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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정장 입었다고 히딩크 되는 것 아니다


입력 2014.06.22 09:05 수정 2014.06.22 11: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리더십은 바른 자세에서 부터

월드컵의 진정한 맛을 알려면 테이블매너를 알아야

거스 히딩크가 영국의 호화군단 첼시팀을 맡았을 때, 전 선수들에게 정통 아르마니 정장을 똑바로 입을 것을 강요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면 100파운드 벌금을 물렸었다. 그리고 지각을 하거나 훈련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훈련을 제외시키고 내쫓았다. 정장을 해야 정신이 무장되어 소임, 각오, 역량 발휘 등 리더십이 생긴다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선수들이 개인기가 부족한 것은 진정한 의미를 개인주의를 이 땅에서 배울 기회가 거의 없어서!” 2001년 9월 어느 날 한국대표팀을 맡은 히딩크 감독이 훈시를 하자 한국인들은 그 말을 진부한 걸로 여기고 조롱까지 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한국인은 없다.

히딩크의 넋두리 혹은 딴전?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유럽식 축구를 접목시키려다 포기한 이유를 아는 한국인은 필자 외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다만 당시 선수로 뛰었던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에게 정장을 입혀야 한다는 사실만 배워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히딩크도 한국팀을 맡아 처음엔 유럽식 지적인 축구를 접목시켜 보려 했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억지로 정장 신사복을 입히자 거북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다가 학습 능력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그 무엇보다 히딩크가 포기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일상생활에서의 양방향 소통 내공이 현저하게 부족해서였다.

한국 선수들은 여러 가지 생활소통 기본기 중 특히 테이블 매너 개념이 없다. 유럽식, 즉 정통 프랑스식 와인매너 없는 구내 학생식당 같은 카페테리아 위주의 한국식 밥먹기는 그저 물리적 취식행위일 뿐으로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 사회적 인격체로서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서 체력전으로 나간 게다.

그라운드가 곧 테이블이다

유럽식 비즈니스 런천이나 디너에선 정규 코스요리를 먹으면서 차례차례, 즉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암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애피타이저로 탐색전, 엉트레(前食)로 얘기 꺼내기, 쁠라(本食)에서는 마음 굳혀주기, 데쎄르(後食)로 행동마무리시켜주기, 그리고 끝으로 반드시 피드백, 즉 구체적인 감사표시와 함께 다음을 위한 답례 등 후속 사후관리다.

코스별로 나오는 각각의 요리를 하나의 단어로 보고 그것에다 각각의 맛과 숨은 의미, 혹은 의도를 부여하며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장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사를 통해 음식들로 작문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프랑스인들과 중국인들의 작문 능력이 세계 제일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음식문화에서 기인한다.

이에 비해 한국식 단품요리나 한 상 가득 요리로는 식담(食談)이 어렵다. 달랑 한 가지 요리에서 자신의 내공을 보여줄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내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모든 요리를 쫙 펼쳐놓고는 복잡하고 산만해서 음식 각각의 맛을 음미하기도 힘들뿐더러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식사(와인 디너) 테이블이자 축구공 게임이라는 비즈니스 테이블이다. 와인(食談) 대신 공을 주고받으며 몰아가는 협상 테이블이다. 테이블에선 손으로, 그라운드에선 발로 게임을 한다. 자신들의 문화, 즉 테이블 매너와 철학을 녹여 넣어 만든 것이 축구다. 유럽선진문명권 사람들이 유독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와인(테이블) 매너를 모르고는 축구의 진정한 맛과 멋을 안다고 할 수가 없겠다.

한국 축구의 히딩크 겉따라하기

먼저 정품격 테이블 매너로 다져진 곧추선 자세여야 물리적, 정신적 시야가 제대로 열린다. 그래야만 그라운드에서 360도 전방위적 시야를 비로소 지닐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정품격 비즈니스 디너의 주최측으로서 호스트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구사하는 내공이 있어야 식사테이블 공간 내 상대방들의 대화 흐름상 유동좌표가 실시간 적확히 인식되게 마련이다.

