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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500년을 넘나들며 타임 워프 하다


입력 2014.04.05 10:25 수정 2014.06.07 11:35        이석원 기자 (galamoi@dailian.co.kr)

<유럽에 미치다③-스웨덴 스톡홀름1>내가 서 있는 곳 16세기인지 21세기인지...

스톡홀름 감라 스탄 지도(구글 맵) 스톡홀름 감라 스탄 지도(구글 맵)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스톡홀름(Stockholm)이 스웨덴의 수도가 된 것은 1523년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덴마크의 지배권에 있었다.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를 물리친 구스타프 바사왕이 수도를 웁살라에서 스톡홀름으로 옮기면서 스톡홀름은 스웨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됐고, 이후 북유럽의 중심 도시로 성장해오고 있다.

스톡홀름이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이유는, 발트해로 이어지는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14개의 섬이 아름답게 이어지며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지만 그 14개의 개별적인 섬들이 다리와 다리로 이어져 하나가 됐을 때 스톡홀름은 그야말로 신이 허락한 극단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소위 '세계 3대 미항'이라는 호주의 시드니, 이탈리아의 나폴리, 그리고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도 스톡홀름 다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톡홀름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항편이 없어 국적기는 탈 경우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등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다른 유럽의 도시들을 경유한 후 거기서 유럽에서 주로 운항하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부터 외국 국적기를 탈 경우 곧바로 스톡홀름 알란다(Arlanda) 국제공항으로 가 거기서 버스를 타고 시티 터미널로 가든지, 교외선 기차를 타고 중앙역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스톡홀름에서 인근 국가인 핀란드 헬싱키,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는 페리 여객선인 실야라인 ⓒ이석원 스톡홀름에서 인근 국가인 핀란드 헬싱키,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는 페리 여객선인 실야라인 ⓒ이석원

만약 좀 더 멋지게 스톡홀름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핀란드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내려 약 16시간 정도 항해를 하는 페리 여객선인 실야라인(Silja Line)이나 바이킹 라인(Viking Line)을 타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 배들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탈 수 있다. 이럴 경우 스톡홀름에 거의 도착했을 때 무려 2만 여개의 스톡홀름 주변 섬들 사이사이를 누비는 이른바 ‘군도 투어(Archipelago Tour)’로 스톡홀름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발트해로 흘러들어가는 멜라렌 호수에는 약 2만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이석원 발트해로 흘러들어가는 멜라렌 호수에는 약 2만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이석원

작은 섬은 개인이 소유해 별장을 짓고 지내기도 한다. ⓒ이석원 작은 섬은 개인이 소유해 별장을 짓고 지내기도 한다. ⓒ이석원

멜라렌 호수에 떠 있는 섬 중에는 자연보존이 잘 돼 독특한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석원 멜라렌 호수에 떠 있는 섬 중에는 자연보존이 잘 돼 독특한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석원

유럽 본토 쪽에서 스톡홀름으로 들어갈 경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초고속 열차 X2000을 타는 것이다. 5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일반 기차를 탈 경우 스웨덴의 전원을 감상하면서 10시간 정도 걸려 천천히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갈 수 있다.

스톡홀름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작지 않은 도시고, 북유럽 주요한 도시들 중에서는 가장 크다. 하지만 주로 시민들이 거주하는 외곽지역을 뺀 시내 중심부만 따지면 서울 보다 훨씬 작다. 기껏해야 서울의 두서너 개 구를 합친 정도랄까? 거기다가 주요한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한다면 거의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한 곳이다. 대개의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지만.

스톡홀름 여행의 보석은 감라 스탄(Gamla Stan)이다. 스톡홀름은 감라 스탄을 비롯해 중앙역 부근 최대의 번화가를 이루는 세르엘 광장(Sergelstorg) 일대와 박물관 섬으로 불리는 유르고덴섬, 그리고 왕가의 궁전이 있는 드로트닝홀름(Drottningholm)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감라 스탄이다. 만약 스톡홀름을 짧게 여행할 수밖에 없다면 다른 곳은 지나치더라도 감라 스탄만 돌아본다면 스톡홀름 여행의 70%는 한 셈이다.


