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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300명이 부상한 서울지하철 사고가 기계탓?


입력 2014.05.20 09:06 수정 2014.07.02 18:19        박주희 객원기자

<박주희의 진실한 쿡!>ATS-ATO ‘위험한 동거’ 방치

직원복지보다 안전 뒷전 아무도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아

서울시 지하철 전동차 추돌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넘었다. 시민 300여 명이 부상한 아찔한 사고였다. 세월호 참사로 해운안전 무방비에 국민적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던 그 때, 시민들의 발인 지하철이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이번 전동차 추돌사고는 신호 장치 고장 무시, 기관사의 열차 지연 출발 미보고, 종합관제센터의 소홀한 감시 등이 잇달아 빚어낸 사건이다. 서울메트로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인재(人災)인 셈이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전 신호기엔 이상이 없었다”는 거짓변명까지 둘러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실시된 특별 안전점검대상에서 신호기가 제외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처럼 인재가 명백함에도 사건원인은 ‘인재가 아닌 기계 탓’으로 둔갑되고 있다. 항변 못하는 기계에 죄를 뒤집어 씌운 꼴이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신호기 오작동을 사고원인의 전면에 내세워, 여론의 시선을 ATS(자동열차정지시스템)와 ATO(자동운전시스템) 이중 신호체계 시스템으로 따돌렸다. 전동차량 노후화도 사건원인의 핵심인양 부각시켰다.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지하철 운영시스템 개선방안의 골자도 ‘노후차량 교체’다.

분명 ATS와 ATO 혼재가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고 향후 2호선 지하철은 ATO로 전면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왜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이 방치돼 있었냐는 점이다. 서울메트로는 교체작업을 시작한 2006년부터 지난 8년간 43%만 ATO로 바꿨다.

2010년 신도림역 탈선 사고시 사고조사위원회도 ATS를 ATO로 조속히 개선하라고 권고했었다. 당시 ATS에 의해 전동차가 비상제동을 걸었지만 제동거리가 짧아 탈선을 막지 못했다. 줄곧 제기된 신호혼선 이유 외에 이 사건은 자동운전시스템 ATO의 필요성을 재차 증명한 것이다.

ATO 교체 지연에 대해 서울메트로는 예산 부족을 변명으로 둘러댄다. 그러나 ATO는 자동운전시스템이어서 현재 2명인 기관사를 1명으로 줄여 오히려 장기적으론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ATO 확대 지연은 예산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노조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 아닐까.

인력감축, 구조조정으로 연결된 ATO의 전환은 사측과 노조 사이 ‘시한폭탄’인 셈이다. 노조에 대한 설득 부족과 감독자들의 방관이 지속됐고, 이것이 지금의 신호시스템 혼란과 지하철 안전위기를 낳은 듯하다. 결국 ATS-ATO의 ‘위험한 동거’를 수 년간 방치한 조직, 즉 사람이 원인이었다.

직원복지보다 뒷전인 ‘안전’

상왕십리 지하철 사고가 발생할 무렵 서울메트로는 대규모 승진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승진인원은 무려 1600여명 전체직원의 18%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이 사태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번 승진잔치가 사측-이사회의 합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사회는 지난 11월과 1월 회의에서 몇 개 직급에 대해 근속승진년수를 앞당기는 것으로 의결했다. 특히 7급에서 6급으로의 근속승진년수는 두 번 조정을 통해 6년에서 3년으로 대폭 줄었다. 그 후 지난 3월과 4월 회의에서 1급 1명, 2급 27명(23%), 3급 70명(10%), 4급 506명(17%), 6급 267명(25%)을 증원했고 반면 7~9급 정원은 모두 50%씩 감원했다.

세월호 사태로 국민 모두가 비탄에 빠지고 주변의 안전을 점검하던 4월말, 서울메트로와 이사회는 승진잔치를 위한 정관 및 직제규정 개정을 조용히 처리하고 있었다. 시민 안전보다 직원 복지에 더 신경을 써야했던 속사정은 무엇일까.

지난해 10월 31일자 직제규정내 정원표만 봐도 2020년까지 직급별 정원이 거의 변동없는 것으로 돼있다. 파격적인 대규모 승진이 꿈틀된 배경은 지난 연말 노사 협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코레일 철도 파업으로 많은 국민이 불편을 겪고 운송업체의 피해가 컸던 시기였다.