한국 축구가 히딩크식 성공을 거둑 위해서는 정장의 옷차림 뿐 아니라 여러가지 품격적인 면에서 갖춰야 할 것이 많다.(자료사진) ⓒ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히딩크식 성공을 거둑 위해서는 정장의 옷차림 뿐 아니라 여러가지 품격적인 면에서 갖춰야 할 것이 많다.(자료사진) ⓒ연합뉴스

여기에 상대방 동작에 따라 반자동 팔로우(follow)하는 앙상블 의식이 갖춰지면 축구장이라는 시공간에서 별다른 인위적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공과 다른 선수들의 예상방향을 인지하게 되고, 이런 시나리오 조합들을 리얼타임 싱크로나이즈 모드로 느끼면서 반자동 선제적 대응을 함으로써 어떤 사소한 기회라도 골 득점으로 연결시키고야 만다.

한국 축구가 유럽식 전술을 배울 수 없는 이유, 즉 히딩크 따라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는 예전에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여서 그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유럽식 축구를 쉽게 소화해내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무렴 글로벌 정품격 테이블 매너, 와인 매너가 바로 글로벌 선수로서 추가적으로 갖춰야 할 전인적 기본기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는 영원히 히딩크 겉따라하기 쳇바퀴만 돌릴 것이다. 더불어 매너 없는 선수는 제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신사로서 존중받지도 제 값(플러스알파)을 받아내지도 못한다. 시민들도 축구 경기에서 승부만을 즐긴다면 헛구경 하는 거다.

신사의 코끝은 발끝을 넘어서지 않는다

저돌적(猪突的)이란 표현이 있다. 멧돼지처럼 머리를 내밀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말한다. 추진력 있고 공격적이란 표현인데, 한편으로는 좀 무식하다는 의미도 된다. 한국 선수들 중에는 저돌적인 선수가 많은데 이런 선수는 대개 좌우 윙이나 윙백을 맡는다. 한국 축구가 두뇌 플레이가 잘 안 되는 이유다.

세계적인 유명 축구 선수들 대부분은 자세가 바르다. 서양인들은 신체 구조상 하체가 길어 몸의 무게 중심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발이 가볍다. 따라서 공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고 정교하다. 무엇보다 시야의 폭이 넓어 두뇌플레이에 능하기 때문에 센터 미드필드를 맡기면 적격이다. 데이비드 베컴 선수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무적함대 스페인과 정통의 영국이 초반 탈락한 것은 그런 출중한 센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독일 선수들은 바른 자세를 가진 선수들이 많다. 한국 선수는 물론 감독들도 이런 이치를 모른다. 그러니 명장이 나올 리가 없다. 저돌적 근성만으로는 선진 축구를 배울 수 없다는 말이다.

시진핑은 왜 축구에 열광하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구광으로 알려져 있다. 해서 중국이 본선에 들지도 못한 월드컵 축구를 구경하러 브라질을 방문할 거란 소문도 있다. 역대 올림픽에서 개인 종목을 휩쓰는 중국도 단체전에선 맥을 못 춘다. 13억이 넘는 대국에다 프랑스 못지않은 코스요리를 즐기는 민족이지만 축구에선 아시아 하위권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절반이 오랑캐 왕조였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오랑캐 나라, 오랑캐 황제를 위하여 개인이 희생? 어림없는 얘기다. 신의를 위해선 목숨을 걸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한다. 희생정신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 근성 때문에 단체전이 잘 안 된다.

아무렴 시진핑 주석이 정말 개인적으로 축구가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진 중국을 하나로 묶어 미국처럼 단결시키고 애국심을 기르고자 하는 저의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문화인 야구나 농구를 국민 스포츠로 할 수는 없다. 축구를 통해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완성코자 하는 게다.

