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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전 박정희가 썼던 검은 안경의 행방은...


입력 2013.05.16 11:14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5.16 전야 학교 숙제하던 초등생 소녀가 대통령이 됐는데

5.16 후 첫 외국방문길에 오르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이케다(池田) 일본 수상의 초청을 받고 미국, 일본을 방문하게 된 박 의장이 1961년 11월 11일 김포공항에서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 정부기록사진집 5.16 후 첫 외국방문길에 오르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이케다(池田) 일본 수상의 초청을 받고 미국, 일본을 방문하게 된 박 의장이 1961년 11월 11일 김포공항에서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 정부기록사진집

다시 5.16이다. 1961년 그날 군사혁명으로 역사 반전(反轉)의 획을 내리찍은지 52년 세월이 격렬히 요동치며 흘렀다.

5월 15일 밤 박정희 소장이 혁명군을 지휘하러 나설 때, 홀로 학교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생 소녀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집권이 현대사에 던지는 빛과 그림자의 한복판을 지나 제18대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서 있다.

부녀 대통령이라는 현대사의 새로운 기록을, 오늘의 박근혜 대통령을 부모는 상상이나 했을까.

일찍이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자녀들의 장래 소망에 대해 “차분하고 꾸준한 성격인 근혜는 책을 많이 보는 만큼 장차 학계나 문화계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근영이는 예능 소질이 있어 그 방면에서 가능성을 찾도록 하겠다. 지만이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대통령 남편의 늘 노심초사하고 격무에 지친 모습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에다, 가족이 정치 기류에 함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아들 지만에게 정치 쪽은 가지 말기를 바란 것인데 하물며 딸 근혜임에랴.

우리가 아는 박근혜는 아버지마저 비극적으로 잃으면서 평범한 자연인로서의 인생사를 통한(痛恨) 속에 묻어야 했다. 아버지가 가고 없는 세상에 아버지 시대의 과거사에 하이에나처럼 들러붙어 물어뜯는 정치권력의 공세를 맞으면서 “아버지가 매도당하는 세상에서 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며 개인의 삶을 접고 부모의 기념사업을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로 국가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하여 정치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돌아보면,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는 우리 현대사가 그를 만들었고, 이제 그가 현대사를 다시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5.16의 그해 피아노 앞에 선 초등생 근혜양 모습.(사진 좌) 1961년 12월 3일 동생 근영이 피아노 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좌)52년 후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4박6일간의 미국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올라 손을 들어 출발 인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5.16의 그해 피아노 앞에 선 초등생 근혜양 모습.(사진 좌) 1961년 12월 3일 동생 근영이 피아노 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좌)52년 후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4박6일간의 미국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올라 손을 들어 출발 인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윤창중 스캔들…강대국엔 ‘나라 망신’이라는 게 없더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외교로 미국을 다녀왔다. 52년 전 아버지 혁명정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첫 해외 방문도 미국이었다.

우리 언론은 부녀 대통령의 외교 방문을 비교해 그사이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공감케 되는 보도를 많이 냈다.

박정희 의장은 국가재건에 필요한 원조의 증액을 요청하러 갔었으나 5.16 혁명정부 지도자의 미국 방문이라는 외교적 수사(修辭)만 요란했을 뿐 손에 쥔 것 없이 돌아와야 했다. 52년 후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도중에 터진 윤창중 스캔들이 외교성과를 다 말아먹은 듯 목하 야단법석이 요란하고 이 스캔들 메이커는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한 일대 소동이 남자라는 동물 근성으론 그러려니 해 가벼이 벌주고 말겠건만 요는 대통령 수행원으로 ‘때와 장소를 못가린 죄’가 크며,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이 남의 나라에 부끄럽게 어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을 때 ‘나라 망신’이라는 말을 자주 써왔다. ‘나라 망신’ ‘집안 망신’은 일종의 사회통념으로, ‘남부끄럼’의 뿌리깊은 문화현상으로 끈질기게 내려오고 있다.

