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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의 소시지 500원' 이런 대학축제 왜 하나


입력 2014.07.20 10:07 수정 2014.07.20 10:09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아이돌 모셔오기 혈안에 축제 비용 잡음

모대학에서 축제가 끝난 마지막날 축포를 쏘아올리고 있다.(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무관)ⓒ연합뉴스 모대학에서 축제가 끝난 마지막날 축포를 쏘아올리고 있다.(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무관)ⓒ연합뉴스

세월호 사고에 따른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로 올해 ‘5월 대학축제’ 일정들이 대부분 취소되면서 봄 대목을 노리던 인기가수들과 연예기획사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가수의 인기와 기획사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수 억 원에서 10억원 대의 수익을 날려버린 셈이다.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들과 ‘K-Pop’ 열풍으로 사회가 들썩대면서 대학축제가 인기 '아이돌스타’들의 경연장(競演場)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현실에서, 세월호사고 이후 전 국민을 집단최면상태로까지 몰고 간 언론들의 무책임한 선동이 결과적으로 대학과 학생들이 올 봄 대학축제를 취소하고 ‘대학축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엘리트문화를 정립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하면서 대학축제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음주와 선정적 추태 부추기는 프로그램들

"어제 모텔에 들어가던 게 걔랑 Mary…? 계란말이… 6,000, 그 남자의 소시지… 8,000, 뜨거운 좋아 오뎅탕… 8,000, 벗겨줘…나의 튀김옷…모듬튀김… 7,000,핡…나 지금 급해…나를 젖게 해줘…마른안주… 6,000"

서울 강북의 명문사립대 2012년 봄축제 캠퍼스주점의 메뉴 판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창의력과 발랄함(?)이 이 정도로 유치하고 낯뜨겁고 뻔뻔하다. 매년 대학중간고사 직후인 5월 중순이 되면 전국 대학가가 축제로 법석이다. 이런 대학축제들이 과연 대학생활의 낭만과 젊은이의 발랄한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대학생들의 축제일까?

대학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선정적 캠퍼스주점과 음주 추태, 과도한 연예인초청 경쟁이 대학축제의 본질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위의 메뉴 판만큼이나 야한 차림의 여대생들이 캠퍼스주점 호객행위와 서빙을 하며 처음 만나는 남녀학생들을 합석하도록 유도하고, 술을 마시며 신체접촉이 이루어지는 게임을 통해 처음 만난 이성과의 낯뜨거운 스킨십을 조장한다.

작년 가을 강원도 한 대학축제에서는 여학생 몸에 부은 우유를 남학생이 여학생 옷 속으로 얼굴을 처넣고 핥아먹는 '커플 우유 마시기’ 대회로 선정성 물의를 일으켰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등학생 등 미성년자들도 아무런 제지 없이 이런 행사에 끼어든다는 사실이다. 대학축제에서 미성년자나 재학생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10대들이 인터넷을 보고 이런 축제들을 찾아 다니며 탈선을 즐기는 것이다.

축제기간 중 학생들이 도가 넘는 음주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대학캠퍼스 내 금주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축제기간 중의 음주와 선정적 추태보다도 더 큰 문제는 지나친 연예인모시기 경쟁이다. 요즘 대학축제에서는 행사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감은 사라지고 오직 어느 아이돌 그룹이 공연하느냐가 관심과 화제의 대상이다.

대학들의 도를 넘는 연예인 모시기 경쟁

국회 박성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대학축제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전국 10개 국립대학이 축제 당 각각 지출한 평균예산은 1억 1,700만원이었으며, 그 중 연예인 섭외비용이 4,800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40%를 넘었다. 전북대(9,300만원)와 제주대(8,800만원)가 전국 최고를 차지했고, 특히 작년 축제 때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강원도의 K대학은 전체예산(8,635만원)의 50%가 넘는 돈을 연예인 섭외비용으로 썼다. 대부분의 예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국립대학들이 축제 때마다 인기연예인들을 불러 예산을 펑펑 쓰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 축제예산 2억 3700만원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한 제주대학은 2010년 이래 매년 2억원 이상을 축제에 써오면서 연예인 초청비용도 전국 최상위권이다. 학생수가 서울대의 70% 남짓한 제주대학이 서울대의 두 배 이상의 축제비용을 쓴 것이다. 연예인 초청비용은 연예인의 유명세나 그룹인원 숫자 등에 따라 대체로 1,000만원에서 4,000만원에 이르고, 지방대학의 경우에는 출장부대비용이 더 추가된다. 연예인공연에 필요한 2,000만원 안팎의 무대설치비용 등을 감안하면 대학에서 연예인초청으로 뿌리는 돈은 그 액수가 더욱 늘어난다.

이처럼 대학들이 인기연예인 초청에 앞다투다 보니 각 대학이 축제기간에 초청하는 연예인그룹의 숫자는 한둘이 아니라 많게는 10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그 덕분에 연예인들에게 5월은 대학을 상대로 인기와 돈을 챙기는 황금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되는 대학축제의 난센스

