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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만 판치면 한반도 문제 영원히 못푼다


입력 2014.07.09 11:30 수정 2014.07.09 11:33        데스크 (desk@dailian.co.kr)

<기고>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필요한 이성적 판단을 해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초청 특강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초청 특강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동북아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통일 한국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정말이지 최선의 합리적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앞 날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끼게 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상황이나 역사 인식을 객관적으로 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한국 사회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국민 정서’라는 이름의 감정이 너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문창극 총리후보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에서는 ‘친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단어는 큰 폭발력을 갖고 있어서,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진실 여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위한 노력은 사라진 채 곧바로 터부(taboo)시 됨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심각성은, 한국 사회에서 ‘국민 정서’라는 말로 표현된 국민감정의 분출이 점차 아무런 이성적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초법적으로 군림하게 되어, 냉철해야 할 국가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국민감정이 법치를 넘어 국가기관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듯한 형상을 한다면, 이는 마치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가 위에 변덕스런 독재자가 있는 구조와 유사한 것이다. 이런 구조를 바로 잡는 문제야말로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국가개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비정상적인 구조의 문제가 우리끼리 이러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강대국의 틈새에서 국가를 보전해야 할 한국의 지정학적 처지에서는 국운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냉철한 합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예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살아온 핀란드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핀란드는 러시아의 속령이었던 1917년 독립을 선언한 후 강한 군대를 유지하며 많은 전투에서 러시아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1939년 겨울전쟁에서 패함으로써 러시아와 강화하면서, 독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묵시적 굴종'이라는 정책을 폈는데 이를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이라 한다.

당시 핀란드의 지도자가 “우리의 군대가 궤멸되기 전에 러시아와 강화하는 것이 낫다”고 국민을 설득했던 것은 국민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핀란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보상금을 지불했으며, 오랫동안 핀란드 정계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지는 굴종을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핀란드는 국가를 보전하여 유럽의 선진국 중 하나로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핀란드의 지도자가 오직 국민 감정만을 고려하여 국가의 앞날을 결정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으로 판단한다면 아마도 핀란드는 러시아에 합병되었을 테고, 오늘날 핀란드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국지전에서 러시아를 곤경에 몰아 넣을 정도의 강한 군대를 유지했지만 동시에 총체적으로는 절대적인 국력의 열세라는 객관적인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본시 ‘터부’란 덜 개발된 원시사회에서나 있는 현상이고, ‘감정’은 화끈하긴 하지만 자신과 주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감정을 내려 놓고 냉철한 이성을 펼쳐야 할 때다.

글/문근찬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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