16세기 이후 스톡홀름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감라 스탄엔 왕궁을 비롯해 대성당과 법원, 그리고 현재의 국회의사당과 대광장 등이 위치해 있고, 현재도 스웨덴의 국회의원 등의 주요한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16세기부터 건립된 중세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곳이며,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다니다보면 스톡홀름의 주요한 역사 유적지들을 다 만나볼 수 있는 그야말로 스톡홀름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감라 스탄 북쪽에 있는 왕궁은 현재 스웨덴의 국왕인 칼 구스타프 16세가 집무하고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프랑스 로코코 양식이 조화를 이룬 이 건물은 원래 바사왕이 1523년 스톡홀름으로 수도를 옮긴 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었는데, 1697년 화재로 거의 전소한 후 1754년 지금의 모습으로 건립됐다.

현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16세의 집무실이 있는 왕궁. 1982년까지는 국왕과 그의 가족이 이곳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이석원 현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16세의 집무실이 있는 왕궁. 1982년까지는 국왕과 그의 가족이 이곳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이석원

1982년까지는 국왕과 그 가족이 거주를 하던 곳이었는데, 이후 드로트닝홀름 궁전으로 이사를 한 후 현재는 외국 국빈을 위한 공간과 국왕의 집무실, 그리고 왕실의 주요한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궁의 일부는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국왕이 집무하는 궁전을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것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현재 사회민주주의 체제 속에서의 스웨덴은 왕 조차도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가 이 왕궁에 심어져 있다고 한다.

왕국을 중심으로 감라 스탄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 마차. 덕분에 왕궁과 국회의사당 사이 광장은 구수한(?) 말똥 냄새가 가득하다. ⓒ이석원 왕국을 중심으로 감라 스탄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 마차. 덕분에 왕궁과 국회의사당 사이 광장은 구수한(?) 말똥 냄새가 가득하다. ⓒ이석원

왕궁의 내부는 화려한 스웨덴 왕실의 권위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국왕 알현 대기실이나, 과거 국왕을 비롯한 왕비와 공주 왕자들이 사용하던 침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의 파티가 이뤄지던 공간들. 특히 왕궁 지하에 있는 12명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보검, 왕관,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의상과 장신구들에 이르러서는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절정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때문에 찬사와 거부감이 공존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모토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이런 반서민적인 공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절로 터지는 찬사를 감출 수도 없다. 왕궁을 나서면 널찍하게 펼쳐진 광장에서 매일 정오에 펼쳐지는 왕궁 근위대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구사기지인 감라 스탄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1480년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이다.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엔 루터교 성당이 됐다. 이곳에서는 스웨덴 왕실의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지난 2010년 6월 19일 바로 이곳에서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자신의 스포츠 트레이너였던 다니엘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스톡홀름 대성당은 스톡홀름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석원 스톡홀름 대성당은 스톡홀름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석원

대성당 내부는 화려함이 돋보이는 각종 조각품과 그림 등으로 치장돼 있다. 이 곳에서 2010년 6월 스웨덴 왕위 게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평민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석원 대성당 내부는 화려함이 돋보이는 각종 조각품과 그림 등으로 치장돼 있다. 이 곳에서 2010년 6월 스웨덴 왕위 게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평민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석원

화려한 조각과 파이프 오르간 등으로 장식된 성당의 내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나무로 조각이 된 ‘세인트 조지와 용’이라는 조각품이다. 스웨덴을 괴롭히던 용과 맞서 싸운 용감한 소년 조지의 전설을 토대로 1489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스웨덴을 억압하던 덴마크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인 스웨덴을 상징한 것. 이 조각품은 감라 스탄 골목골목에 있는 수많은 가게들마다 깃발로 만들어 내 걸 정도로 ‘국민 영웅 설화’가 된 이야기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독일교회의 첨탑과 화려한 내부를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이석원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독일교회의 첨탑과 화려한 내부를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이석원

96m 높이의 아찔한 첨탑을 자랑하는 독일교회는 한자동맹 시대 스톡홀름의 경제권을 쥐락펴락했던 독일인들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고딕 양식의 건물. 현재도 스톡홀름 부유층들의 결혼식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

대성당이나 독일교회와는 달리 작고 소박해 보이는 핀란드 교회 뒤뜰은 작지만 아주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가지가 많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더운 여름날에도 시원함을 만들어주고, 몇 개의 벤치는 지친 여행자들의 다리를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는 그런 곳이다. 몇 발짝만 나가면 시끌시끌한 왕궁의 광장이 있지만 이곳은 그런 분주함보다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드리워진 그런 곳이다. 그곳엔 조금만 주변을 세심히 둘러보지 않으면 못보고 지날 그런 보물이 있는데, 바로 '아이언 보이'. 교회 뒤뜰의 샘물 약간 뒤쪽에 있는 높이가 불과 14cm에 불과한 청동상이다.

