위상을 대변해 준다.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전래되었지만, 그리스에선 두 가지 상반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타난 것처럼 인간을 해치는 괴수로, 한편으로 인간의 사후를 지켜주는 수호신의 우호적 기능으로 인식되었다. 스핑크스는 아폴론 신전이나 여러 보고의 지붕이나 입구에 조상되었다. 아테네의 공설묘지였던 케라미코스에서도 여럿 발견되었다. 그리스 인에게 스핑크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 보다 오히려 친근하고 상서로운 상징물로 더 많이 쓰인 것 같다. 스핑크스의 양태는 시기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대개 여성의 얼굴에 날개 달린 사자 몸통을 하고 있지만 몸통이나 날개 양식은 조금씩 다르다.

낙소스의 스핑크스는 그 상징 이전에 작품 자체의 예술미가 매우 탁월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낙소스는 질 좋은 대리석 생산지 가운데 하나였고 알렉세노르(Alexenor)와 같은 훌륭한 조각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 물론 델포이의 이 스핑크스가 그의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낙소스의 뛰어난 조각술이 반영된 걸작임에 틀림없다.

낙소스의 스핑크스는 두상이 정면을 향하고 몸통이 완전한 좌우 대칭으로 조상되었다. 특히 스핑크스의 앞가슴의 정교하고 균일한 털 무늬, 그리고 거의 반원형에 가까운 날개의 유려한 곡선과 섬세한 깃털 무늬가 다른 곳에서 발굴된 스핑크스에 비해 월등하게 빼어나다. 두상의 코 등 일부분이 훼손되어 얼굴의 표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울 뿐이다. 아폴론을 찬미하는 최상의 예물로 손색이 없다.

오른쪽에서 바라본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 아름다움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오른쪽에서 바라본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 아름다움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왼쪽에서 바라본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 아름다움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왼쪽에서 바라본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 아름다움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이 원래 서 있던 원주의 복원도, 왼쪽은 측면도, 오른쪽은 정면도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낙소스의 스핑크스 상이 원래 서 있던 원주의 복원도, 왼쪽은 측면도, 오른쪽은 정면도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초기 아르카익기(Archaic)의 스핑크스, BC 570년 경 작으로 추정된다. 아티카의 스파타(spata)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무덤 장식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가슴의 털 문양이 육각형의 모습으로 표현된 점이 특이하다.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초기 아르카익기(Archaic)의 스핑크스, BC 570년 경 작으로 추정된다. 아티카의 스파타(spata)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무덤 장식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가슴의 털 문양이 육각형의 모습으로 표현된 점이 특이하다.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아테네 케라미코스에서 발굴된 스핑크스, BC 560~550년 작품으로 추정된다. 케라미코스 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아테네 케라미코스에서 발굴된 스핑크스, BC 560~550년 작품으로 추정된다. 케라미코스 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아름다운 ‘댄서의 원주(圓柱)’

거의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원주 조상도 있다. ‘댄서의 원주(The Column of the Dancers)’로 명명된 작품이다. 원주의 가장 밑동과 원주 상단에 조각된 세 명의 여인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밑동에 세 개의 아칸서스(Acanthus) 잎이 활짝 펼쳐졌고 그 가운데 원주가 줄기처럼 힘차게 솟았다. 원주의 상단에도 여인들의 발밑과 머리 위를 아칸서스 잎이 장식하고 있다. 세 여인들은 옴파로스를 담은 가마솥 모양의 큰 용기를 머리로 이고 있다. 이 작품은 아테네인들이 BC 330년에 봉헌했고 아폴론 신전의 정면 동쪽에 조성되었다.

아칸서스 잎과 세 여인의 머리가 육중한 옴파로스를 담은 용기의 하중을 자연스럽게 받드는 구조로 조각되었다. 두상의 상단부가 안쪽으로 기울게 조각되어 무게 중심이 기둥의 중앙으로 쏠리도록 배려되었다. 세 여인의 머리로 상부의 구조물을 받치는 카리아티드(caryatid) 양식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적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구조 공학적인 배려를 한 점이 놀랍다.