예컨대 오늘의 중장년층은 옛날 코흘리개 시절 남루한 옷차림의 부모가 학교에 오는 것을 싫어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남부끄럼’의 대부분은 가난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열등감의 응어리가 뼈마디를 쑤셔대는 아픔,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가난을 벗어던진 오늘의 대한민국에 ‘한강의 기적’이 도도히 흐르건만 그러나 이를 5천년 가난의 장강(長江)에 비할 것인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뀐 모습으로 요즘 TV에 우리 대중연예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어려운 나라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결실의 현장 앞에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짓는, 특히 가난을 모를 것 같은 우리 젊은 여성들의 눈물을 보노라면 거기에도 어쪌 수 없는 우리 한국인의 정한(情恨)의 DNA가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코 크고 파란 눈에 흰 피부를 가진, 눈물이 옛날 고리짝에 메말라 버린 듯 멀뚱멀뚱한 서구인들과 우리는 딴판이다.

강대국엔 나라 망신이라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세상천지 다 알고 있는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성스캔들에 미국이 관대한 이유는 뭘까. 뿐만 아니라 우리 같으면 연좌제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도록 상처를 받았을 그 부인 힐러리가 국무장관까지 지낼 수 있는 그 배경의 미국인들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민주주의가 체질화된 오랜 전통과 달리 도덕불감증에 가까운 그 뻔뻔그러움, 당당함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강대국의 ‘힘’으로 보인다. 우리 같으면 정권이 박살날 것 같은 나라 망신도 그들은 그것을 국가의 자존심 속에 묻어버리는데 무언(無言)의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여론도 그러하고 언론도 이를 쑤셔대지 않고 흘려버린다. 미국의 구성원 어느 누구도, 대통령도 예외없이 미국의 자존심에 먹칠을 할 수 없다는 공감대로 옹골차게 뭉친 그 힘이 꿈틀거림을 보게 된다.

우리는 딴판이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든 말든 우리끼리 치고박는 집안싸움의 분열, 제살 깎아먹기 한국병(韓國病)이라는 골병이 도져, 지금 윤창중은 재기 불능이다 싶게 ‘인격 사망’이라는 ‘극형’을 받고 있는데…그건 그렇다 쳐도 그의 죄없는 가족은 어쩌라고!

멀리 볼 때 대통령의 정치외교는 ‘역사’요, 윤창중 스캔들은 ‘역사의 바다’에 잠깐 생겨났다 사라지는 ‘일과성 풍랑’일 뿐이다.

박정희, 검은 안경 쓰고 케네디 만났다고?

그래도 우리의 ‘남 부끄럼’ 문화는 변함없이 박정희, 박근혜 부녀 대통령 사이 시공(時空)을 관통해 오고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언론 보도에서 보았듯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분단국의 북한 문제요, 달라진 것은 미국 원조에 기대어 살던 옛적의 대한민국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박정희 의장의 미국 방문이 6.25 종전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래 딱 두번째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국제무대에서 소외돼 있던 극동의 한구석 최빈국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상상이 홍수로 흘러넘칠 지경이다. 가난이 서럽고 남부끄러워 차라리 ‘죄’라 했고, 그 열등감은 벗고 싶어 몸부림쳐도 도저히 벗을 수 없는 멍에 같은 것이었다.

미국을 찾아간 박정희 의장의 심정이 오죽했을 것인가.

그런데 그때 박 의장을 얘기하면서 으레 그 모습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이 선글라스로 불리는 안경이다.

(좌)레이밴이라 불리는 검은 안경. 5.16혁명 직후인 1961년 5월 1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혁명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소장 모습이다. ⓒ 자료사진 (우)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안경. 1961년 11월 13일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할 때의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좌)레이밴이라 불리는 검은 안경. 5.16혁명 직후인 1961년 5월 1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혁명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소장 모습이다. ⓒ 자료사진 (우)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안경. 1961년 11월 13일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할 때의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며칠전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최근 언론 보도의 불만스런 부분을 지적했다. 선글라스 색깔이 검정색부터 엷은색까지 여러 가지이겠으나 당시 박 의장의 안경을 검정색이라고 단정해버린 기사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사실을 주의깊게 살피지 못한 오류라는 것이었다.

당시 박 의장은 눈동자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엷은색 안경을 끼고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기로 박 대통령은 5.16 당시와 그후 몇차례 속칭 ‘라이방’으로 불리던 레이밴을 썼지만 그후로는 줄곧 엷은색 안경을 썼다. 외국방문을 하는 국가원수가 시각장애인도 아닌 멀쩡한 눈을 검은 안경으로 가리고 그 나라의 국립묘지를 참배한다면 어떻게 볼 것인가. 검은 안경으로 상대방의 시선을 차단하고 정상회담을 한다면 과연 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아 넘길 수 있을까. 만약 검은 안경을 썼다면 미국 같은 나라의 격식 관례에, 더구나 백악관 의전실에서 이런 무례나 결례를 그냥 두고 볼 것인가. 박 대통령은 예의를 중시하고 또 엄격한 규율을 생명으로 하는 군인 출신이다. 때와 장소, 경우에 따라 절도있는 행동이 몸에 밴 분이다.”

