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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으로 벌 받고 서있는 여인들마저 아름다운...


입력 2014.03.22 10:26 수정 2014.03.22 10:49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박경귀의 ad greece!④>한 지붕 세 신(神)의 성소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아담한 신전이 남아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인 프로필리아를 넘어 아크로폴리스로 입성하면 남쪽의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눈앞에 들어온다. 맞은편 서쪽에 위치한 에렉테이온(Erechtheion) 신전이 먼저 살펴볼 주인공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늘 눈에 그리던 아크로폴리스에 올라서서 성큼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잠시 멈춰 갖은 애환이 서린 아크로폴리스 전체 경관을 감격스럽게 한동안 바라본다.

그리스 신전들은 전형적으로 직사각형의 반듯한 터전 위에 삼각 지붕을 든든하게 받치는 좌우 대칭의 우아한 기둥이 빚어내는 웅장미와 정제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에렉테이온 신전은 경사진 자연 바위 둔덕을 그대로 살려 언덕 위쪽과 아래쪽을 벽면과 기둥을 섞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지형의 높낮이가 다른 토대에 건축되다보니 대칭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한 신전이 한 명의 신을 모시기 위한 성소라는 법칙도 이 건물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 신전 안에 세 개의 성소가 각기 다른 외양으로 건축되었다. 세 신(神)이 한 지붕 가족이 되어 더욱 이채롭다.

남쪽에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 성소, 동쪽에는 아테네 수호여신 아테나 성소, 북쪽을 바라보는 건물 아래쪽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성소가 위치하고 있다. 3개의 성소가 2단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신전 건물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에렉테이온 신전을 복원한 모형이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왼쪽이 포세이돈 성소, 중앙이 아테나 성소, 여인 석주상이 있는 곳이 엘렉테이온 성소다. 파괴되지 않았다면 매우 아름다운 복합 신전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 박경귀 에렉테이온 신전을 복원한 모형이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왼쪽이 포세이돈 성소, 중앙이 아테나 성소, 여인 석주상이 있는 곳이 엘렉테이온 성소다. 파괴되지 않았다면 매우 아름다운 복합 신전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 박경귀

서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왼쪽에 2개의 기둥이 보이는 부분은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여인 석주가 있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 오른쪽 1개의 기둥이 보이는 동쪽이 아테나 성소다. ⓒ박경귀 서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왼쪽에 2개의 기둥이 보이는 부분은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여인 석주가 있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 오른쪽 1개의 기둥이 보이는 동쪽이 아테나 성소다. ⓒ박경귀

아테네의 역사를 연 인간 왕과 아테네를 축복하고 수호하기를 자처한 두 신을 한 건물에 모셨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역사와 신화를 결합시키고, 아테네의 영광의 지속을 기원한 아테네인의 지혜가 담긴 셈이다. 비록 아테나가 도시의 수호신이긴 하지만, 포세이돈의 가호가 없었다면 아테네가 어떻게 그리스 최강의 해상국가가 될 수 있었겠는가. 최소한 아테네인들은 그렇게 믿고 두 신을 공평하게 경배하지 않았을까?

세 성소가 각기 다른 바닥과 기둥, 벽면으로 이어져 있지만 전체 신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파르테논 신전에 비하면 아담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파르테논 신전의 도리아식 기둥이 단순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반면 이보다 뒤에 건축된 에렉테이온 신전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보다 날씬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에렉테이온 신전 남쪽 중앙 바로 앞쪽에는 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인들에게 선물 경쟁을 해서 아테나가 아테네인들에게 선물로 준 그리스 최초의 올리브 나무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나무는 최초의 나무가 불탄 후 자라난 2세 나무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우선 에렉테이온 신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서측면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모습이다. 왼쪽 기둥 4개가 보이는 곳이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4개의 기둥이 있는 곳이 아테나 성소의 서측면이다. 오른쪽에 카리아티드가 보이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다. ⓒ박경귀 서측면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 모습이다. 왼쪽 기둥 4개가 보이는 곳이 포세이돈 성소다. 중앙의 4개의 기둥이 있는 곳이 아테나 성소의 서측면이다. 오른쪽에 카리아티드가 보이는 곳이 에렉테우스 성소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신전 구조물에서 포세이돈 성소의 웅장한 석주가 인상적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주두(柱頭) 양식은 양끝을 물결 문양으로 말아 우아한 느낌을 준다. 웅장한 석주에 부드러운 기교가 덧붙여진 느낌이다. 석주의 밑동은 섬세한 매듭 문양으로 수를 놓았는데 기둥 받침의 부드러운 S자 곡선과 세로 홈의 석주 가운데 접점에 위치하여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엄청난 대리석 지붕과 석주의 하중이 쏠리는 팽팽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기교가 돋보인다.