특히 기둥의 하단부터 상부에 이르기까지 아칸서스 잎을 조각하여 기둥의 화려함을 보태고, 옴파로스를 세 여인이 받드는 형상으로 만들어 아폴론 성역이 대지의 배꼽이라는 상징을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아폴론 신전 앞 바로 동편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 원주 조각이 아폴론 성역의 상징 역할을 했었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댄서의 원주’의 밑동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이 아름답게 조각되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밑동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이 아름답게 조각되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상단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 조각 위로 아름다운 세 여인이 머리에 옴파로스를 이고 있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상단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 조각 위로 아름다운 세 여인이 머리에 옴파로스를 이고 있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아름다운 상단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과 세 여인의 머리가 육중한 옴파로스를 담은 용기의 하중을 자연스럽게 받드는 구조로 조각되었다. 머리 상부가 안쪽으로 기울게 조상된 점을 주목하라.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아름다운 상단 조각이다. 아칸서스 잎과 세 여인의 머리가 육중한 옴파로스를 담은 용기의 하중을 자연스럽게 받드는 구조로 조각되었다. 머리 상부가 안쪽으로 기울게 조상된 점을 주목하라.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상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옴파로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상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옴파로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복원 추정도, 기둥의 하단부터 상부에 이르기까지 아칸서스 잎을 조각하여 기둥의 화려함을 보태고, 옴파로스를 세 여인이 받드는 형상으로 만들어 아폴론 성역이 대지의 배꼽이라는 상징을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댄서의 원주’의 복원 추정도, 기둥의 하단부터 상부에 이르기까지 아칸서스 잎을 조각하여 기둥의 화려함을 보태고, 옴파로스를 세 여인이 받드는 형상으로 만들어 아폴론 성역이 대지의 배꼽이라는 상징을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그리스의 효자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아폴론에게 봉헌된 작품 중에서 감동적인 설화가 얽힌 것도 있다.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의 조각이다. 이 두 형제는 아테네의 현인 솔론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빈객으로 머물 당시, 크로이소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솔론이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 텔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든 바로 그 사람들이다. 솔론이 이렇게 말했다고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 다음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이옵니다. 아르고스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살림도 넉넉하고 체력도 뛰어났사옵니다. 둘 다 경기에서 상을 탄 적이 있는 이들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사옵니다. 아르고스에서 헤라 축제가 개최되었을 때 이들 형제의 어머니는 소달구지를 타고 급히 신전으로 가야 하는데, 들판에 나가 있던 소들이 제때에 돌아오지 못했사옵니다.

시간이 촉박하자 두 젊은이가 몸소 멍에를 쓰고 어머니가 타고 있는 달구지를 끌었사옵니다. 그리고 45스타디온을 달려 신전에 도착했답니다. 그들은 축제에 모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완수한 다음 가장 훌륭한 죽음을 맞았는데, 신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 좋은 것임을 보여주셨던 것이옵니다.

아르고스 인들이 둘러서서 남자들은 두 젊은이의 체력을 찬양하고, 여인들은 그런 자식들을 두어 행복하겠다고 어머니를 칭찬했사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의 행위와 명성이 너무나 기뻐 여신의 신상 앞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명예를 그토록 높여준 두 아들 클레오비스와 비톤에게 여신께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베풀어 달라 기도했사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자 두 젊은이는 제사와 회식에 참가한 뒤 쉬기 위해 신전 안에 누었다가 다시는 일어나니 않았사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지요. 아르고스 인들은 그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장부(丈夫)들이라고 보고, 그들의 입상을 제작해 델포이에 봉헌했나이다.“

문헌에 나오는 그리스 최고(最古)의 효자들의 이야기다. 물론 오만한 크로이소스는 솔론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위대한 왕인 자신을 지목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꼽았다는 점에 화가 나 솔론을 내쳤다. 하지만 그가 키루스에게 정복당해 죽음을 당할 시점에 가서야 솔론이 말한 진정한 행복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아르고스 인들이 아폴론 성역에 자랑스러운 두 형제의 조상을 봉헌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델포이를 방문하는 참배객 마다 두 형제의 효심을 되새겼으리라.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의 조각상은 BC 590년경에 펠로폰네소스 조각가 폴리메데스(Polymedes) 또는 아가메데스(Agamedes)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팔이 몸통에 붙고 다소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초기 쿠로스(Kouros)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각각 높이가 2.18m와 2.16m일만큼 거대하게 이상화 되었지만, 이들의 일화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이 훌륭한 체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걸맞게 단단한 근육이 잘 표현된 수작(秀作)으로 평가하고 싶다. 특히 엉덩이의 유려한 볼륨감이 일품이다.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의 조각. 델피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의 조각. 델피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 조각의 후면.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 조각의 후면.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 조각의 세부. 엉덩이의 유려한 볼륨감이 일품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 조각의 세부. 엉덩이의 유려한 볼륨감이 일품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불안정 속의 기묘한 균형

