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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구조도 못하다니..." 국민들 집단 트라우마


입력 2014.04.18 11:57 수정 2014.04.24 13:24        김수정 기자

"핏덩이 같은 아이들 못살리는 나라" 실망과 분노

전문가들 "가족들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가짐을"

세월호 침몰 사흘째인 18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과 스님이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흘째인 18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과 스님이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아난 6살 여자아이가 꼭 우리 아이 같아서 뉴스를 보는 내내 가슴이 미어집니다.”

“자기 먼저 살겠다고 나온 선장 안 죽이고 뭐 합니까.”

“눈앞에서 핏덩이 같은 학생들을 못 살리는 나라에 산다는 게 원망스럽습니다.”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태 3일째인 18일. 대한민국은 슬픔과 분노, 원망과 탄식 속에 멈춰버린 모양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전말이 드러나는 동시에 아직도 실종자 수색이 더뎌지는 상황을 사흘째 하루종일 전방송에서 뉴스속보로 목도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집단적인 ‘트라우마’ 현상까지 증폭되는 실정이다.

우선, 현재 국민들 상당수는 해당 선박을 운행했던 선장의 행보에 비난을 넘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선장은 2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선내에 남아있음에도 먼저 탈출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배가 기우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지시한 정황들까지 밝혀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30대 회사원 박모씨(남)은 “인간의 생존본능을 차치하고라도 수백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먼저 나올 생각을 할 수 있느냐”며 “심지어 학생들 보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는데 살인자랑 다를 게 뭐가 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 씨는 또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그저 선장의 지시를 따르려고 했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외국에서는 기장이나 선장들이 이 같은 대형 사고에도 침착히 승객을 대피시키고 정작 본인은 제일 마지막에 나오거나 순직한다는데, 부럽기도 하고 ‘이래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이 아닌가’ 허탈하기도 하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박 씨처럼 해당 선장의 비상식·비도덕적인 태도를 질타하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 아이디 ‘mixj****’는 “자기 목숨하나 살겠다고 그 어린생명들 다 죽이는가?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고 힐난했고, 또 다른 아이디 ‘nero****’는 “수많은 인명을 죽인 세월호 선장은 공개처형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우리사회 내 뿌리 깊게 박힌 안전불감증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고 당시 우왕좌왕했던 정부의 초동대응도 여론의 감정을 자극했다. 정부는 사고 해역이 연근해라서 구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헬기와 구조장비, 잠수인력 동원을 대단히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사고 직후 2시간여만에 “학생들 전원 무사하다”는 발표를 한지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그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실종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국민들은 분개했다.

50대 이모씨(여)는 “처음에 아이들이 전원 살아있다는 얘기에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해당 발표가 계삭착오에 따른 오류다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만 같았다”고 슬퍼했다.

이 씨는 그러면서 “나 역시 자식 키우는 사람이지만 이런 황당한 일을 겪었을 실종자 부모들의 당시 심정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며 “사형선고를 받는 심정도 이보다 더 잔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비극을 정확한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하는 정부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이냐. 이건 정말 해당 가족들은 2번 3번 죽인 일이나 진배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 같은 우리 국민의 이른바 ‘집단 멘붕’ 사태는 비단 선장에 대한 분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슬픔과 애원, 비통의 한숨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여객선 침몰 3일째인 현재까지도 260여명이 넘는 실종자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을 두고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이 함께 울며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30대 주부 김모씨는 “TV를 틀 때마다 눈물이 절로 난다”며 “특히, 나 역시 5살짜리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이번 사고로 생존한 6살 권 양을 보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다. 제발 실종된 권 양의 가족들이 무사귀환하길 바라면서도, 자칫 권 양이 이런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저 어린소녀가 그 아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그저 참담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네티즌들의 바람도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yah****’는 “부디 모든 승객이 무사귀환하길”이라고 적었고, 아이디 ‘jebi****’는 “가족들과 배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서 구조활동을 해달라”며 “두 번 다시는 뉴스에서 이런 일로 희생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염원하는 등 온 국민이 이번사고로 인해 공허함과 허탈감, 슬픔과 분노의 무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심리전문가들 “맹목적 위로보다 ‘함께’한다는 마음이 더 큰 위로”

이에 대해 심리전문가들 대다수도 이번 사고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 현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채규만 한국심리건강센터장(전 성심여대 심리학과 교수)은 18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세월호 침몰사태로 그야말로 국민 전체가 국가적 초상집 분위기에 젖어있다”며 “이처럼 대형사고를 당했을 때 인간은 대개 4단계의 심리현상을 보이는데 지금은 2, 3단계인 분노와 불안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채 센터장은 이어 “특히, 우리나라는 ‘집단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대개 이번 사고도 ‘남 일’이 아닌 ‘내 일’처럼 느끼는 국민들이 대다수”라며 “이번 사고로 우리 국민이 느낄 간접적 트라우마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그러면서 “특히, 사고 직후 보여진 정부의 초동대처 미흡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며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정보가 필수다. 정확한 정보 없이 계속해서 비이성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치닫기 마련이다”고 설명했다.

채 센터장은 또 “더욱이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대개 정부나 대책본부 측에서는 ‘별 거 아니다’식으로 사건을 가볍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국민의 화를 더 키우는 결과만 초래했다”며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기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해당 가족들과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사고정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심리전문가도 “국민들이 느낄 분노와 슬픔은 충분히 이해가지만 최악의 2, 3차 피해를 막기위해서는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일각에서는 현재 대응조치에 대해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질타하기도 하는데 정작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빨리빨리’식의 독촉으로 일부 다이버들이 순직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향후 또 다른 트라우마에 직면할 수 있다”며 “최대한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피해자인 탑승객들과 실종된 가족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채 센터장은 “생존자들 중 학생들의 경우, ‘또래 간 애착관계’가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 ‘나만 살아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다”며 “이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은 물론 각종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종된 가족들에게도 ‘무조건 잘 될 거야’식의 맹목적인 덕담보다는 곁에 있어주고 함께 울면서 ‘나도 당신과 같은 심정’이라고 공감해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채 센터장은 “가령, IMF때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한 것,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태에서 자원봉사를 지원한 것처럼 함께 아파해주고 공감해주는 국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되레 넥타이 차림으로 현장을 둘러보는 일부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식’ 위로가 아닌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작은 촛불’ 하나가 이들에게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사고의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심리지원이 강화시킬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18일 교육부, 여성가족부, 소방방재청 등과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중앙 재해 심리지원단’을 구성해 대응체계를 구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상황에 따라 피해자 심리지원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국립병원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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