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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연탄배달' 철없는 부자가 세상을 바꾼다?


입력 2014.01.26 10:06 수정 2014.02.11 11:20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부자 분수' 봉사도 격 있어야

낭만적이고 후진적인 한국적 도네이션의 전형 연탄배달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2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연탄 배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2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연탄 배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늦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달랑 남은 몇 개의 붉은 감을 두고 ‘까치밥’이라 하며 한국인의 인정의 대명사로 글쓰기 소재가 된다. 아무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너무 높은 곳에 달려있어 미처 따지 못했거나, 그마저 다 따버리면 허전하고 을씨년스러울 것 같아 관상용으로 남겨둔 것이겠다.

요즘이야 그런 풍경이 없어졌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엔 보리, 벼, 고구마, 땅콩 등을 추수하고 나면 동네 아이들은 이삭줍기에 총동원 되었다. 헌데 우리 밭을 수확하고 나서 어린 식구들이 이삭을 주우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못 줍게 하셨다. 대신 남의 밭에 몰려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어떤 집 논밭에는 이삭을 거의 남기지 않아 아이들이 허탕을 치는 일이 있는데, 이럴 때는 그 야박함에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동네 아이들이 마을의 모든 밭을 몇 차례 훑고 나면 정말이지 나락 한 톨, 땅콩 한 알 남아 있지 않아 겨울 철새들은 겨우 보리 싹이나 뜯어먹어야 했다.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에 팔자 좋은 한 할머니가 나와 훌륭하게 키워 잘 사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네 파지를 주워 판 돈으로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왔었다. 아마도 건강도 챙기고 저승가기 전에 선행 스펙 쌓으려고 저러나보다 싶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또 요즘 아파트나 학교 경비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전직이 쟁쟁한 분들이 있어 자식이 의사, 판검사이지만 놀면 뭐하냐며 자신의 근면과 자식 자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아름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파지라도 주워 끼니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 경비 자리도 못 구해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정말 가난한 어느 가장의 몫을 뺏고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한국에서는 우편배달부, 환경미화원을 모집하는 데 대학졸업자는 물론 석사학위 소지자들까지 몰려드는데, 독일 등 유럽에서 그랬다간 곧바로 지탄의 대상이 된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많이 못 배운 사람들의 직업 영역을 넘보는 몰염치를 사회가 결코 용서치 않는다. 한국의 멀쩡한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이 해오던 안마 일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게 진정한 강륜(綱倫)이다. 무슨 정치적 철학적 거창한 주장으로 정의 구현하는 것 아니다.

한국 부자들의 품격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인생 60이면 대부분 보통 사람은 결산이 끝난다. 해서 부자는 부자로, 가난한 자는 가난하게 나머지 생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쯤에서 동창회나 경조사, 개업식 등등 모임에 나가보면 게 중에는 꽤 재산을 모아 부자로 소문난 친구들도 나온다. 헌데 그런 부자들도 다른 가난한 친구들과 똑같이 몇 만원 든 봉투를 내거나 그마저도 안내고 먹고 마시고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거지같은 빈손 부자’를 보면서 ‘그래서 그 많은 돈을 모았나?’ ‘그렇게 살 거면 뭣 하러 그 많은 재산을 모았지?’라며 사람들이 빈정댄다.

명색이 부자라고 소문이 났으면 누구 개업식이나 축하파티에 참석할 때 미리 서너 시간 전 운전수에게 시켜 마트에서 대용량 아이스박스 두어 개에다 샴페인과 화이트와인, 핑크빛 로제와인 가득 채워 얼음 쟁이고 샴페인잔이나 화이트와인잔 4,5십 개 함께 사서 건배용으로 쓰라고 사전에 실어다주는 것이 최소한의 체면치레겠다. 그래봤자 가난한 동창 지갑의 만원 짜리 한 장보다도 더 가벼울 것이다. 벼슬만 높다고 체신을 차려야 하는 것 아니다. 부자도 부자답게 처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나름 재산을 제법 모았다며 땅 자랑 빌딩 자랑하는 어른들 중에는 노년에 문화사업, 교육사업, 자선사업 등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예외 없이 결코 죽기 전에 그런 일을 안 한다. 실은 그 핑계로 순진한 젊은이들을 제 앞에 조아리게 해놓고 자기에게 아부하게 만들어 적당히 부려먹는 것이다.

