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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벤치마킹 모델 '발렌베리 가문'의 비밀은


입력 2014.05.12 08:45 수정 2014.05.12 11:54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사회적 책임과 애국주의 결합

유능한 전문경영인 풀, 안정적 소유지배 구도 '눈길'

158년 동안 5대에 걸쳐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 그들은 스웨덴 최초의 근대적 상업은행을 세워 1870년대부터 이미 ‘북유럽의 메디치’로 불릴 만큼 큰 부를 일궜으며, 이를 기반으로 동토의 땅 스웨덴의 산업화를 이끈 백년 기업들을 키워냈다. 오늘날 발렌베리를 빼놓고는 스웨덴 경제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한 가문이 이처럼 오랫동안,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스웨덴의 수도인 아름다운 항구도시 스톡홀름에서 발렌베리의 존재를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발렌베리는 스웨덴 국민들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매년 노벨상 시상식 직후 기념 무도회가 열리는 스톡홀름 시청 골든홀에는 가문의 2세대인 크누트 발렌베리의 흉상이 서있다. 시청 신축 자금을 기부한 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 애국주의의 결합 '발렌베리'

스웨덴의 수많은 경영자를 길러낸 스톡홀름경제대학은 ‘발렌베리대학’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북유럽 최초의 경제대학인 이 대학의 설립을 발렌베리 가문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발렌베리재단들은 스웨덴 기초 과학 연구의 가장 큰 후원자다. 스웨덴 출신 노벨상 수상자의 대다수가 발렌베리의 지원을 받아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발렌베리는 에릭슨, 사브, ABB, 일렉트로룩스, 아틀라스콥코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18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알짜기업들이다.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무려 절반 이상을 발렌베리 기업들이 차지한 적도 있다. 이 정도면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갑부 명단 상위권을 싹쓸이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58년 동안 기업 경영으로 일군 부는 대부분 공익 재단에 넘겨져 있어 가문 소유의 개인 재산은 ‘약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 대신 발렌베리 후계자들은 각 세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남겼다. 거대한 ‘발렌베리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이들 재단들이다.

발렌베리는 어린 자녀들에게 특권보다는 의무에 대해 가르쳤다. 검소한 가풍 탓에 플레이보이는 용납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형이나 언니 옷을 물려받아 입었고, 여름에는 정원 잡초를 뽑고 갈퀴질을 해야 했다. 매주 최소한의 용돈만 주어졌고, 또 그 중 일부는 저축을 하도록 했다. 특히 크누트와 함께 가문의 2세대 경영자였던 마르쿠스 시니어 발렌베리의 검소함은 전설적이었다.

그의 딸 안드레아는 아버지의 정장이 헤지면 안과 밖을 뒤집어 재단사가 다시 꿰밀 수 있도록 뜯어내는 일을 했다. 발렌베리는 흥미를 쫓는 미디어로부터 자신들을 엄격하게 차단했다. 신문의 가십난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 금기사항이었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라는 가문의 유명한 모토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발렌베리의 전통은 개인주의와 사회적 책임, 국제화와 스웨덴 애국주의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그들은 창조적 개인의 능력을 신봉했지만 사회적 책임에도 똑같은 무게를 뒀다. 그들의 기업은 인구 900만 명의 좁은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갔지만 스웨덴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되는 세계최고의 복지제도를 자랑하는 스웨덴은 세계에서 소득세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북유럽의 메디치가문으로 존경받는 스웨덴의 명문가 '발렌베리' 가문의 한사람인 크누트 발렌베리(1853-1938).ⓒwww.wallenberg.com 북유럽의 메디치가문으로 존경받는 스웨덴의 명문가 '발렌베리' 가문의 한사람인 크누트 발렌베리(1853-1938).ⓒwww.wallenberg.com

벨렌베리는 왜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가지 않는가

이 때문에 많은 부자들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IKEA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들도 본사를 해외로 옮긴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발렌베리와 벨렌베리 기업들은 스웨덴을 지키며 그들이 창출한 부를 재단을 통해 스웨덴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1856년 가문을 처음 일으켜 세운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는 퇴역 해군 출신이다. 15세 때 갑판 선원이 돼 혼자 배를 타고 미국 여행에 나설 만큼 바다에 대한 그의 애착은 유별났다. 그는 “선원으로서 얻은 경험은 집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한 곳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은 마음이 좁아지기 쉽다”는 말을 남겼다.

