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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에 끌려간 덕적도 이장과 이석기의 차이는


입력 2013.09.03 11:14 수정 2013.09.03 11:39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인만의 그리운 나라, 박정희>애국과 이적

국가정체성 부정하는 이석기는 국적을 버려라

덕적도에서

지금의 국정원이 아니고 안기부도 건너서 중앙정보부 시절 이야기다.

중앙정보부 인천분실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얻어맞다가 열려 있는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쫓아오는 중정 요원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걸음아 나 살려라 냅다 달아나는데 돌연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그 경황에 국기게양대를 쳐다본 도망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오후 5시 국기하강식 그 시각에 딱 걸려 도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는 술회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이 1970년 덕적도에서였다. 그때 나는 군에서 막 제대를 해서 직장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그와의 만남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직장 복귀 발령 날짜를 받아놓고 얼마간의 말미가 있어 섬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간 곳이 덕적도.

육지로부터의 소외는 그립고 그리웠던 평안이고 행복이다. 방파제에 그들먹하게 차오르는 바닷물의 찰랑거림을 보고 있노라니 뒤에서 “간첩 아니슈?”하고 다가와 스스럼없이 어울려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섬사람들은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낯가림이 없다.

“여기선 내가 대통령이오.”

엄지손가락을 가슴에 꼬나박으며 큰소리치는 그는 50대 후반, 그곳의 이장님이었다.

걸걸하고 수더분한 이장님이 좋은 술상이 있다면서 방랑객을 데려간 곳이 방파제 끝머리였다. 바닷물이 남정네를 유혹하는 여인의 옷자락처럼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내는 방파제 끝에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놓여 있다. 거기에 꽃게 다리찜 안주와 소주를 올려놓으니 기막힌 술상이었다.

방파제에서 마시는 술은 무한정이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좀 얼굴이 불콰해지려면 바닷바람이 훑고 지나가 취기를 지워버리는 통에 알콜 기운이 제대로 스며들 겨를이 없다. 방파제에선 주신(酒神)이 친구처럼 만만하다. 황혼이 방파제의 너럭바위를 물들여 황진이 치마폭 뺨치게 아름다울 무렵, 이장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젊은이 인천 산다니까 혹시 ‘인하공사’라고 아는가?”

“예, 간석오거리 지나서 부평 넘어가는 길에….”

‘인하공사’로 일컬어지는 중앙정보부 인천분실을 대충 아는 대로 이야기하려니 이장님이 무릎을 탁 치며 “맞아, 거기야!”하며 말문을 열었다.

60년대 말 덕적도 어부들이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중에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일이 있다. 경찰과 정보당국에선 그들이 북에서 세뇌공작을 받고 돌아왔을 것이므로 새로운 안보교육을 시켜 귀가토록 했다.

그랬다.

“해주로 끌고 가더니 연백, 평양, 진남포, 신의주, 함흥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지겹도록 선전을 늘어놓더군.”

‘사상 교양’을 받았다고 했다.

당국에선 귀가하는 어부들에게 북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귀가 후 동태를 감시하는 눈초리도 으슬으슬했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이 돌아다니는 것을 단속하기란 어려운 법. 들어보면 별것도 아닌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아다녀 정보당국이 그것을 알게 되고, 이장님이 걸려들어 인천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던 것이었다.

60년대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잡이하는 어선들. 조업중에 납북되는 일이 잦아 어부들의 고초가 심했으며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돼버린 어부들의 사연은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다. ⓒ 국가기록원 60년대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잡이하는 어선들. 조업중에 납북되는 일이 잦아 어부들의 고초가 심했으며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돼버린 어부들의 사연은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다. ⓒ 국가기록원

중앙정보부 인천분실.

“똑바로 불어!”

주먹과 발길이 날아왔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늙은이를 패네.”

수사관에게 몇마디 대들어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열려진 창문으로 몸을 날려 도망을 친 것이다. 수사관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 정문을 나갈 수가 없으니 뛰어봐야 벼룩인데, 어쨌든 수사관도 창문으로 나와 도망자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때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국기하강식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도망치던 걸음을 멈추고 국기게양대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뒤따라오던 수사관도 국기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고 있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가 끝나고 사무실로 잡혀들어갔다.

도망치다 잡혔으니 아이고 죽었구나 했다.

수사관이 진술서를 훑어보고 이쪽 얼굴을 보더니 사무실 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창문으로 나가지 마세요. 사무실 문은 이쪽입니다.”

그렇게 그는 풀려났다.

“핫핫핫, 껄껄껄.”