재산 빼고는 달리 내세울 것 없는 인생들의 전형적인 자위행위. 고작 밥값이나 찻값으로 제 인생 성공을 확인하고 자랑하며 여생을 즐기는 고약한 늙은이들이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재수없게 그 꼼수에 걸려들어 제 갈 길을 못 가고 들러리 서는 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다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베풀지 않는 부자가 존경받을 리 없을 터,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는 사회적 암(癌)이다.

낭만적이고 후진적인 한국적 도네이션의 전형 연탄배달

철마다 한국에선 상당한 부자가 나름 소외계층이나 불우이웃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며 다른 이들과 섞여 함박 웃는 사진이 매스컴에 자랑스레 실리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봄에는 지방선거다. 아니나 다를까, 설이 가까워 오자 신문에 빠지지 않고 실리는 사진이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연탄배달. 세밑풍경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아무렴 아름다운 일이지만 20세기도 십년을 훌쩍 넘긴 이 시대에 흑백사진 시대의 대명사인 연탄배달이라니! 흡사 60, 70년대식 신파극을 보는 것 같다.

연탄 몇 장, 김장 몇 포기, 라면 한 상자, 쌀 한 포대 얻어먹기 위해 자존심 죽이고 잘 나가는 위인들, 잘 사는 사람들, 잘 나가는 기업들의 자선 홍보용 사진 모델이 되어야 하고 병풍이 되어야 하는 취약 계층 사람들. 잠시 몸으로 때우는 생색내기로 차경(借景)해서 언론에 사진 실려 홍보하는 정치인들과 기업들. 그리고 그런 유치한 '생쇼'에 놀아나는 언론들.

엊그제 창당을 위한 이삭줍기에 바쁜 안철수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연탄 배달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마스크만 빼고 완전무장. 온몸에 비닐을 감고 난생처음 지게 지는 이색체험으로 천사연하는 어색한 미소에서 감동 대신 짜증이 잔뜩 느껴진다. 학생들의 스펙쌓기용 봉사와 뭐가 다른가?

무한도전! 이삭줍기! 순진해 보이는 어눌한 연기! 눈가리고 아웅식의 사진찍기용 봉사. 아무도 감동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후진적 자선. 빈곤한 상상력으로 구태를 고스란히 답습하면서 새정치? 기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안(安)정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진. 당분간 일감이 없어진 동네 연탄가게 주인이 울겠다.

선진국 부자들은 왜?

재작년 미국의 슈퍼리치들이 ‘세금을 더 내자’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워런 버핏 회장과 조지 소로스 회장 주도로 나온 성명에는 미국 ‘재정절벽’ 타개를 위해 상속세 인상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뮤추얼펀드 뱅가드그룹 사주인 존 보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등 20여 명의 부유층 저명인사가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상속세 인상이 재정 감축과 관련해 세입을 늘리려는 노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세금을 올려도 "소득 상위 1%에 여전히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최고 부자들의 상속세를 인상하고 그것을 지키면 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에도 거액을 기부해왔고 또 사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서명까지 한 이들 부자들이 상속세까지 올려달라고 한 것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그 저의를 파헤친답시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도네이션, 노블리스 오블리주 역시 부자의 품격으로 그들은 피드백을 실천한 것일 뿐이다. 아무렴 부자가 칭송받을 일은 도네이션 외는 없다. 그리고 그만큼 쉬운 방법도 없다.

철없는 부자가 세상을 바꾼다?

큰돈은 쌓아두고 맨몸으로 봉사하는 부자? 위선이다. 미국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부자가 도네이션 않고 양로원을 찾아 고무장갑 끼고 자원 봉사한다고 하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피드백은 등가(等價) 등질(等質)의 것이어야 한다. 가진 게 재능밖에 없다면 재능으로 피드백할 수밖에 없겠다. 허나 재능이 있다 해도 돈을 많이 벌었으면 돈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매너다.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12년 재임기간 동안 개인 재산 수천억 원을 도네이션했다.

그런 게 보유재산으로든 마음의 중심으로든 부자의 분수, 부자의 본색, 부자의 품격이겠다. 가난한 사람만 분수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부자도 지켜야 할 분수가 있다. 아무렴 아리스토텔레스도 ‘부자가 재산을 자랑하더라도 그 부를 어떻게 쓰는가를 알기 전에는 칭찬하지 말라’고 했다. 부자가 철이 안 들면 대한민국은 절대 선진국 안 된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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