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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경주의 석빙고 천대 왜?


입력 2014.07.13 08:09 수정 2014.07.13 08:19        경주 =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천장·벽면 물 스며들고 바닥은 토사 뒤덮여

천년고도 경주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곳곳에 신라인들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서라벌의 도읍지 월성안에는 조선시대 때 만든 경주석빙고(보물 66호)가 신라유적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

왕릉처럼 솟아 있는 석빙고는 월성에서 가장 눈에 띠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석빙고 옆에는 높이 1m 남짓한 비석이 하나 서있는데, 축조연대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다. 빙고 출입구 천장돌에도 ‘숭정기원후재신유추팔월이기개축’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영조14년(1738)에 빙고를 완성했으며, 4년 뒤에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개축했다는 내용이다.

월성내부의 경주석빙고 전경 ⓒ 최진연 기자 월성내부의 경주석빙고 전경 ⓒ 최진연 기자

석빙고에서 서쪽 50m 지점에는 움푹 파인 웅덩이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옮기기 전의 위치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경주석빙고는 남한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빙실의 석조물도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5년 경주대학교 조사팀이 조사한 자료에는 빙고내부에 물이 스며드는 등 훼손이 빠르게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팀은“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석질이 약해진데다 희뿌연 서리처럼 백화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는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돌 표면은 빗물과 함께 유입된 흙과 공기 중의 먼지가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으며, 석재는 풍화작용으로 붕괴우려마저 낳고 있다“고도 밝혔다.

훼손되기전의 빙고내부 모습 ⓒ 최진연 기자 훼손되기전의 빙고내부 모습 ⓒ 최진연 기자

기자는 1994년 11월, 경주석빙고를 취재한 일이 있다. 당시만 해도 석빙고는 지금처럼 훼손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20년이 지난 2014년 6월, 기자는 다시 경주석빙고를 둘러봤다. 빙고의 외곽은 멀쩡했지만 내부의 석축은 심각할 정도로 훼손방치 되고 있었다.

홍예와 벽면의 석재들은 원래의 모습에서 주홍색으로 변색되고 있었으며,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기자의 머리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빙고 끝부분 벽면 즉 배수구가 설치된 벽면의 석재들은 진한 이끼까지 끼어 있었고, 빙고 바닥은 돌을 깔았다고 하지만 토사가 덮여 신발까지 물에 젖을 정도로 질펀했다.

훼손의 근본적인 원인은 비·눈·등 강수와 지하수가 석빙고로 흘러들어 높은 습도와 물기가 장기간 지탱하면서 생긴 결과다. 석빙고의 안전진단 실시여부 등을 놓고 경주시와 문화재청이 지금까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천장에 백화현상과 벽면 바닥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 ⓒ 최진연 기자 천장에 백화현상과 벽면 바닥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 ⓒ 최진연 기자

경주시청 문화재보수업무 담당자는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문화재청에서 승인을 받아 올해까지는 부식된 석재를 보수하고 보존처리까지 끝낼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내부에는 정비공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경주월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둘러보는 곳이 석빙고다. 철장과 자물쇠가 초병처럼 입구를 막고 있는데도 이들은 철장에 매달려 빙실내부에 얼음덩어리나 고드름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살피고 있다. 하지만 빙실안쪽은 텅 빈 공간이다. 빛없는 암흑의 빙고를 보면서 실망의 탄식뿐이다. 시청 관계자는 “보존정비가 끝나도 빙고 개방문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사진이나 찍자며 석빙고 앞은 기념사진 장소가 되고 말았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다시 새긴다.

이끼가 잔뜩 낀 빙고내부 벽면 ⓒ 최진연 기자 이끼가 잔뜩 낀 빙고내부 벽면 ⓒ 최진연 기자

빙실내부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석빙고의 얼음 저장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1단계는 얼음저장에 앞서 겨울 내내 내부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냉각의 비밀은 출입문 양 옆에 날개처럼 쌓아 올린 돌담에 있다. 겨울에 부는 찬바람은 이 돌담에 부딪쳐 소용돌이로 변한다.
바람은 빠르고 힘차게 석빙고 내부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간다.

2단계는 반 지하에 있다. 겨울철 일반건물의 지하실 온도는 평균 15도인데, 석빙고 내부온도는 0도이다. 수십 미터 파내려간 지하실은 훈훈한데 겨우 반지하인 석빙고가 오히려 춥다. 이곳에서 7~8개월 동안 얼음이 차갑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빙고뒤쪽에 개천이 있어 겨울에 얼음을 떠다가 운반하기 좋은 위치에 석빙고를 축조한 것도 과학적인 지혜의 안목이다.

봉토위에 3개의 환기구를 설치한 경주석빙고 ⓒ 최진연 기자 봉토위에 3개의 환기구를 설치한 경주석빙고 ⓒ 최진연 기자

경주석빙고 내부길이는 12.27m, 폭이 5.76m, 높이가 5.21m다. 벽면은 다듬은 석재로 올렸으며 천장은 5개의 홍예를 설치했다. 홍예와 홍예 사이에는 장대석을 연결했고, 봉토로 올라가는 환기구는 3개를 냈다.

경주지역은 박물관으로 부를 만큼 문화재가 타 지역에 비해 워낙 많은 곳이다. 경주시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그동안 석빙고를 천대했다. 하잘것없이 보이는 문화재라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유적이며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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