봉헌물 중에 구조적으로 독특한 조각상도 있다. BC 460~450년에 제작된 향로 청동상(Bronze incense-burner)이다. 젊은 여인이 양 손으로 향로(香爐)가 담긴 반구(半球) 형태의 가마솥을 들어 올리고 있는 청동상이다. 기이한 것은 페플로스를 입은 연약해 보이는 여성이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무거워 보이는 반구와 향로를 가볍게 들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무게나 부피가 큰 물건을 받칠 때에는 삼각 또는 사각의 지지대 형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인 데 반해 이 작품은 두 손의 지탱하게 조각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례다. 균형을 잡기 위해 양 발을 크게 벌리지도 않았다. 곧 쓰러질 듯 매우 불안정하게 보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서 있다. 이는 불안정한 외형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실제 조각의 전체적인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조각가의 특별한 성취가 돋보인다.

독특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향로 청동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독특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향로 청동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황금 신상

인간을 통한 신을 찬미를 넘어 신을 직접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봉헌물도 있다. 아폴론 성역의 주인인 아폴론과 그의 자매 아르테미스 여신,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인 레토의 신상을 금과 상아로 아름답게 조각한 것이 그것이다. 금과 상아로 만든 조각상(Chryselephantine Statues)이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으로 이름났던 크로이소스 왕이 봉헌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폴론의 신상과 아르테미스 신상이다.

두 신의 서 있는 실물 크기에 맞춰 빛나는 황금 관과 황금 귀거리, 황금 팔찌, 황금 치장물들을 부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파르테논 신전의 내실에 안치되었던 상아에 황금을 입힌 거대한 아테나 입상이 연상된다. 이 신상들은 아폴론 신전에 조상되어 있었을 것 같다. 신이 황금 치장을 원하지 않았을 텐데 황금 조상이 신을 더욱 위대하게 보이게 만들 것이라는 인간의 허욕(虛慾)이 빚어낸 작품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봉헌하는 사람이나 보는 이마다 신에 바치는 최대의 찬미로 자부했을 것임에 틀림없지만.

아폴론으로 추정되는 황금 두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으로 추정되는 황금 두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의 실물 크기 입상에 황금 치장을 한 신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의 실물 크기 입상에 황금 치장을 한 신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르테미스로 추정되는 황금 두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르테미스로 추정되는 황금 두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르테미스의 실물 크기 입상에 황금 치장을 한 신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르테미스의 실물 크기 입상에 황금 치장을 한 신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피티아 제전의 영웅들

아폴론 성역에 있는 스타디온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피티아(Pytia) 제전이 열렸다. 이 제전은 체육과 문예가 합쳐진 종합적인 축제로 올림피아 제전 못지않게 명성이 높았다. 이 제전은 복싱, 레슬링, 전차 경기, 달리기 등 체육 종목은 물론, 악기 연주, 시 경연 등 문예 축제의 성격도 강했다. 음악과 문예의 신인 아폴론을 기리는 데 적합한 종목을 포함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전은 수많은 탁월한 영웅과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아폴론의 은덕과 이들 경연의 우승자를 기리는 조각과 봉헌물이 쏟아졌다.

찬가로 유명했던 시인 핀다로스가 지은 피티아 송가는 아폴론 성역에 있는 경기장에서 BC 498년에 열린 왕복달리기 경기에서 우승한 텟살리아의 히포클레아스를 위하여 불러진 것이다.

