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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임 병장의 잊지못할 불편한 진실


입력 2014.07.26 10:13 수정 2014.07.26 10:20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형편없는 군의 작전체계, 범죄자에 온정적인 언론

지난 6월 23일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GOP에서 임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됐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3일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GOP에서 임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됐다. ⓒ연합뉴스

어쩌면 이 사건은 이미 당신의 뇌리에서 잊혔을지 모른다. 정보 과잉의 시대,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을 접수하도록 요구 받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광주시 헬기 추락 사고를 봤고, 말레이시아 항공기 피격사건을 접했으며, 유병언의 죽음을 둘러싼 후폭풍을 지켜보고 있다. 세상은 넓고 사건은 많다. 얼마 전 수사결과가 발표됐지만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에 비하면 미미한 이목밖에 집중시키지 못한 이 사건을 사람들은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라 명명했다.

피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사한 구조의 사건이야 몇 개나 더 있기 때문이다. 2005년의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 그 2년 뒤의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총기 난사사건, 그리고 또 수많은 일탈의 이름들. 어느덧 병리적 인간의 사건사고에 익숙해진 우리는 더 이상 임병장의 일탈에서도 그다지 배울 것이 없어진 걸까. 아니다. 임병장 사건은 또 다르다.

이 사건은 2014년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또 한 번 보여준 ‘종합재앙세트’ 같은 사건이다. 고정관념 없이 볼 경우 임 병장은 심리가 불안정한 사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그런데도 이 나라 언론은 군인의 본분을 잊은 부적격 범죄자에 대해 은근히 온정적이다. 그런 엉터리 여론을 유포시키는 이 나라 언론의 현주소와 함께 이 사건은 또 미덥지 못한 우리 군대 조직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보여준다. 항구적 불안정 사회인 대한민국에 이 사건이 주는 암시를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상대를 조준사격한 그는 심리가 불안정한 위인이 아니다

정식 사건명은 길다.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난사 사건. 2014년 6월 21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의 육군 22사단 55연대 13초소에서 전역을 불과 3개월 앞둔 22세 병장 임아무개는 14시부터 19시 55분까지 GOP(일반전초) 주간 경계근무를 섰다. 근무를 위해 지급받은 것은 K-2 소총 한 자루와 수류탄 1발 실탄 75발 등이다.

근무 종료 후 복귀한 임 병장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사건을 감행했다. 초소 순찰일지 뒷면 겉표지에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그림이 더 늘어난 것을 보았던 게 직접적인 사건의 동기로 전해진다. 임병장은 20시 15분경 GOP 후방에서 만난 동료 장병에게 1발의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쐈다. 도망가는 장병을 상대로도 총격은 이어졌으며 생활관으로 돌아간 뒤 복도에서 마주친 인원에게도 방아쇠를 당겼다. 결과적으로 5명 사망에 7명 부상(2명은 중상)이라는 참혹한 사상자가 나왔다. 임병장은 K-2 소총과 실탄 수십 여 발을 소지하고 부대를 탈영했다.

사격 과정에서 짚을 수 있는 한 가지 포인트는 임 병장이 그리 많은 실탄을 소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료 병사 12명에게 난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은 불과 10발의 실탄이었다. 이는 임병장이 ‘조준 사격’을 실시했다는 강력한 정황증거로 제시된바 있다. 결국 사건 발생 17일 뒤(7월 8일) 실시된 현장 검증에서 임병장 본인도 조준사격 사실이 있음을 인정했다(처음엔 인정하지 않았던 임병장이 조준사격 사실을 시인한 것은 “CCTV에 사격모습이 찍혀 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알려진다).

임병장의 조준사격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임 병장은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우호적 논리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A급 관심병사였던 임병장에 대한 군의 관리책임 또한 제기되고 있으나 임 병장이 처음부터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군대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폭력의 공간이다. 심지어 실탄을 취급하는 GOP에서 상대방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말년병장을 어느 누가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까. 이후 임병장을 찾는 과정에서 그가 수색대와 모두 3차례나 마주친 것으로 드러났지만 임 병장은 능숙한 거짓말로 세 번의 위기를 전부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를 우리는 어디까지 ‘불안정’하다고 말해야 할까.