그 후 앙드레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복무하다 은행을 세워 큰돈을 벌었다. 생전에 ‘스웨덴 제2의 군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아들들도 모두 해군사관학교에 보냈다. 바다에서의 거친 항해 경험이 강인한 정신과 넓은 시야를 길러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해군사관학교 졸업은 발렌베리 후계자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앙드레가 세심하게 완성해 놓은 ‘후계 프로그램’에는 해외은행에서의 도제식 교육도 포함돼 있다. 발렌베리의 미래 주역들은 해군사관학교를 마친 뒤에는 수년 동안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를 돌며 경력을 쌓았다. 이는 발렌베리가 은행을 모태로 성장한 탓도 있지만 산업의 큰 흐름을 읽고 기업 가치를 정확하게 보는 능력을 기르는데 금융 경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발렌베리의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은 158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발렌베리의 가계도는 처음 보는 사람을 혼란에 빠트린다. ‘마르쿠스’와 ‘야콥’이라는 똑같은 이름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매 세대에 마르쿠스와 야콥이 등장해 이름만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발렌베리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어린 세대는 선조들과 같은 이름을 씀으로써 일찍부터 자신이 가문의 전통과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최선을 다해 짊어져야 하는 짐이고 멍에이지만, 잘 지키고 더 발전시켜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선물’이기도 했다.

저들의 노하우엔 뭔가 눈 여겨 볼 게 있다

발레베리는 집에서 손님을 맞을 때는 항상 아이들을 문 옆에 앉게 해 대화를 듣게 했다. 손님이 돌아 간 후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앉아 자신이 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며, 상대방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휴일 아침이면 아버지는 아들과 정기적으로 산책에 나섰다. 아버지는 길을 걸으며 선조들의 위대한 사업적 업적을 들려줬다.

그러나 전통이 항상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유럽 속담에 “창업자는 기업을 설립하고, 2세대는 기업을 물려받고, 3세대는 기업을 파괴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발렌베리가 이런 속담의 예외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발렌베리는 가족들의 경영참여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미래의 경영자로 선택된 소수는 ‘후계 프로그램’에 따라 오랜 기간 철저한 교육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두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혼자가 아니라 두 명이 가문을 이끌도록 했다. 거대한 기업을 독단적으로 경영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는 앙드레의 두 아들 크누트와 마르쿠스 시니어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만들어진 일종의 불문율이다. 크누트와 마르쿠스 시니어는 평생 한 사무실에서 책상을 맞대고 앉아 함께 일했다. 크누트는 금융을, 이복동생인 마쿠스 시니어는 산업을 책임졌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황태자’의 지위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하는 조건부였다. 3세대를 이끈 마르쿠스 주니어는 아들 피터를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으며 능력을 시험했다. 발렌베리와 함께 스웨덴을 양분하고 있던 볼보와 합병을 전격 추진했으며, 볼보의 전설적인 CEO 길렌함마르에게 발렌베리 기업의 이사회 자리를 내주었다. 스웨덴 재계는 마쿠스 주니어가 발렌베리의 후계자로 피터 대신 길렌함마르를 선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피터는 자신이 발렌베리 왕국을 이끌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입증해야만 했다.

이밖에 유능한 전문 경영인 풀, 자회사 이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이사겸직제도, 끊임없는 투자 포트폴리오 최적화, 그리고 안정적인 소유지배구조를 지탱해 준 차등주 등이 발렌베리 신화를 가능하게 한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실은 발렌베리는 이건희 삼성 회장 가문의 벤치마킹 모델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에서 보면 삼성은 발렌베리에 비견할만한 거의 유일한 곳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경이라는 측면에서 삼성은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삼성이 백년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다.

글/장승규 한경비즈니스 기자·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가의 신화'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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