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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노사관계에 멍드는 기업체질


입력 2013.12.20 10:53 수정 2013.12.27 16:33        박영국 기자

<긴급진단-떠나는기업,사라지는 일자리⑤>통상임금제, 근로시간 단축, 사내하도급 보호법 등 고용환경 악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6월 25일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투쟁을 위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6월 25일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투쟁을 위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목차
1.총론: 해외로 떠나는 기업. 부메랑은 결국...
2. 글로벌 추세 역행하는 증세 부담
3. 기업 손발 묶는 경제민주화 바람
4. 높아지는 생산비에 원가경쟁력은 뚝뚝
5. 경직된 노사관계에 멍드는 기업체질
6. 기업인 사기 꺾는 반기업정서 확산
7. 역차별 논란 중기 적합업종 선정
8. 대안은 없나... 전문가 진단
최근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사실상 철수한다고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유럽 쉐보레 물량은 GM 산하의 한국지엠 공장에서 생산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한국에서의 생산물량 철수를 의미한다.

얼마 전 방한한 제롬 스톨 르노 부회장도 한국 자동차업계의 고임금과 저생산성을 문제로 거론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는 국내에 공장을 둔 외국 업체의 임원들이 한국 노동 시장의 생산성을 비판하는 발언이 고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좀 더 냉철하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만일 자신이 현대자동차의 주주고, 이 회사가 시장은 크지 않으면서도 임금은 높고 각종 고용관련 규제에 얽혀 있는 지역에 공장을 짓는다고 하면 찬성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GM과 르노가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물량을 다른 지역 공장으로 배정한다 한들 무작정 그들을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국내 고용환경의 실체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는 고용 규제 현안만 20여건에 이른다.

주로 우리보다 산업화의 역사가 긴 주요 선진국들보다 강한 규제거나,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제들만 뽑은 게 이 정도다.

대부분은 기존 정부 방침이나 제도 하에서 용인되던 것들이 뒤늦게 논란이 되거나 규정이 바뀌어 기업들이 졸지에 불법 행위를 자행하는 악덕 사업주로 몰리는 식이다.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포함…기업 임금부담 가중

지난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통상임금 문제가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1980년대 마련된 정부의 행정지침에 따라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고정상여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상여금의 성격상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사회적 통념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계의 통상임금 산정범위 확대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특정기업의 사례에 해당하는 판결을 근거로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아시아나항공, 발전자회사 등 초과근로가 많은 개별사업장에서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번 대법 판시는 과거 3년 간의 소급분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해 기업들의 일시적인 부담은 줄었으나, 여전히 앞으로의 임금 상승에 따른 어려움은 불가피하다.

경총은 판결 후 우리 기업들이 최초 1년간은 13조7509억원을, 이후 두 번째 해부터는 매년 8조8663억원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총 관계자는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는 일자리창출 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초과근로수당, 연차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통상임금 증가는 기업의 급격한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상여금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기업 추가비용 부담 추정.ⓒ한국경영자총협회 상여금 통상임금 포함에 따른 기업 추가비용 부담 추정.ⓒ한국경영자총협회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고액연봉자 장기간 떠안아야

지난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60세 정년연장 의무화도 기업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단순히 직원의 고용기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신입사원의 두 배 이상을 받는 고액연봉자들을 장기간 떠안아야 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 20년 이상 근무한 임금수준이 신입사원의 1.2~1.5배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관리·사무직은 2.18배, 생산직은 2.4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직적인 고용규제로 60세 정년연장 의무화시 인력의 퇴직 경로가 차단돼 신규인력 채용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5월 경총이 발표한 ‘청년실업과 세대간 일자리 갈등에 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기업 54.4%와 청년구직자 66.4%가 중·고령 근로자의 정년 연장시 기업의 신규채용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70.7%가 정년 연장시 신규채용을 축소할 것으로 응답했다.

