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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증은 클래스’ 비기고도 웃은 홍명보호


입력 2013.07.25 11:12 수정 2013.07.25 11:1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홍명보 감독, 중국전 선발멤버 9명 교체 실험

대표팀 1진 나선 중국 압도..비겼지만 공한증 여전

무득점에 그쳤지만, 경기 내용 면에선 한국이 중국을 압도했다. ⓒ 연합뉴스 무득점에 그쳤지만, 경기 내용 면에선 한국이 중국을 압도했다. ⓒ 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이 축구로 연관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표현이 바로 공한증(恐韓症)이다.

어느덧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은 중국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종목이 바로 축구다. 특히 공한증은 대륙의 자존심을 흔드는 불편한 징크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은 1978년 12월 17일 태국 아시안게임에서 차범근 SBS 해설위원의 결승골로 1-0 신승을 거둔 이후 2010년까지 32년간 16승 11무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자연히 공한증이라는 중국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단어가 탄생했다.

공한증이 처음으로 무너진 것은 2010년 2월 10일, 바로 일본에서 열린 지난 동아시안컵에서였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중국에 0-3으로 완패했다. 당시 월드컵 본선을 4개월 앞둔 상황에서 한국은 결과보다 실험에 더 치중했던 측면이 있었지만, 치욕적인 패배에 전후사정은 모두 묻혀버렸다. 중국은 드디어 공한증의 악몽을 털어냈다며 들썩거렸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만에 양 팀이 같은 대회에서 다시 재회했다. 팬들의 관심은 자연히 3년 전의 복수전 여부에 쏠렸다. 더 긴장한 쪽은 중국이었다. 공한증은 이미 옛날이야기라며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지만 예민함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중국 언론은 한국 대표팀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와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으며 도발에 나섰다. 중국의 과잉반응은 그만큼 한국과의 경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경기를 앞두고 양 팀의 선발라인업이 밝혀지면서 뜻밖의 반전이 벌어졌다. 홍명보 감독이 중국전에서 선발멤버 9명을 바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과에 대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선수발굴과 실험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겠다는 의도였다. 그것은 한편으로 중국전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물론 홍명보호는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지지도 않았다. 대신 A매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 그것도 4일 만에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을 꾸렸음에도 대표팀 1진이 정상적으로 출전한 중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중국은 후반 중반까지 제대로 된 슈팅 하나 변변히 날리지 못하며 수비에만 급급했다. 마음이 급해진 중국 선수들은 경기 후반 특유의 거친 소림축구로 도발을 하기도 했지만, 홍명보호의 사기를 꺾지는 못했다. 경기는 비겼어도 더 웃은 쪽은 분명히 한국이었다.

생각해보면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양국의 축구 위상은 달라진 게 없다. 그때도 지금도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중국은 탈락했다. 3년 전의 단 한 번의 패배가 양국의 축구 역사와 지형도를 바꾸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국은 여전히 축구에 관한 아시아의 2류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평가전마저 졸전을 거듭하며 카마초 감독이 경질되고, 임시대행체제로 동아시안컵에 나서는 촌극을 빚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실험적인 라인업을 꾸린 한국, 일본, 호주에 비해 거의 유일하게 베스트멤버들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며 동아시안컵 성적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지만 결과는 아직 신통치 않다.

반면 홍명보호에게 동아시안컵이나 중국전은 월드컵이라는 더 큰 무대를 향한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한국축구에게 중국과의 승부에 연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양국의 클래스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공한증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 사라지는 것도 다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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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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