이장님과 방랑객은 마주 보고 실컷 웃었다. 배꼽을 잡고 몸을 움츠렸길래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방랑객이 바다로 풍덩할 뻔할 만큼 몸가누기가 어려웠다.

“애국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지….”

이장님은 술잔을 쪽쪽 소리가 나게 비우며 말했다.

“옳소. 각하(박 대통령)가 자꾸 가르치려고 해서 탈이죠.”

그렇게 불만스레 어깃장을 놓고 잠시 심심해져 시선을 두리번거리니 마을 꼬마들이 뭐 얻어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게에서 술 좀 가져와라.”

“몇개요?”

“가져올 수 있는 만큼 가져와.”

섬에선 내 자식 남 자식 가림 없이 아무나 붙잡고 심부름을 시켜도 말을 잘 듣는다.

택배비를 두둑히 주니 꼬마들 눈이 휘둥그래진다. 용돈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어 고구마밭이나 뒤지던 아이들은 한여름에 어디서 산타클로스가 굴러들어왔다 싶은 모양이었다.

가게에 갔던 아이들이 공짜로 주는 꽃게 다리찜을 한 양푼 가득히 가져왔다.

공짜 꽃게 다리찜 사연은 이랬다.

꽃게잡이 어선이 들어오면 어부들이 그물을 내어놓는다. 그물에 걸린 꽃게 다리를 터는 일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란다. 그물을 널어놓으면 주민들이 와서 꽃게 다리를 일일이 떼어내 함지박에 수북히 담아 가지고 간다. 어부들 일손을 덜어주면서 꽃게 다리를 공짜로 얻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의 작업이다. 그곳에선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병만 사도 짭짜롬하게 잘 익은 꽃게 다리찜을 공짜로 막 준다. 그때 그 시절은 그랬다.

환한 달빛에 젖어 낄낄거리며 마시다 보니 아침해가 이장님 뒤통수에 와서 걸렸다. 서해안에 뜨는 해는 들물썰물과 가락이 잘 맞는다. 새벽 해돋이를 감상할 새도 없이 아침해가 이마에 와서 들러붙는다.

밤새워 주신(酒神)을 벗하고 아침해와 헤딩하던 덕적도―.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국정원

켜켜이 수북한 내 지난날의 발자국 중에서 덕적도 자취를 떠올리게 된 것은 사사건건 왈가왈부 소리도 무성한 요즘 시국에 특히 거품처럼 부글거리는 국정원에 대한 논란 때문이고, 또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는 이석기라는 기괴한 인간상에 대한 반사작용이기도 하다.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만큼 팔자도 기박한 국정원이다.

어지간히도 혼란스럽게 정국이 요동치던 때에 시국 현안과 무관하게, 나는 어쩌면 정의감 없이 비겁하게 보일 만큼 내 자신의 일상에만 몰두했음에도 전두환 신군부가 막 등장한 1980년 6월 어처구니없이 걸려들어 남산에 끌려가 꼬박 열흘 동안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경기도 모 지역의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어 그에게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얘기를 들었다. 청와대에 북한 동향 보고를 올렸다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대통령에게 지청구를 먹었다고 했다. 박정희 정부의 “하면 된다” 캐치프레이즈를 패러디하듯 김대중 정부에 와서 “퍼주면 된다”고 북쪽에다 선심을 퍼붓는지라 대공 요원들이 하루종일 신문이나 보면서 빈둥빈둥 지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된 NLL 문제에 관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보니 그 시절의 대공분야 업무도 한심했으리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화록에 ‘포기’라는 말이 없으니 NLL 포기가 아니라고 강변하던데, 아니 자살하는 사람이 남긴 유서에 ‘나 자살하노라’는 말이 없다고 타살을 주장하는 격이니 얼마나 우스꽝스런 노릇인가.

내가 보기에 이 국정원은 역대 정권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주무를 대로 주물러 왔다.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 댓글이나 쓰는 요 모양 요꼴로 만든 것도 다 지난날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요, 따지고 보면 집권당에 몸담았던 권력 실세들의 허물이거늘,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현 정권의 일방 책임으로 몰아붙이면서 국정원을 윽박지르고 있다.

진정 바람직하기는 국정원이 다시는 권력에 휘둘려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의 키워드는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오롯한 ‘애국’이다.

내 지난날의 덕적도 이장님, 중앙정보부 인천분실에서 깜냥없이 도망치다가 애국가와 태극기 앞에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던 그 덕적도 이장님을 더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돌려보낸 중정 직원의 판단과 그 판단을 가져온 애국의 신념이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만 하지 않겠는가.

