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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옥에서 벗어난지 2년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입력 2014.08.03 09:51 수정 2014.08.05 09:29        김수정 기자/하윤아 기자

<중국 감옥서 돌아온 북 반체제 조직 육성 3인 인터뷰>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처장 "가장 큰 고통 자괴감 배고픔"

지난 2012년 7월 20일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과 북한인권운동가 3인이 114일 간의 중국 억류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들은 북중 접경 도시로 나오는 북한주민들을 교육시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등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다가 '국가안전위해죄'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북한인권운동을 벌이다가 억류돼 고초를 겪었지만 이들의 북한인권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데일리안'은 북한인권운동가들의 무사귀환 2년을 맞이해 이들이 북한인권운동을 벌이면서 겪은 고초와 어려움을 재조명하고 향후 이들의 북한 사회변화 비전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2년 3월 29일 중국 다롄(大連)의 한 학교 운동장. 지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에게 중국 공안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다짜고짜 이 남자에게 두건을 씌우고 수갑을 채운 채 의문의 승용차에 강제 납치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건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던 이 남자는 승용차가 요동치며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을 느꼈다. “발각 됐구나” 이 남자는 생각했다.

16일 (사)시대정신 사무실에서 만난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처장은 2년 전 중국에서 벌어진 상황을 똑똑히 기억해냈다.

유재길 사무처장은 2년 전인 2012년 7월 20일 중국 공안에 의해 114일간 구금됐다가 풀려나 그리운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중국공안으로부터 내려진 유 처장의 죄목은 ‘국가안전위해죄’. 순수하게 북한민주화 사업을 벌이던 유 처장에게 중국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획책했다는 죄목이 씌워진 것이다.

유 처장은 지난 2012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과 3인의 북한인권운동가들 가운데 한명이었다.

“14년간의 공든 탑이 무너졌구나 하는 상실감과 절망감이 컸다. 사실 지금도 그런 심리 상태에서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무척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지만 그것도 아닌가보다.”

오는 20일이면 그가 그리운 고국 땅을 다시 밟은 지 꼬박 2년이다. 그는 납치된 당일 다롄 모처 호텔에서 하루 꼬박 중국 공안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후 단둥안전국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후 중국의 구치소로 끌려가 14년간 공들인 북한인권 사업이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휩싸인 채 84일을 더 보냈다.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신적 압박감에 지독한 배고픔이 더해져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던 유 처장은 114일 간의 중국에서 구금생활을 보냈다. 20명이 함께 좁은 감방을 사용한다는 것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깨를 펴고 잠을 청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한국의 구치소에서 이런 인권유린이 일어났다면 언론, 인권NGO 등 사회각계에서 들고일어났겠지만 유 처장이 갇혀있던 곳은 중국이었다.

지난 16일 '데일리안'과 만난 유 처장(44)은 114일간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을법도 한데, 시종일관 똑 부러진 말투로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기억을 상기하는 대목에서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유 처장은 “처음 우리를 연행했을 때 중국공안이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면 선처할테니 관련자들을 모두 말하라’면서 회유했다”면서 “조사 이후 구치소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면서 현실인정이 안 됐다”고 말했다.

유 처장은 “(감옥 생활을 생각하면)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배고픔이었다”면서 “주로 멀건 국물에 옥수수 죽과 속이 없는 찐빵을 먹었지만 늘 허기가 졌다. 배고프다는 생각이 일상을 지배했던 것 같다”고 입을 뗐다.

그는 이어 “물론 중국 측에서 내가 한국인이라고 음식을 조금 더 주기도 하고 같이 갇혀있던 잡범들에 비해 배려해주긴 했다”면서도 “그러나 당시 상황은 정말 다시 떠올리기 힘들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조사받으면서 마치 젊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암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유 처장은 “김정일, 김정은 같은 독재자를 받드는 하수인들이 감옥에 가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며 “더욱이 내가 14년간 공들인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구나 하는 상실감과 절망감이 굉장히 컸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중국에서 ‘북한 내 대안세력’을 육성, 북한 내 반체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일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죽은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기 더욱 괴로워했다.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유 처장은 “(그들이) 내가 겪었던 고통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죽었을 것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유 처장은 위장전향을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런 지적을 들을 때면 “북한정권과 싸우기 위해 13년 1개월 동안 여러 위협을 무릅쓰며 중국 타지에서 생활했다. 정치권을 기웃기웃 하는 사람들이 위장전향자 아닌가”라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 때 혈서를 함께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RO세력 등 북한을 추종하는 일부 NL계열의 행태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실제로 유 사무처장은 ‘강철서신’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영환 씨와 함께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후 그는 1990년대 말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의 방향을 틀었다.

그는 “과거에는 같이 혈서를 쓰기도 하고 혈주 나눠 마시던 혁명동지들이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서 “연대의식이 강했지만 90년대 후반 기점으로 우리는 북한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요구했고, 그들은 남한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을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가 된 현 상황이 서글프다”고 말을 흐렸다.

하지만 유 처장은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변절자라며) 증오하겠지만 저는 그들을 증오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역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그들을 보면 ‘아직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답답함이 크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북운동가인 그는 현 박근혜정부의 ‘대북기조’를 일부 지지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는 “결코 장밋빛만은 아니다”며 현실적인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 처장은 “일단, 현 정부가 ‘통일은 대박’이라는 기조를 잡은 것은 그동안 젊은 층에서 무관심했던 통일론에 대한 관심을 끈 부분는 고무적”이라면서 “끊임없이 국민을 향해 통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통일을 일종의 부담으로만 볼 일 아니다’라는 걸 환기하고 문제제기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만, 나는 통일로 가는 험난한 과정보다는 그저 장밋빛 미래만 그려놓은 통일대박론은 경계한다”면서 “통일은 결코 장밋빛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야말로 한민족의 가장 큰 도전이자 시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와 아주 국민들의 많은 노력이 특히 정치권에서부터 각성하고 먼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만 가능하다”며 “예를 들어 통일세 마련부터 차근히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유재길 (사)시대정신 사무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와 함께 그는 앞으로 포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유 사무처장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김정은이 북한을 꽉 잡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워낙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북한이야말로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를 일”이라며 “사실 내일 붕괴된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정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우리가 향후 북한 정권 급변사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또한, 현재 부상한 통일담론과 관련, 이를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과정들이 필요한지 냉철하게 논의하고 이것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분야) 오피니언 리더로서 냉철히 우리 국민에게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까지 국민이 어떤 부분을 감내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하되, 통일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균형 잡힌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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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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