대학들이 연예인 초청에는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학생들 자체행사 지원에는 인색하다. 한 지방대학의 경우 연예인 섭외비 3800만원, 무대 설치비 2000만원 등 연예인 초청공연에 총 5,800만원을 지출하면서 학생동아리 공연 및 전시회에는 고작 450만원만 지원했다. 연예인 없이는 대학축제가 아예 진행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면서 정작 학생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꾸미는 행사를 지원하는 금액은 점점 빈약해지거나 아예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캠퍼스축제가 연예인들의 한탕 공연장이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난센스는 연예인 공연에 몰려다니는 극성 팬들의 무례와 몰염치다. 2013년 모 대학 가을축제에서 공연장 맨 앞자리들을 점령하고 카메라셔터를 눌러대며 몰상식한 소란을 피우는 팬클럽 극성회원에게 한 여학생이 "여기 OO대 축제지 OOO(유명 인기 아이돌)콘서트 아니거든요?"라고 하자, 한 팬이 "야 조까 유난 떤다. 뭐라 하는지 알아? 여기 OOO콘서트 아니고 OO대 축제래. 어이가 없어가지고, 고려대라도 된다면 내가 말을 안 해. 왜 저런대?"라며 빈정대기까지 했다. 학교와 학생들이 떼돈 들여 벌인 잔치판에 공짜로 몰려와 “우리 오빠들이 너네 학교까지 와 주는 걸 감사하라”는 등 적반하장이니 기가 찰 일 아닌가! 학생들에게 분노와 모멸감을 심어주는 이 따위 행사에 왜 큰돈 써가며 난리인지 학생회나 학교 모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학에서는 다양한 학술,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나 나눔 문화를 실천하는 등 대학축제문화에 대한 자성(自省)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축제 때 장애인을 초청해서 나눔과 봉사의 행사를 갖거나 학생들을 위한 취업면접특강을 마련한 학교도 있다. 외국학생들과의 전통문화교류행사나 여학생들의 한복파티와 전통공연을 개최하는 학교도 있다. 이처럼 학생들 스스로가 축제의 주체가 되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새로운 축제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정작 학생들은 뒷전의 관중일 뿐 노래 몇 곡 부르고 비싼 공연료를 챙기는 연예인들과 극성 팬들이 설쳐대는 주객전도의 아이러니를 타파할 해법을 학생들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축제비용과 관련한 잡음 또한 무성하다

대학축제 비용들은 학생회비, 학교측 지원금과 일부 기업들의 스폰서로 충당되고 있는데, 연예인초청으로 예산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따른 잡음 또한 적지 않다. 몇 년 전에는 한 지방대학 총학생회 간부들이 미지급된 축제예산을 집행하라며 총장대행 교수를 감금하고 협박한 일도 있었다. 대학들의 연예인초청 경쟁으로 연예인 섭외비용은 계속 오르고, 예산집행권을 가진 총학생회가 공연기획업자와 뒷돈 거래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작년에는 폭력조직원을 학생회장에 당선시켜놓은 후 이벤트업체까지 차려놓고 조직원 학생회장과 함께 축제비용 4억 원을 빼돌린 조직폭력배들이 검거된 일도 있다. 대학에 각종 ‘놀자판’ 행사가 많아지고 학생회의 돈 씀씀이가 커지면서 조폭이나 이벤트 업자들이 끼어들어 이권을 챙기고,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가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 한 대학교 학생회간부는 대학축제 행사대행을 맡은 공연기획업자로부터 3,700만원의 사례비를 받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올 2월에는 학생회비 수천만 원을 횡령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총학생회장이 졸업을 하루 앞두고 제적된 일도 있다.

이런 비리들은 학교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상당수 대학들이 학생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신입생오리엔테이션처럼 학교가 해야 할 일들을 학생회에 넘겨버리고,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재단이 학생회 간부의 눈치를 보며 향응을 제공하기도 한다니 학생회의 비리가 쉽게 사라지겠는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대학축제 문화

1960년대 중반부터 선보인 대학축제는 엘리트 젊은이들의 축제답게 학술 문화 프로그램, 스포츠경기, 여왕대관식(일부 여자대학), 대학밴드 공연, 쌍쌍파티 등 학생 위주의 행사였다. 당연히 축제참가대상은 한정되었고, 축제참가 자체가 특권이었다. ‘유신정권’으로 시작된 70년대의 대학축제에서는 민족, 민주, 자유 등을 화두로 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이 문화가 다양하게 시도되었고, ‘5.18사태’로 시작된 80년대에는 이념적 양극화로 어수선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학축제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행사로 변모했다. 90년대의 대학축제는 민주화 바람과 함께 젊은이들의 순수한 놀이판으로 변모하다 시들해져 버렸고,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K-Pop’ 광풍 속에 대학축제는 인기 '아이돌 스타’들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문화의 실체는 창조적 ‘실험정신’, 발랄한 ‘도전정신’, 그리고 냉철한 ‘시대정신’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런 대학문화의 ‘가치’는 실종된 채 떼돈 들여 인기연예인들을 불러놓고 그저 먹고 마시고 떠드는 한바탕의 잔치에 불과한 축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칭 ‘무개념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만에 짓눌린 채 노력보다는 횡재를 꿈꾸면서 진취적 사회의식 대신 사회현상에 무관심하거나 반항적인 경향이 짙다. 그 때문에 인생역전의 꿈으로 방송사오디션에 목매거나, 연예인들에 열광하고 개그프로그램의 공허한 말장난에 환호하면서 불안감을 잊고 위안을 받는 지도 모른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반값등록금’ 꼼수에 홀려 ‘촛불시위’까지 벌이면서도 연예인 초청에는 거금의 학생회비를 쓰는 학생들이나 대학들 모두 각성해야 한다. 내년 축제프로그램의 하나로 연예인들을 상대로 한 ‘캠퍼스공연 보이콧’ 운동이나 ‘반값출연료’ 시위를 벌이는 건 어떨까?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국적인 자숙의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학과 대학생들이 ‘대학축제’에 대한 인식과 기대를 바꾸고 엘리트문화를 정립해 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오래 살다 보면 결국 이 꼴이 되리란 걸 내가 진작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그의 묘비명처럼 풍자와 해학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고 젊은 시절을 낭비해 버리는 젊은이들의 철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경종일 것이다.

글/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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