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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속 마이크 지킨 고 유채영, 영원히 기억할게요


입력 2014.07.26 10:15 수정 2014.07.26 10:18        민교동 객원기자

1990년대 데뷔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위암 말기 투병에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위암 투병 중이던 배우 유채영이 지난 24일 세상을 떠났다. ⓒ 150엔터 위암 투병 중이던 배우 유채영이 지난 24일 세상을 떠났다. ⓒ 150엔터

그토록 늑장을 부리던 장마가 드디어 한반도를 뒤덮었다. 그나마 낮에는 시들하다 밤에만 많은 비를 뿌리던 장마전선이 24일부터는 낮에도 꽤 많은 비를 뿌렸다. 특히 24일 오전에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꽤 많은 비를 뿌렸다.

마치 하늘도 울고 있는 것인지, 장맛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신 24일 오전 8시 끝내 유채영이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유채영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150엔터테인먼트입니다. 가수 겸 배우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향년 41세(만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선고 받아 투병 중이던 유채영이 24일 오전 8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습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습니다. 위암 투병 끝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고(故) 유채영 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후 서울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빈소(상주 김주환)가 마련됐다. 고인의 장례 절차는 기독교식 3일장으로 진행됐다. 발인식은 26일 오전 7시 40분, 화장 후 분당 서현 추모공원에 안치된다.

소속사의 설명처럼 고 유채영은 가수 겸 배우였다. 또한 빼어난 방송인이기도 했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였던 지난 89년, 17살의 나이로 그룹 ‘푼수들’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한 유채영은 1994년 혼성그룹 쿨의 멤버로 1집 앨범 ‘너 이길 원했던 이유’가 히트를 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95년 쿨에서 탈퇴한 유채영은 99년 솔로 가수로 변신해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

2002년 영화 ‘색즉시공’을 통해 배우로 변신한 유채영의 코믹 연기로 각광을 받았고 이후 ‘누가 그녀와 잤을까’ 등의 영화에 출연한다. 또한 ‘패션왕’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등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비록 단역이긴 하지만 2011년엔 드라마 ‘반짝 반짝 빛나는’에 출연해 주인공인 절친 김현주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유채영은 꾸준히 활약해왔으며 라디오 DJ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해에는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음에도 유채영은 지난 6월말까지 MBC 라디오 ‘좋은 주말’ DJ로 활동했다.

라디오에서 하차한 뒤 채 한 달이 안 돼 사망한 것인데 병마와 싸우면서도 청취자들의 곁을 지키던 유채영은 아마도 더 이상 몸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마이크를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말기암 환자들은 엄청난 고통으로 힘겨워 한다.

유채영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인은 그 힘겨운 고통의 시간 동안에도 연예인으로서 현직에서 대중들과 호흡했다. 의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집념이며 프로의식이다.

한 암 전문 의사는 “지난 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올해 7월에 사망했는데 정확한 환자의 상태까진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상당히 힘들게 투병 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이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며 라디오 DJ로 마이크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한 명의 연예인을, 언제나 대중 곁에서 큰 웃음을 주기만 했던 스타를 떠나보내게 됐다.

90년대 연예계는 가요계가 전성기였다. 90년대만 해도 100만 장 넘게 팔리는 밀리언셀러 가수들이 넘쳐 났으며 수많은 댄스가수들이 무대를 장악했다.

2000년대 이후 영화와 드라마 시장이 급증하면서 요즘에는 톱스타인 가수보다 배우들이 더 많지만 90년대에는 가수가 연예계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됐으며 유채영 역시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 가요계가 급격히 축소된 것이다. 지금은 음원 시장이 틀을 갖추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불법 다운로드가 극심했고 이로 인한 음반 판매량은 급감했다. 대신 영화와 드라마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가요계에 투자되던 투자금도 대부분 영화계와 드라마 업계로 떠났다.

이로 인해 90년대 스타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90년대 인기를 얻었던 배우들은 2000년대 이후 더욱 화려한 나날을 보낸다. 90년대 스타인 이병헌이 지금 더욱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톱스타라 불리는 배우들 가운데에는 90년대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40대 스타들이 꽤 많다. 장동건 정우성 배용준 이병헌 김혜수 전지현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9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가수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랐던 이들 몇몇만 여전히 콘서트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로 변신하거나 방송인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예계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도 많지만 톱스타로 군림하던 90년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유난히 90년대 댄스가수 출신 가운데에는 사건사고에 휘말려 연예계를 떠난 이들도 많다. 최근에도 고영욱 신정환 탁재훈 등이 물의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그렇지만 유채영은 한 결 같이 연예계를 지키며 꾸준하게, 또 성실하게 활동을 이어왔다. 2000년대 이후 톱스타의 자리는 아니지만 영화와 드라마에서 맛깔 나는 조연 캐릭터를 소화했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선 망가지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혼신의 자세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별다른 사건사고에 휘말려 물의를 빚은 적도 거의 없었다.

동료 연예인들도 고인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 사이로 90년대 가요계를 함께 빛낸 스타인 김창렬은 24일 오후 방송된 SBS 파워FM ‘김창렬의 올드스쿨’ 오프닝에서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라며 흐느꼈다.

바로 유채영이라는 소중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청취자들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흐느끼던 김창렬은 “죄송합니다”라며 “왜 이 얘기를 하면서 울지”라고 말했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90년대 가요계에서 함께 활동했던 주영훈은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 또 사랑하는 동료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도 비를 뿌리며 함께 울어줍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채영아, 부디 아픔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렴~ 미안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윤종신은 “방송 밖에선 항상 차분하고 수줍었던 후배 유채영 양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리수는 “언니 예전에 고생한 것, 말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픔 많았던 것, 전부 다 잊고 하늘에서는 행복만 가득하길 빈다. 언니는 천사니까 천국 갈 것이다. 사랑한다”라는 글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절친 배우 김현주와 박미선 송은이 등은 병실을 지키며 고인이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길 끝까지 응원하다 결국 임종까지 지켰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스타가 갔다. 유채영, 본명은 김수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전 밝았던 고인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고 싶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마이크 앞을 지킨 고인에 대한 대중의 마지막 예의는 아마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일 테니까.·

민교동 기자 (minkyodong@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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