목하 글로벌 정보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날 그야말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매불망 잘살아 보자는 간절한 소원 하나로 땀 흘리고 눈물 쏟아가며 만들어내 이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는 대한민국이다. 국가 위상에 걸맞게, 또 통일시대에 대비해 음지에서 묵묵히 활약해온 국정원의 핵심인 전문 정보인력을 더욱 키워서 국정원이 최고급 정보의 총본산으로 격상되어야 하겠다. 그것이 국정원의 제대로 가는 길이다.

노골적으로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며 종북 좌파의 한 축으로 등장한 이석기. TV 방송 화면 캡처. 노골적으로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며 종북 좌파의 한 축으로 등장한 이석기. TV 방송 화면 캡처.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들은 국적을 버려야

그런데 국정원을 해체하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이 있다.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이석기 부류들이다. 이석기 사건은 굳이 여기서 재탕할 필요가 없으니 생략하고, 문제는 그들의 모순과 궤변이다.

명백히 평양 쪽을 우러르는 종북(從北)의 부류가 민주인사로 자칭하면서 민주주의를 탄압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변해버린 이 세상에 케케묵은 공산 독재의 허울을 여전히 덮어쓰고 있는 저 음산한 북한 권력을 추종하면서 민주주의를 외쳐대고 이판사판 온갖 악다구니를 퍼부어대는 그 모순과 궤변 덩어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노라면 그것이 모두 국가정체성의 부정에서 나오고 있음이 아주 간명하게 파악이 된다.

가난테미들이 도처에 널브러져 허우적거리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을 수습, 해결할 능력도 없이 국제적 고립 상태의 시들어꼬부라진 북한 독재 권력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러면서 버젓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행세하는 그 화상들에는 저 포항의 포스코 강판이 무색하리만치 철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게다가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 국회의사당 고급 양탄자를 밟아보니 제 깜냥 기세도 이만저만이 아니요, 그래서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이른 모양이다.

그런 이석기 부류를 보면서 작가 최정희 선생이 예전에 신문에 쓴 글이 생각났다.

최 선생의 지인(知人)이 외국인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인지 옆방에서인지 애국가가 들려오자 그 외국인이 즉각 포크와 나이프를, 그리고 앞에 둘렀던 내프킨마저 조용히 식탁 위에 얹어놓곤 참으로 경건하게 일어서더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지인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라고 했다.

외국인도 남의 나라 국가에 경의를 표하는데,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그것도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으면서 설쳐대는 이석기라는 위인(爲人)이 TV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 판국이다.

TV를 보는 사람들의 울화통 터지는 소리도 귀가 따갑다.

“나 세금 내기 싫어. 왜 내가 저 도둑놈들을 먹여 살려야 해.”

“북한이 좋으면 거기 가서 살지 왜 여기서 지랄하는 거야.”

“에이, 저런 놈들도 말로만 떠들지 거기서는 못살아.”

“판문점에 데려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 너머로 확 밀어버려야 해.”

“고무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내면 딱 좋겠구먼.”

이석기 부류에게 그래도 일말의 인간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기 소신을 목숨으로 지키고 싶다면 스스로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는 것이 당당해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저 옛날의 지리산 빨치산과 달리 아주 비겁하고 옹졸한 이념의 잔풀내기로밖에 볼 수가 없다.

이석기 부류가 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전에 북한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전향해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 TV에서 북한문제 전문가로 해설을 했던 이 모씨의 책을 써준 일이 있다. 그에게서 들은 바로는 이쪽의 좌파들은 유사시에 남한을 뒤집어 엎는 데 써먹을 지원세력일 뿐, 그들이 북쪽에 오는 건 달갑지 않다는 것이었다.

남한을 뒤집어 엎는 것도 예전에 글러버린데다 어차피 이쪽의 좌파 불만세력은 북쪽 체제의 암울함에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기껏 충성 나발이나 열심히 불어대는 것 외엔 말조심 몸조심으로 옥죄어 살아가려니 숨 막혀 당장 까부러지고 말 것 같은지라 그동안 남쪽에서 사방팔방 쏘다니며 막말 쏟아내고 오도방정을 떨어도 끄덕없던 자유천지의 근성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종파분자’가 될 것이며 수용소 감이라는 것이다.

이석기 부류에겐 행선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향할 갈 곳이 없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선 감옥에 가든 어디 음습한 곳에 처박혀 목숨을 부지하든 그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환상(幻像)일 뿐, 지난날 해방공간에서 붉은 완장 차고 날뛰던 광인(狂人)들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어, 덕적도부터 이석기까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느라 내가 좀 지쳤다.

소주 한잔 마시고 기운 차려야겠다.

글/김인만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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