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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아디오스' 정정당당 조연으로 떠난다


입력 2014.02.21 06:21 수정 2014.03.05 09:43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4년 전 재현 김연아, 납득하기 어려운 2위

최정상급 기량 보여주고 '정정당당' 조연으로 마무리

어쩌면 이런 결과는 예정(?)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149.95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7·러시아)의 프리 스케이팅 점수가 발표됐을 때, 그 뒤에 연기를 펼칠 김연아(24)가 소트니코바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 점수로 역전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동시에 새로운 스타 탄생의 순간 가장 빛나는 조연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던 게 사실이다.

잠시 후 이 같은 기대와 불길한 예감 사이에서 현실이 된 쪽은 후자였다.

21일 오전(한국시각)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무대에 나선 김연아는 애수에 젖은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물 흐르는 듯한 연기를 펼쳤고, 실수 없이 연기를 마쳤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에서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연기를 펼쳐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로 평가 받았던 그 때 그 순간을 김연아는 4년 만에 그대로 재현했다.

연기를 마치고 4년 전 그때와 다름없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마주했다. 하지만 4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감격에 겨워 흐느끼듯 눈물을 쏟았던 4년 전과 달리 김연아는 홀가분한 표정과 환한 미소로 박수갈채에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잠시 후 발표될 점수는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다'라는 듯한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키스앤크라이 존에 신혜숙, 유종현 코치와 나란히 앉아 프리 스케이팅 점수를 기다리던 김연아는 144.19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74.92점을 받은 김연아는 이날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더한 합계 점수에서 219.11점을 받았다.‘불멸의 피겨여왕’의 현역 마지막 점수가 됐다.

하지만 이 점수는 여왕이 그의 마지막 무대를 시상대 맨 위에서 마치는 것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는 전날 74.64점의 쇼트 프로그램 점수를 받은 데 이어 이날 받은 세계기록에 가까운 프리스케이팅 점수로 합계 224.59점을 기록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주인공 소트니코바의 몫이었다.

피겨 스케이팅 역시 ‘정정당당’이라는 덕목이 생명인 스포츠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점프의 교과서’로 불리는 등 기술적인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로서 예술성을 평가하는 프로그램 구성점수(PCS)에서 소트니코바에 앞서고도 점프와 스핀, 스텝 등 기술요소를 평가하는 기술점수(TES)에서 부족한 가산점 때문에 6점 이상 뒤진 기술점수에 발목이 잡혀 금메달을 놓쳤다는 사실을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관된 채점 기준이 적용됐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개최국 러시아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 그리고 홈 어드밴티지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너무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다.

다소 비약하자면 이미 각본을 짜고 경기를 펼치는 프로레슬링과도 비슷한 면도 있다. 경기를 마친 김연아 역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일단 어제 이어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실수는 없었지만 연습처럼 완벽하진 않았다”며 “애초에 금메달이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현역 마지막 경기를 펼친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은 요동쳤다.

시상대 맨 위에서 펼친 화려한 마무리가 아닌 시상대 맨 위보다 한 계단 낮은 곳에서 짓는 마무리가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기는 현역 은퇴 무대였다. 메달의 색깔이나 점수와는 무관하게 현역 마지막 무대를 생애 두 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멋지게 마무리하려 했던 김연아의 바람과는 달리 점수와 메달 색깔만을 떠올렸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든 무대이기도 했다.

어쨌든 경기는 끝났다. 이제는 정말 국가대표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다. 이제 키스앤크라이존에서 심판진의 채점결과를 기다리는 김연아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결코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이렇게 찾아왔다.

언제 다시 김연아와 같은 선수를 마주하게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김연아와의 작별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렵다. 하지만 김연아가 앞으로 한국 피겨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언젠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후배의 탄생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때다. 아디오스 연아.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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