걷는데 지친 여행자들에게 편한 휴식을 주는 공간인 핀란드 교회의 뒤뜰. 그런데 이 뜰의 한 쪽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보석과 같은 것이 있다. ⓒ이석원 걷는데 지친 여행자들에게 편한 휴식을 주는 공간인 핀란드 교회의 뒤뜰. 그런데 이 뜰의 한 쪽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보석과 같은 것이 있다. ⓒ이석원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이언 보이' 동상.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지만 이 동상에 숨어 있는 사연과, 또 이 동상이 존재하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석원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이언 보이' 동상.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지만 이 동상에 숨어 있는 사연과, 또 이 동상이 존재하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석원

스톡홀름에 수문이 만들어지기 전 호수 위에 떠 있던 배들에서 짐을 옮기던 짐꾼 중 고아인 어린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배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야만 먹고 살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자기보다 더 어린 또 다른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는 감라 스탄의 한적한 골목에서 배고픔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숨지고 말았다. '아이언 보이'는 그 아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청동상인데, 그 고아의 삶을 그대로 동상에 투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동상은 여름엔 맨머리로 있지만 겨울엔 실로 짠 작은 모자가 씌워진다. 어느 겨울 한 여행자가 동상이 추워 보인다며 그렇게 한 것이 전통이 됐다. 이 동상 앞에 던져진 동전은 핀란드 교회에 의해 전세계 힘겨운 고아 어린이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된다.

감라 스탄의 가장 높은 곳, 모든 골목들이 방사형을 이루다가 모이는 곳에 대광장이 있다. 그다지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스톡홀름 시민이나 여행자 모두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싼 한 쪽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노천카페들이 즐비하다. 물론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중세의 건물들은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양으로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감라 스탄 대광장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다.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은 마치 스케치북에서 막 튀어나온 한 편의 그림같고, 그 건물들 1층의 카페들은 이곳이 왜 스톡홀름의 보석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석원 감라 스탄 대광장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다.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은 마치 스케치북에서 막 튀어나온 한 편의 그림같고, 그 건물들 1층의 카페들은 이곳이 왜 스톡홀름의 보석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석원

그냥 보면 고풍스러운 멋이 뭍어나는 '해골의 샘'. 이름을 알고 이 우물이 생기게 된 배경을 안다면 짙은 회색의 구조물이 을씨년스럽게도 보인다. ⓒ이석원 그냥 보면 고풍스러운 멋이 뭍어나는 '해골의 샘'. 이름을 알고 이 우물이 생기게 된 배경을 안다면 짙은 회색의 구조물이 을씨년스럽게도 보인다. ⓒ이석원

광장 한 켠에 조금은 고풍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느낌까지 주는 우물이 하나 있다. 척 봐도 오래 돼 보이는 이 우물은 일명 '해골의 샘'. 1520년 스웨덴을 지배하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는 스톡홀름 귀족 90명의 목을 쳐서 죽였다. 그리고 그 머리들을 한 곳에 모아 묻었는데, 바로 '해골의 샘'이 그 자리다. 이 날 죽은 귀족 중에는 바사왕의 아버지도 있었는데, 이 사건은 스웨덴 민중들을 분노를 샀고, 결국 수많은 스웨덴 농민과 귀족들이 구스타프 바사 왕의 지휘 아래 덴마크에게 저항, 결국 1523년 스웨덴에서 덴마크의 세력을 몰아내게 된 것이다.

