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도 미등기임원 무임승차 후폭풍오나?
내년 3월부터 5억원 이상 임원 개별 보수 공개 의무화에 비등기임원 전환 잇달아
내년 3월부터 5억원 이상 받는 등기임원에 대해서 개별보수 공개가 의무화된 가운데 재계에선 미등기임원으로의 무임승차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재계의 특성상 총수들은 등기임원으로 있기 보다 미등기임원으로 있으면서 실질적인 경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책임경영을 등한시 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하지만 현재 등기임원이라도 사퇴 후 미등기임원으로 바뀌면 연봉 공개를 회피할 수 있어 규제의 사각지대를 피할 수 있다.
18일 한 기업경영 평가 분석 회사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기업은 176개사, 공개대상은 536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대주주 일가가 등기이사로 올라있는 기업은 96개사로 절반에 불과하며 인원은 93명에 이른다.
재계뿐만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전례를 찾을 수 있다. 상장회사의 등기임원을 대상으로만 제한돼 있는 제도를 교묘히 피하기 위해 비상장사의 등기이사로만 등록하는 경우다.
이날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 다트(Dart)에 따르면, 금융권의 대표적인 큰손으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등기이사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그룹 상장된 주력계열사 중 등기이사로 등재된 곳이 없다. 박 회장은 후계구도의 핵심으로 통하는 미래에셋컨설팅에도 임원으로 등재돼 있지 않다.
최근 미래에셋그룹은 지배구조를 손질했다.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컨설팅(48.6%)·미래에셋자산운용(59.8%)·미래에셋캐피탈(48.7%)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은 미레에셋캐피탈이 대주주다. 등기임원이 아님에도 여전히 대주주로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증권사 등기임원에서 사퇴한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보수가 공개되면서 책임경영 회피하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조 회장은 지난달 7일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서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회장직을 사퇴했다. 조 회장은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뒤 대주주 지위만을 유지하게 됐다. 조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 지분 74.42%를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겠다는 것이 이유다. 최근 금감원이 별도로 금융사 CEO의 보수를 살펴보니 지주사에서 지난해 조 회장에게 지급된 연봉은 50억원 가량이다. 조 회장은 지주사 뿐만 아니라 계열사에서도 고액 연봉을 한해 90억원을 챙겼다.
대주주로서 실제 그룹 경영 전반을 통솔하고 있음에도 등기임원에서 사퇴함에 따라 개별 연봉 공개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책임경영에도 자유로울 밖에 없다.
상법상 등기임원은 법적 책임을 가진다. 반면 미등기임원은 회사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 등 회사의 결정에 있어서 외부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총수들은 그룹경영의 주요사안들을 챙겨오고 있으며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등기임원이라도 사퇴후 미등기임원으로 바뀌면 연봉 공개를 회피할 수 있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국회 정무위에서 임원보수 공개 법안에서 대상이 상장사 등기임원으로 국한돼 그 대상이 극히 일부로 제한된 점에 대해 사회단체들은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책임경영을 이끌어야 할 총수일가가 단순히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면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금융위원회도 일부 인정하면서도 임원들의 보수총액만 공개했던 과거보다 큰 진전을 이뤘다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태종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이 제도가 국회에 심의되고 통과될때 부터 언론, 각계에서 지적이 있었다"면서 "개별임원 보수 공개가 상당히 기업경영 투명성 차원에서 볼때 많은 진전이 있음을 생각해달라"며 앞으로 현행 제도 한계점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회에서 제도보완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업보고서 미제출, 허위 및 거짓기재, 불성실 공시할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엄격한 제재와 벌칙이 뒤따를 예정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고액 연봉을 받아가는 대기업 대주주 경영자들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하고 미등기 이사로 옮겨갈지 금융권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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