“그는 왕복달리기 경주에 참가해, 탁월하게 우승함으로써
파르나소스 부근에 사는 많은 마을 주민들에게 그의 이름을 전합니다.
오, 아폴론 신이여, 인간의 모든 일은 시작이든 종말이든
하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의 승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선 당신의 호의에 의해,
다음으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타고난 혈통에 기인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레스의 무기로 완전무장하고 달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였습니다.
키르하(Kirrha) 암벽 아래 짙푸른 초원에서 열린 경기에서
빠른 발을 가진 프리키아스를 물리치고 우뚝 선 것입니다.
미래의 운명도 둘 모두에게 호의적이어서
그들의 영광을 드러내는 큰 꽂을 피우기 바랍니다.

¨¨¨
그들은 결코 청동 빛 하늘까지는 결코 오를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간 끝에
죽을 운명의 인간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배를 타거나 걸어서 자유롭게 방랑하더라도
히페르보레아 사람들이 얻은 놀라운 길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피티아 제전에서는 영광의 승리자에게 바치는 이러한 송가가 여러 번 울려 퍼졌을 것이다. 또 우승자들은 델포이에서 뿐 아니라, 고향은 물론 전 그리스 세계에 명성을 퍼뜨렸을 것이다. 델포이에 세워졌을 수많은 우승자 조각 중 하나가 남아 있다. 아기아스의 대리석상(Marble statue of Aghias)이 그것이다.

아이기스는 BC 5세기에 격투기에 가까운 레슬링 종목인 판크라티온에서 우승한 텟살리아 청년이다. 그의 우승을 기려 텟살리아 다코스 2세가 아폴론 신에게 리시포스(Lysippos)가 제작한 청동상을 봉헌했다. 아이기스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체육 선수의 완벽한 몸매를 보여준다. 운동으로 단련된 군살 없는 상반신과 복근, 든든한 하체가 돋보인다. 당시 판크라테온 선수는 요즘의 헤비급에 해당되었으니 체구 또한 매우 당당했을 것이다.

판크라티온 경기에서 우승한 아기아스 조각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판크라티온 경기에서 우승한 아기아스 조각상,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운동 선수로 추정되는 조각, 군살 없는 상반신의 근육의 표현이 일품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운동 선수로 추정되는 조각, 군살 없는 상반신의 근육의 표현이 일품이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오른쪽에 있는 나이든 남성이 왼쪽의 청년의 우승을 선언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 청년이 왼손에 아령(halteres)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멀리뛰기에 출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오른쪽에 있는 나이든 남성이 왼쪽의 청년의 우승을 선언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 청년이 왼손에 아령(halteres)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멀리뛰기에 출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성역에 있는 스타디온, 이곳에서 피티아 제전이 열렸다. 핀다로스가 피타아 송가에서 “키르하(Kirrha) 암벽 아래 짙푸른 초원에서 열린 경기에서...”라고 읊은 정경이 저절로 떠오르며, 관람석을 가득 메웠을 경기장의 열기를 상상할 수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아폴론 성역에 있는 스타디온, 이곳에서 피티아 제전이 열렸다. 핀다로스가 피타아 송가에서 “키르하(Kirrha) 암벽 아래 짙푸른 초원에서 열린 경기에서...”라고 읊은 정경이 저절로 떠오르며, 관람석을 가득 메웠을 경기장의 열기를 상상할 수 있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델포이가 최고의 예술품 경연장이 된 이유

아폴론 성역에는 신탁의 신통력에 감사하는 봉헌뿐만 아니라 승전의 기쁨은 물론이고, 효자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와 같은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도 아폴론에 감사하는 봉헌물이 바쳐졌다. 또 피티아 제전에서 인간의 탁월성을 입증한 경우에도 아폴론의 은덕으로 여겼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국력과 감사의 크기에 맞게 최고의 예술작품들을 창조하고 이를 아폴론에게 봉헌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건축기술과 조각 기법, 실험적 양식들이 탄생했다. 대리석과 황금, 청동, 그리고 상아와 나무 등 다양한 재료들은 예술가의 장인 정신과 신에 대한 경건한 숭배로 밑거름으로 아름답고 새로운 상징물을 만들어냈다.

대지의 중심인 아폴론 성역에 세운 봉헌은 그리스 세계에 대한 공개적인 데뷔이자 공헌이었다. 델포이 성역에서 빛나는 작품은 그리스인을 넘어 세계인들의 사랑과 찬탄을 받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델포이 성역이 보물들로 넘치며 걸작 예술품들의 경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다음 호에도 델포이의 걸작 예술품과 건축 예술이 계속 소개됩니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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