경총 관계자는 “60세 정년연장 의무화는 기업의 준비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시행시기를 1~2년 유예하는 한편, 향후 임금피크제 도입이 산업현장에 확산 및 연착륙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통해 고령자 고용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연공급적 임금체계를 직무·성과중심으로 개편하는 한편, 노동법적 규제 완화를 통해 고용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 단축…경직된 노동시장 현실로는 불가능

‘근로시간 단축’ 이슈도 국내 기업들에게는 부담이다. 애초에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다른 나라보다 길어지게 된 책임을 기업들에게만 전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노사간 이해일치로 발생한 현상”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보다는 오히려 노동시장 유연성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경직적 노동시장으로 인한 해고의 어려움으로 초과근로를 선호해 왔다. 경기가 좋을 때 채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경기가 나빠져 생산량을 감축할 때, 인원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 근로자의 초과근로를 통해 생산량 증가에 대처해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도 기업이 근로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총이 OECD 통계를 인용한 집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9.3%, 프랑스의 51.5%로, 절반 내외다.

장기간 근로의 배경이 된 근로자측 요인은 여가보다는 소득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소득 보전을 위해 초과근로를 선호해 왔고, 이 때문에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의 20~30%가 초과근로 수당인 기형적 구조가 됐다.

또, 대기업 근로자들의 경우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이용해 초과근로시간을 늘려왔다는 점에서 길어진 근로시간을 사용자 측에만 전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정부 때 활발히 추진됐던,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자는 ‘잡셰어링’도 현재의 노동환경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에도 노조 측에서 근로시간 단축시 임금보전을 요구해온 경우가 많았는데, ‘잡셰어링’ 차원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자고 했을 때 근로자들이 단축된 근로시간만큼의 임금 하향조정을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경영계의 시각이다.

자칫 기존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은 그대로 고스란히 지급하고 추가 고용된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 부담을 새로 떠안는 상황을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또, 고용유연성이 낮은 우리 현실에서 초과근로는 기업이 경기 사이클에 따라 산출량을 조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만큼, 초과근로를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 수준.ⓒ한국경영자총협회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 수준.ⓒ한국경영자총협회

사내하도급 보호법, 고용유연성 더욱 악화시켜

사내하도급 보호법 등 비정규직 근로자 이슈는 한국의 고용유연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국내법상 ‘근로자 파견’은 사실상 불법이다. 우리 파견법은 32개의 한정된 업무만 허용하고 있으며, 이 업무 또한 기업의 실수요와 거의 동떨어진 것이어서 현재 파견근로자는 전체의 0.5%에 불과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BMW 라이프치히 공장 인력구조.ⓒ한국경영자총협회 BMW 라이프치히 공장 인력구조.ⓒ한국경영자총협회
독일, 일본, 미국 등 대다수의 국가들이 원칙적으로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방식이며, 사용기간 제한이 없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고용경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신 ‘하도급’은 허용된다. 인력 공급업체로부터 근로자를 파견 받아 일을 시키는 것은 안되지만, 사업체의 업무 일부를 하도급 업체에 맡기는 것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사내하도급은 파견이 금지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고용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창구였다.

문제는 하도급과 근로자 파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하도급과 파견의 구분은 사용자가 ‘하도급 업체의 생산 결과물에 대해 대금을 지급하느냐’, ‘하도급 업체 직원에게 직접 지휘명령을 하느냐’로 구분되지만, 업종별로 다양한 작업 특성상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구분하는 게 모호할 수밖에 없다”며 “해외의 주요 사례들을 찾아봤지만, 하도급과 파견을 법적으로 명확히 양분화하는 기준을 제시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만큼 하도급 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의 정규직 입사를 목적으로 불법 파견을 주장하며 소송을 걸 경우 업무 형태별로 수많은 사례의 법적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쌍방의 의사가 존중돼야 할 계약 관계를 법적으로 강제함으로써 사업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는 인(人)적 속성이 많이 반영된다”며, “사람의 능력이나 특성, 심지어는 성격까지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야 고용계약이 이뤄지는데, 이를 무시하고 고용을 강제한다면 고용주는 근로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존재는 해당 국가에 고용효과를 안겨주지만, 역으로 고용환경이 나쁘면 기업은 해당 국가에 존재할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가뜩이나 경직된 고용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일자리만 늘리겠다는 건 모순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국가별 고용규제 현황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처럼 심한 곳이 없다. 이미 한국은 저임금 국가가 아닌데다, 고용유연성까지 확보되지 못한다면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고용경직성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과 그로 인한 산업공동화(空洞化) 현상을 불러올 것임을 경고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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