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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비전위 죽비는 어디두고 빗자루 쓰세요?


입력 2014.04.12 10:05 수정 2014.04.12 10:39        이슬기 기자

<기자수첩>기초의원 공천 논란 침묵 일관

말해놓고도 "개인 의견" 바로 꼬리 내리기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비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비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죽비가 되어달라. ‘과연 신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개혁안을 달라."

지난달 13일 오전 종로구 수운회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새정치비전위원회의 첫 회의에 앞서 결연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새정치비전위원회를 출범하며 당에 ‘쓴소리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였다.

이는 민주당과 전격적인 통합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정치개혁’을 지속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섭외해 ‘국민에 의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위원회는 △국민 눈높이의 원칙 △국민 이익의 원칙 △변화실천 등 구체적인 원칙을 천명하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소속 위원 어느 누구도 기존 정당에 속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당에 ‘쓴소리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출범 한 달을 맞은 현재까지 비전위에서는 ‘빗자루 쓰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에 입닫은 비전위 '쓴소리' 대신 '박수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절차를 마친 뒤 가장 먼저 부딪친 정치개혁 과제는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였다. 통합의 ‘제1고리’이자 지난 대선 당시 안 대표를 비롯한 여야 후보가 내건 공약인 만큼 파장은 당을 뒤흔들었다.

공약은 ‘기득권 내려놓기’의 첫 걸음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명분을 담고 있었다. 새정치연합의 설명대로라면 ‘국민’의 권리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를 외치던 비전위는 이에 대해 침묵했다. 가장 치열하게 의견을 내고 토론해야 할 첫 과제서부터 ‘죽비의 역할’을 외면한 셈이다.

침묵 속에 ‘무공천 철회 가능성’을 언급했던 백승헌 비전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그 문제로 논의되는 바가 전혀 없다. 개인의견이었다”며 서둘러 발을 뺐다.

위원회 간사를 맡은 최태욱 교수도 백 위원장과 함께 기자단 오찬에 참석해 “정치학자 입장에서도 기초선거 무공천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소신을 밝혔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히 백 위원장은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공천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비전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가 없다. 이게 답의 전부다”라고도 했다.

당내 핵심 이슈에 침묵하는 비전위의 모습에선 당초 “모든 의제가 열려있다”던 소신을 타진할 용기도, 자기 발언에 대한 책임의식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국민눈높이에 맞춘 정치개혁 정책을 추진하겠다던 선언도 공허한 구호가 됐다. 현재까지 비전위가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정책은 △비례대표 의석 대폭 확대와 △민생최고연석회의 설치가 전부였다.

그나마 민생최고연석회의는 기존 정당이 내놓았던 민생 의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을뿐더러 구체성이 결여돼 ‘좋은 말 모음’ 정도에 그친 상태다.

무엇보다 비전위가 ‘진정한 죽비’ 역할을 하려했다면, 기초선거 공천 문제에 대해 ‘논의 된 바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가 아닌 위원들의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전위는 학계, 법조계, 사회단체, 종교계 등의 전문가 9명이 모인 집단이다. 논의는 이견을 전제로 진행된다. 비전위 내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무공천 관련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그 분들의 구미에 맞는, 그 분들을 위한, 정치인을 위한 의견을 낼 의사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게다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유지 확정 이후 비전위가 보여준 모습은 더욱 실망스럽다.

비전위는 11일 서면발표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과 ‘새 정치’의 운명을 가늠할 중차대한 결정이 지도부 등의 결단만이 아닌 숙의와 민주적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치켜세웠다.

당내 ‘쓴소리 역할’을 자처하겠다던 비전위가 ‘치어리더’가 된 격이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대변인실에서 쓴 보도자료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당내는 물론 일부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무공천 소신을 끝까지 지키려했다면 투표를 하면 안됐다’는 질타에 대해 완전히 귀를 닫은 모양새였다.

150여년 전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수운 최제우 선생의 대쪽 같은 외침은 보국안민, 제폭구민으로 구체화됐다.

그 수운회관에서 국민을 대표해 죽비가 되겠다던 비전위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뒷마당을 쓸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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