대광장 한 쪽 해골의 샘 건너편에 노벨박물관이 있다. 원래는 스톡홀름 증권거래소로 쓰이던 건물인데 지난 2001년 노벨상 100주년을 기념해 노벨박물관으로 새롭게 꾸몄다. 안에는 노벨상의 역사와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와 사진들이 전시 돼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대광장 한 쪽 가장 큰 건물이 노벨박물관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더욱 흥미로운 장소는 박물관 내 레스토랑. ⓒ이석원 대광장 한 쪽 가장 큰 건물이 노벨박물관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더욱 흥미로운 장소는 박물관 내 레스토랑. ⓒ이석원

박물관 한 쪽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는 전년도 노벨상 만찬에서 수상자들이 먹었던 것과 똑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세상 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의 의자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친필 사인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의자에 사인을 하게 했다는 것도 재밌는 시도인 듯하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을 더 유명하게 하는 것은 노벨상 디저트 아이스크림. 2만원 정도 하는 비싼 아이스크림인데, 거기엔 노벨상 메달과 같은 크기와 모양의 금박 포장 초콜렛이 있다. 한국의 그 어떤 유명한 인사는 그 메달을 지니고 다니면서 마치 노벨상을 예약한 듯 떠벌이고 다닌 적이 있다니, 박물과 레스토랑 직원들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매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곳인 스웨덴 아카데미. 우리나라도 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 때문에 매년 이 곳에 눈길이 몰리고 있다. ⓒ이석원 매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곳인 스웨덴 아카데미. 우리나라도 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 때문에 매년 이 곳에 눈길이 몰리고 있다. ⓒ이석원

노벨박물관 보다 더 의미 있는 공간이 이 건물 3층이다. 그곳은 스웨덴 아카데미인데, 이곳에서 매년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모두 6개의 노벨상 중 물리학, 생리의학, 화학, 경제학상은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그리고 문학상은 이곳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그리고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발표한다. 몇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우리 언론도 그 무렵이면면 스웨덴 아카데미에 솬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스톡홀름 왕족과 귀족들의 전용 성당이었던 곳. 지금은 미사가 열리지는 않고, 역대 왕들의 묘지가 있다. ⓒ이석원 스톡홀름 왕족과 귀족들의 전용 성당이었던 곳. 지금은 미사가 열리지는 않고, 역대 왕들의 묘지가 있다. ⓒ이석원

왕족과 귀족들의 전영성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한 내부를 지닌 귀족 성당. 지금은 여행자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이자 연중 자그마한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의 공간이기도 한다. ⓒ이석원 왕족과 귀족들의 전영성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한 내부를 지닌 귀족 성당. 지금은 여행자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이자 연중 자그마한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의 공간이기도 한다. ⓒ이석원

감라 스탄 중심에서 서쪽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면 리다르홀멘 섬이 나온다. 구스타프 왕가의 왕족을 비롯한 스톡홀흠 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그 중심에 귀족 성당이 있다. 역대 왕과 왕족들의 묘지가 있는 곳. 구스타프 바사왕의 석관도 이곳에 있다. 하지만 이 석관은 비어 있다. 실제 바사왕은 웁살라 대성당에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바사왕 시대에 스톡홀름이 미완성 도시였던 탓에 그는 본래 자신의 근거지인 웁살라에 묻혔다. 하지만 바사왕의 석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실제 스웨덴을 통치했던 왕들의 무덤이다. 수백년 된 무덤들이 있다는 생각에 성당 안에 들어오면 조금은 음습한 느낌도 들지만 스톡홀름 시민들은 이곳 또한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곳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고, 젊은 남녀들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왕들의 죽음과 젊음의 데이트, 언뜻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서임에도 불구하고 죽어서 누워 있는 자나 살아서 사랑을 속삭이는 자나 모두가 편한 느낌이다.

스톡홀름 감라 스탄도 여느 유럽의 매력적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거리 공연의 천국이다. ⓒ이석원 스톡홀름 감라 스탄도 여느 유럽의 매력적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거리 공연의 천국이다. ⓒ이석원

감라 스탄 거리공연엔 제법 실력과 규모를 갖춘 스웨덴의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답게 세계 각국의 거리 예술가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석원 감라 스탄 거리공연엔 제법 실력과 규모를 갖춘 스웨덴의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답게 세계 각국의 거리 예술가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석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감라 스탄의 완벽한 매력은 복잡하지만 그러면서도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골목을 걷는 것이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으면서도 모두가 다른 아름다움으로 걷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감라 스탄의 골목들, 다음 편엔 바로 그 감라 스탄의 골목과 나머지 스톡홀름을 느껴보도록 하자.

글·사진 이석원 여행작가 / 기자

이석원 기자 (galamo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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