불구인(不求人)DNA, 독서인(讀書人)DNA

한민족은 일제 때 단 한 번 나라를 뺏겼었지만 중국 민족은 수도 없이 오랑캐에게 정복당했었다. 게다가 국토가 너무 넓어 황제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아 백성들은 수없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했다. 해서 그들은 철저히 자신만 믿는다. 일찍이 상업이 발달하고 가족 기업이 많은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이겠다. 상인(商人)이란 말도 고대 상(商)나라가 망하면서 백성들이 흩어져 장사에 종사하면서 생긴 용어라고 한다. 민간 호신술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인 남자들은 모두 자기중심적(principal)인 사고를 지니고 산다. 불구인(不求人)! 한문에서 인(人)은 타인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다! 하여 태생적으로 그들은 CEO다. 그리하여 모두가 독립된 CEO 근성을 지니게 된 게다. 해서 모든 중국인 직원들은 언젠가는 독립해서 자기 가게, 자기 회사를 차리는 것을 당연시 한다.

때문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책보다는 현실에서 배우고 해결책을 찾으려한다. 프랑스인들의 살롱문화처럼 중국인들의 찻집은 실제 영양가를 추구하는 담론(정보교환)의 마당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가 곧 불구인(不求人)의 전형이다. 한국인들에겐 이 DNA가 없다. 작은 반도, 단일민족, 단일왕조, 중앙집권적 통제를 받으면서 소규모 소작농으로 연명하며 비교적 안빈낙도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겠다.

게다가 오랜 사대와 피식민지배로 인해 종속적인 하인 마인드가 몸에 배어있어 스스로 독립하기보다는 체제 속에 안주하기를 갈망한다. 한국 사회가 날이 갈수록 관료화 되어 가고 기업이 재벌화 되어 가는 것도, 젊은이들이 안전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학원가로 몰리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하여 중국인들과는 반대로 현장보다 구경꾼마인드의 달짝지근한 글, 인쇄된 말씀을 더 신뢰한다. 독서인(讀書人)! 독서로만 입신양명하던 누백 년의 타성으로 인해 철저한 사전 현장작업 없이 신기루만 쫒다가 인생 망치거나 세월 다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서 책상머리 탁상행정가들의 보고서공화국인 게다. 당연히 국가개조도 페이퍼로 할 공산이 크다.

바른 자세는 전인적 인격체의 표현

서거나 걷거나 달리거나 신사의 코끝은 발끝을 앞서지 않는다. 턱을 당기고 배를 내밀면 코끝이 절대 발끝을 넘어가지 않는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건 짐승격이다. 유럽 귀족 자제들이 씨름, 레슬링과 같은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칫 자세가 저돌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먹히는 건 바른 자세 때문이다.

사실 댄스, 승마, 사냥, 수영 등 원래 스포츠란 귀족들의 오락이다. 물론 그것을 하인들이 하면 노동이 되겠다. 많은 한국 운동선수들이 운동 그 자체를 목표로 삼다보니 즐길 줄을 모른다. 배고픈 시절을 거치면서 머슴 마인드로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포츠가 전인적 인격체로서 갖춰야 할 소통의 도구임을 모른다. 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우리 사회 주류층에 편입을 못하는 것이다.

젠틀맨은 곧 기사, 기사도정신이 곧 스포츠맨십이겠다. 따라서 선진문명사회에서 스포츠 선수들은 당연히 신사이고, 신사대접을 받는다. 한국 스포츠 선수 역시 글로벌 매너를 익히고 품격을 갖춘다면 선진국과 같이 그 사회 주류층으로 들어가기에 누구보다 유리하다 할 수 있다. 그런 것 없어도 무조건 ‘하면 된다’? 천만에! 정치든 경제든 축구든 개도국 시절의 무데뽀(無鐵砲)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전방위적 소통 교감 능력 없인 선진 국민 못 된다.

끝으로 한국 학생들의 상당수가 바르지 못한 자세 때문에 척추가 휘었다며 호들갑 뜨는 의사들을 자주 본다. 아무 운동이나 열심히 하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고작 척추만 걱정할 뿐, 그 휜 척추만큼 인성도 비뚤어졌음을 걱정하는 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바른 자세에서 리더십이 나온다. 휜 허리를 바로 세우는 건 체육이지 공맹(孔孟)이 아니다. 인성이 아니라 야성이다. 뛰어난 관상가나 경영자는 상대의 인상(人相)이나 스펙만 보지 않는다. 자세와 걸음걸이, 즉 체상(體相)까지 본다. 매너나 품격을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그런 게 진짜 내공이다.

글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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