이 말은 군에 아무런 책임과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군의 문제는 ‘관리능력’보다는 ‘작전능력’에서 훨씬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번 사건에서 군은 유사시에 철저히 대비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조직’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만약 그가 인민군이라면?” 작전능력 부족한 우리 군이 못 미덥다

탈영 이후 임 병장은 적군(敵軍)으로 선포됐다. 사건 발생 이후 2시간이 지나 부랴부랴 대책본부를 뿌린 국방부는 강원도 고성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주요 도주예상 루트에 검문소를 설치해 수색작업에 돌입했다. 수색에 동원된 인원은 9개 대대 3500여명. ‘임아무개 병장 찾아내기 작전’이 시작된 셈이지만 전개는 지지부진했다. 왜였을까? 간단하다. 군의 작전능력이 기대만큼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임 병장과 수색부대가 교전을 했다는 뉴스가 전송됐지만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소대장 김중위가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군은 “탈영병이 투항하지 않을 경우 사살도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이 무렵부터 군에게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작전능력이 있는지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군 당국은 오인사격의 가능성을 경계해 야간 특수부대 투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길한 두 번째 포인트와 만나게 된다. 국군의 적이 만약 임병장 1인이 아닌 북한군 특수부대였다면? 그래도 우리 군은 오인사격 없이 북한군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까? 모골이 송연해질 일이다. 임 병장 사건은 국군의 레벨이 국민들의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인사격은 23일 오전에도 발생해 진상병이 우측 관자놀이를 스치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임 병장의 소재가 명확하게 파악된 것은 사건발생 이틀 후인 23일 08시 무렵이다. 임 병장과 10m 이내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 군은 투항 권고를 시작했다. 11시경에는 임 병장의 부모와 형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임병장은 “나는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고 말하며 버텼다.

14시 25분경 종이와 펜을 요구한 임 병장은 소총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쏴 자살을 시도하려다 수색대에 생포됐다. 함께 입수된 유서(추정문서)에는 가족과 희생자 가족에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응급수술을 받은 임병장은 다음날인 24일에는 가족과 30분간 면회를 할 수 있었다. 동료들을 조준사격 해 목숨을 빼앗은 임 병장이 스스로의 목숨에 대해서는 ‘훨씬 조심스러웠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잔인한 논평일까.

흥미로운 것은 사건을 지켜보는 여론의 반응이었다. 수색대와 임 병장의 거리에 반비례해서, 그러니까 수색대가 임 병장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여론은 임 병장에 우호적으로 흘러갔다. 동료병사 5명을 죽이고 7명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임 병장도 역시 피해자’라는 여론이 생성된 건 몇 번을 되짚어 봐도 놀라운 일이다.

‘임병장도 피해자’라는 엉터리 여론에 노출된 이유

변호인단을 포함해 임 병장에 우호적인 여론은 흔히 ‘왕따’ 문제를 거론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사람도 잘못이 있다’는 엄청난 논리가 된다. 임 병장이 남긴 메모의 내용을 보자. 그의 글은 두서없이 전환되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대담하게 피력한다.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나 같은 건 잊고 행복하게 살아. 그리고 모두에게 미안하다. 먼저 유가족 분들에게도 사과한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살인을 저지른 건 크나큰 일이지만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테니까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고 어린애들이 장난삼아 개를 괴롭히거나 곤충이나 벌레를 죄의식 없이 죽이는 것처럼 자신이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그들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놀랍게도 임 병장의 이 메모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군은 왕따(집단따돌림)가 횡행하는 조직이라는 선입견에 이 유서가 정확히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 병장은 체포 이후 묵비권 행사, 세 명의 변호사 선임 등의 과정을 거쳐 ‘집단 따돌림’을 사건의 본질로 도치시키기 시작했다. 임 병장의 부모 역시 생포과정에서 군에 책임을 돌리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며 적잖은 충격을 줬다(“멀쩡하던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임병장,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류의 글들이 진지한 어조로 넘실대고 있다.

그 외에도 임 병장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많다. 사건 직후 언론은 ‘강원도 양구군’으로 장소를 보도했으나 오보로 밝혀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목도했던 그 끝없는 ‘오보 퍼레이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론이 무차별적 속보경쟁에 몰두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탈영한 임병장을 찾는 수색대가 방탄조끼도 없이 빈총으로 작전에 나섰다는 사실 역시 세월호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위험불감증의 잔존을 말해준다.

화룡점정은 ‘눈물 앞에선 어떤 이성도 발휘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임 병장을 수차례 접견한 김정민 변호사는 “임 병장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울었다”고 전했다(6월 30일 연합뉴스 인터뷰). 임 병장은 “사회는 이렇게 못나고 힘없는 사람을 밟는다”고 얘기하면서도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임 병장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데 많든 적든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무기고에 반납하지 않은 총을 가지고 동료를 조준 사격했던 바로 그 때, 더 ‘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였느냐고. 살아있다는 특권으로 살인조차 소명의 기회를 얻는 이 기묘한 메커니즘의 한 가운데에서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임 병장 사건은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수준을 알게 해 준 뜻하지 않은 바로미터로 남을 것이다. 당신의 뇌리에서는 이미 잊히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때 동료였던 임 병장의 손에 죽어간 피해자들의 이름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멍에로 남을 것이다.

글/이원우 미래한국 편집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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