서울지하철노조는 퇴직금 누진제 폐지 반대와 승진적체 해소, 임금인상 등을 고집하며 지하철 파업이라는 협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행히 파업예고 시한 몇 시간을 앞두고 파업은 막았지만, 그 대신 노조에 많은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했다. 이번의 대규모 승진도 노조가 파업철회 대가로 받은 ‘선물’이었다. 1000만 명 시민을 볼모로 하여 얻은 보너스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메트로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 사고 열차의 내부가 텅 비어 있다.ⓒ연합뉴스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메트로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 사고 열차의 내부가 텅 비어 있다.ⓒ연합뉴스

사고 후 서울메트로와 선 긋는 ‘박원순 시장’

지하철 전동차 추돌사고, 서울메트로의 승진잔치와 지속된 방만경영... 과연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서울메트로 사외이사 5명 중 4명이 박 시장의 측근-보은인사로 채워져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종원 참여와 나눔 대표는 박원순 선대본 조직기획위원장을 맡았었고, 이숙현 안랩커뮤니케이션 부장은 안철수 대선캠프 부대변인이었다. 조중래 명지대 교수는 조영래 인권변호사의 친동생이고, 오건호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간부 출신이다.

지난 연말 서울메트로 노사협상장에 깜짝 등장했던 박원순 시장을 기억하는가. 박 시장 등장 십여 분만에 노사는 평행선을 긋던 대립을 접고 타협했다. 박 시장은 노사양측 사이에 자리해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사진까지 찍었다. 박 시장의 ‘해결사 퍼포먼스’ 뒤, 노조의 손엔 각종 복지 보따리가 쥐어졌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대한 손실금 50% 보전, 직급별 정원 조정, 물가상승률 보다 2배 높은 2.8% 임금인상 등이다.

그래서인가 박원순 시장은 서울메트로 사측-이사회의 대규모 승진잔치도 도왔다. 직제규정 제3조엔 “조정에 관한 정관 변경은 서울시장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박시장은 3월 25일~4월 24일 사이 정관 변경을 승인했다. 이미 서울시장 재선 도전을 확정한 시점이었다. 이 절묘한 타이밍이 박원순 시장의 ‘선심성 인사’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서울지하철 사고 후 박 시장의 ‘서울메트로 발뺌하기’는 납득하기 힘들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운영시스템 개선방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울메트로 내 폐쇄적인 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이 있었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감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박 시장이 서울메트로에 관여해온 여러 사안들을 떠올리면 그의 답변은 솔직하지 않았다. 양심과 진정성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그가 아닌가.

서울메트로 영업적자, 폐단의 집합소

서울메트로는 지난 5년간 영업이익은커녕 영업손실 8000억 원, 지난 해 기준 부채는 3.3조에 이른다. 그럼에도 직원들에겐 성과급 2900억 원이 지급됐다. 지난 연말엔 직원 211명이 해외연수 명분으로 관광성 해외여행을 다녀오느라 약 5억여 원을 썼다.

노사 단협엔 노조의 경영권 침해요소까지 버젓이 명시돼 있다. 공사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강제퇴출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도록 하며, 조합원 감원-인사계획은 사전에 조합과 협의해야 한다.

이처럼 노조가 공사의 주인행세를 하고, 서울시 출신 관피아들은 경영개선보다 노조 눈치살피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사회는 감독 임무를 망각하며 노조와 사측 입장에 맞장구치기 바쁘다. 이러한 왜곡과 폐단 속에 서울메트로의 ‘무사안일 독버섯’이 서서히 자리잡게 됐다. 여기에 서울시의 감독해이까지 겹쳐 시민안전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다수 국민들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깊은 한숨으로 한 달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때 ‘눈물 사과’로 국가개조 의지를 밝혔고,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4.16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을 구분할 큰 변화에 국회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적 재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균열을 치유하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기본과 원칙을 다지고 있다.

인재로 발생한 서울지하철 추돌사고에 대해서 많은 시민들이 안전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인명피해가 많고 적음의 문제보다 켜켜이 쌓인 적폐를 이번 지하철 사고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 노사의 뼈를 깎는 개혁,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이사회의 감독체계 강화 없이는 ‘상왕십리 전동차 추돌사고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대로라면 서울메트로의 무사안일과 지하철 안전문제가 ‘등잔 밑 어두움’ 속에서 계속 시민을 위협할 것이다.

글/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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