포세이돈 성소의 측면이다. 웅장한 석주가 간결하면서 아름답다. ⓒ박경귀 포세이돈 성소의 측면이다. 웅장한 석주가 간결하면서 아름답다. ⓒ박경귀

포세이돈 성소의 천정은 사각의 기하학 문양을 여러 겹 겹친 모양으로 치장했다. ⓒ박경귀 포세이돈 성소의 천정은 사각의 기하학 문양을 여러 겹 겹친 모양으로 치장했다. ⓒ박경귀

포세이돈 성소의 이오니아 기둥의 섬세한 밑동 장식이 건축미를 더해준다. ⓒ박경귀 포세이돈 성소의 이오니아 기둥의 섬세한 밑동 장식이 건축미를 더해준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신전의 동쪽이 아테나 성소다. 아테나 성소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아테나 폴리아스(Athena polias)의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매년 아테나를 기르는 판아테나이아(Panathenaia)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다. 아테네의 북서쪽에 있는 케라메이코스(Kerameikos)에서 출발하여 이곳, 아테나 성소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축제의 절정은 아테네 목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규모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작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받았던 곳이 아닌가 싶다.

동쪽에서 들여다보이는 아테나 성소의 내부다. 지금은 페허가 되었지만 안쪽에 아테나 여신의 목상이 있었다고 한다. ⓒ박경귀 동쪽에서 들여다보이는 아테나 성소의 내부다. 지금은 페허가 되었지만 안쪽에 아테나 여신의 목상이 있었다고 한다. ⓒ박경귀

에렉테이온 남쪽 측면이 에렉테우스 성소다. 이 성소 자체 보다 성소 입구를 장식한 여인상의 기둥이 더 주목을 받는다. 에렉테우스 성소의 수평 지붕을 여섯 명의 여인이 머리로 받치고 파르테논 신전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비운의 여인들이 관심을 끈다. 홈이 파인 석주 대신 지붕을 받치고 있는 여인상의 아름다운 조형미 때문이다. 이 여인상을 보는 관광객들은 대개 아름다운 건축 장식을 위해 여신상을 조상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이 아름다운 여인상 기둥에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슬픈 사연이 얽혀있다. 관광 가이드조차 이에 얽힌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개 그리스 여신을 형상화했거나, 아름다운 여인상 기둥쯤으로 쉽게 보아 넘긴다.

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의 옆 모습이다. 에렉테우스 성소의 지붕을 여인상을 한 기둥 6개가 떠받치고 있다. 관광객들의 가장 즐겨 찍는 부분이다. ⓒ박경귀 남쪽에서 바라본 에렉테이온 신전의 옆 모습이다. 에렉테우스 성소의 지붕을 여인상을 한 기둥 6개가 떠받치고 있다. 관광객들의 가장 즐겨 찍는 부분이다. ⓒ박경귀

이 기둥역할을 하는 여인들은 여신이 아니다. 또 여성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부와 기쁨을 상징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들이 지붕을 머리로 받들고 이고 있는 건 징벌을 당하고 있음을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사연은 이렇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 많은 그리스계 나라들이 그리스를 배반하고 페르시아에 부역했다. 에게해 동쪽 바다에 접하고 있는 지금은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 지역의 이오니아 도시 국가 중 여러 나라는 페르시아의 전쟁 징발 요구에 응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본토 및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의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도 페르시아와 내통하는 국가가 많았다.

그들은 군사나 군량, 전쟁비용 등을 부담하고 참전하거나 아테네의 군사정보를 페르시아쪽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카리아(Caryae)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이런 배신행위가 왜 일어났을까? 20만~30만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의 대군에 대적할 아테네의 병사는 적군의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소수였다. 현격한 전력 차이를 보자 그리스의 패전을 예측하고 자진하여 페르시아 편에 섰을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 적어도 아테네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테네의 배후 지역의 도시인 카리아가 배신했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3차 그리스 침공은 아테네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테네는 승전 이후 페르시아에 부역한 도시국가들에게 합당한 죄상을 물었다.

카리아 지방의 배반에 대한 책임은 더 혹독하게 물었다. 카리아를 정복하고 모든 남자를 죽이고 도시를 황폐화시켰다. 여자들은 노예로 끌어오고 개선행렬에서 모욕을 주었다.1) 또 이들의 배반의 죄과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카리아 지방 여인들 모습을 딴 여인상을 에렉테이온 신전의 기둥으로 삼았다. 카리아 여인들을 영원히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상징화하여 동맹국들에게 배반의 징벌의 본보기를 보여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여인상 석주가 카리아티드(caryatid)로 불리게 된 사연이다.

결국 카리아 여인들은 자신의 나라 정치지도자들과 군대가 결정한 페르시아 참전과 부역의 벌을 대신 받게 된 것이다. 이 여인상은 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 편에 섰던 수많은 도시국가와 지방들의 죄업을 대신했다. 카리아티드는 아테네 시민들의 가슴 속에 배신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아테네의 동맹국들에게는 배반을 예방하는 경고음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아크로폴리스 에렉테이온 신전에 있는 카리아티드는 풍화와 훼손을 우려하여 복제품으로 대체되었다. 진품 카리아티드는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있는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카리아티드 6개중 4개는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고, 1개는 수장 중이며, 나머지 1개는 약탈해 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 2013년 방문 시 박물관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카리아티드 진품을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2014년 1월에 다시 방문해서 기어코 진품을 확인했다. 보지 못했으면 내내 후회할 뻔 했다.

2500년이 된 지난 대리석 조상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매력적이다. 얼굴은 상당히 풍화되어 표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인들의 봉긋한 가슴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의 섬세한 조각이 놀랍다. 게다가 대리석 지붕의 하중을 견디는 기둥 역할을 하면서도 왼발을 살짝 내민 모습으로 조상한 자연스런 육체적 균형미를 만들어낸 건축적 역량과 예술적 기량이 감탄스럽다. 오랜 세월 동안 검게 퇴색된 대리석 표면은 레이저를 활용한 현대적 복원기법으로 때를 벗기고 뽀얀 대리석의 여인상의 아름다움을 복원시켰다. 카리아티드 한편에는 이들을 복원시킨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인들의 뒷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리 부분에서 목선을 넘겨 가지런히 딴 머리를 늘어뜨리고 끝 부분을 소담하게 풀어내고 매듭 장식으로 묶었다. 머리를 굵게 땋아 뒤로 넘긴 것은 가는 목 부분을 보완하여 머리 위의 하중을 지탱하게 하기 위한 것 같다. 건축적 고려와 예술미의 결합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4개의 진품 카리아티드가 전시되고 있다. 1개는 수장고에 보관중이라 한다. ⓒ박경귀 신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4개의 진품 카리아티드가 전시되고 있다. 1개는 수장고에 보관중이라 한다. ⓒ박경귀

카리아티드의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머리를 땋아 내린 부분을 주목해 보라. ⓒ박경귀 카리아티드의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머리를 땋아 내린 부분을 주목해 보라. ⓒ박경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중인 1개의 카리아티드다. 물결 무늬의 머리와 전신의 균형과 옷매무새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경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중인 1개의 카리아티드다. 물결 무늬의 머리와 전신의 균형과 옷매무새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경귀

카리아티드를 보면, 우리나라의 유사한 사례가 생각난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 보머리 사이에 끼워져 있는 목조 나신상(裸身像)이다. 목조 나신상이 머리와 손으로 대웅전 추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에렉테이온의 카리아티드처럼 우아한 멋을 자랑하는 입상(立像)이 아니라, 쪼그려 앉아 옹색하게 끼워져 있는 형상이다. 조각이 투박하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형상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전하는 얘기로는 분명히 발가벗은 여자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전등사의 건축을 맡은 도편수의 사랑을 받던 아랫마을 주모가 도편수가 맡긴 돈을 챙겨 달아나자, 배신감과 원통함을 가누지 못한 도편수가 자신의 작품 속에 주모가 벌 받는 형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은 그의 심사가 애처롭게 생각된다. 아테네의 카리아티드가 국가적 반역에 대한 징벌이라면, 전등사 나신상은 개인적 사랑의 배신에 대한 ‘예술적 복수’란 점이 다르다. 그의 애절함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해학적 느낌도 난다.

전등사 대웅전의 목조 나신상, 네 귀퉁이를 장식한 것 중 하나다. 이렇게 여인상을 끼워놓고 나서야 도편수의 원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margrina/5275107 전등사 대웅전의 목조 나신상, 네 귀퉁이를 장식한 것 중 하나다. 이렇게 여인상을 끼워놓고 나서야 도편수의 원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margrina/5275107

어쨌든 카리아 여인들의 비운의 운명을 알고 나면, 카리아티드(caryatid)라 불리는 이 여인상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경에 무관하게 에렉테이온의 카리아티드는 그 아름다움을 살린 건축적 효용으로 인해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계승된다. 이후 카리아티드는 여인상의 돌기둥을 지칭하는 서양 고전 건축양식의 한 이름이 되고, 로마시대는 물론 르네상스 이후 중세 건축에서도 자주 쓰이게 된다.

그리스 조각들을 모아 놓은 루브르 박물관의 ‘카리아티드 홀(Salle des Caryatides)’ 입구의 카리아티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건축 양식의 표본을 보여준다. 여인들의 표정에서 고통의 잔영을 전혀 볼 수 없고 아름다움과 기쁨에 충만한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의 경우 두 팔을 자연스럽게 내린 형태를 취했는데, 여기서는 우아한 옷맵시를 강조하고자 두 팔을 완전히 제거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카리아티드는 여인 석주가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박경귀 루브르 박물관의 카리아티드는 여인 석주가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잘 보여준다.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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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주1 : 로마의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십서'에서 카리아티드의 유래를 설명하고, 기둥을 인간의 형상으로 한 건축 양식이 형성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포로주상도 그 한 예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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