그러면서 검은 안경을 썼노라는 언론 보도를 그저 사소한 부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자칫 역사 오류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5.16의 그날, 정확히 말하면 5월 18일 서울시청 앞에 공개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 소장의 검은 안경(레이밴)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필자 이 김인만이도 지난날 졸고(拙稿)에 케네디를 만나는 박 의장이 검정 선글라스를 썼다고 무책임하게 묘사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안경의 검은색과 엷은색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김두영 전 비서관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역사 인물 박정희에게 검은 안경을 씌워 모욕을 가하고 역사 왜곡으로 끌고가는 기록들이 있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박정희 의장이 케네디를 만나는 모습이다.

-박정희는 주한미군들이 애용하는 레이밴이라는 금색 도금 테두리의 짙은 색안경을 끼고, 빳빳한 등받이 의자에 앉았어. 가끔 다리를 반듯이 모으기도 하고 꼬기도 하고 그러더군. 마치 군주 앞에 불려나온 신하처럼 긴장했어. 난 그런 자세로 미국 군인들이 끼는 흔한 안경에다 짙은 검은색 렌즈로 자기 눈과 얼굴을 가린 박정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박정희의 짙은 안경은 자기 열등의식의 표시이고, 강자 앞에 서게 된 약자의 정신적, 심리적 동요를 감추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아. (리영희 회고록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는 당시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수행 기자단의 일원이었다.

문명자라는 여기자는 이렇게 썼다.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모습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바지선도 세우지 않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마치 서울에 처음 올라온 촌사람처럼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

주미 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내가 말했다.

“색안경을 끼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난 것은 큰 실례인데요. 자신감이 없어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강자 앞에 선 약자의 비굴함, 열등감을 감춘 검은 안경, 외교관례를 모르는 검은 안경의 남부끄럼, 망신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회고록은 박정희 시대가 한참 지나 나온 것들이다.

박 의장의 미국 방문 당시 언론 보도는 워싱턴 공항 현장의 모습을 “약간 색깔이 든 안경에 검은 모자, 검은 타이에 검은 구두를 신고 회색 코트를 입은 박 의장은 존슨 부통령과 공항에서 자동차를 탈 때 다시 한번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고 쓰고 있다. (1961-11-15 동아일보)

워싱턴에 함께 있었던 기자 리영희의 ‘짙은 색안경’, 문명자의 ‘검은색 선글라스’ 현장 묘사는 악감정을 처바른 픽션에 다름 아니다.

1961년 11월 13일 박정희 의장이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환담하고 있다. 당시 취재기자 리영희, 문명자는 후일 회고록에서 “박정희가 약자의 열등의식을 감추려고 레이밴이라는 짙은 색안경을 끼고 군주 앞에 불려나온 신하처럼 긴장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나는 큰 실례를 했다”는 등 팩트를 왜곡, 악의적인 표현을 했다. ⓒ 국가기록원 1961년 11월 13일 박정희 의장이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환담하고 있다. 당시 취재기자 리영희, 문명자는 후일 회고록에서 “박정희가 약자의 열등의식을 감추려고 레이밴이라는 짙은 색안경을 끼고 군주 앞에 불려나온 신하처럼 긴장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나는 큰 실례를 했다”는 등 팩트를 왜곡, 악의적인 표현을 했다. ⓒ 국가기록원

>검은 안경, 행방이 궁금하다

5.16 때의 검은 안경은 혁명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었지만, 대통령으로 국가경영을 지휘하면서 가끔 엷은색 안경을 쓰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실내에서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상대방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나타나는 표정을 가리기 위해 썼다”고들 하는데, 김두영 전 비서관은 시력 보호가 주목적이라고 했다.

“그분은 집중력이 강해 시력의 피로가 매우 심했다. 사물을 그냥 흘려보지 않고 항상 주시했으며 집무실의 온갖 국정 현황 도표와 보고서, 각종 문서 속에 묻혀 지냈고 지방출장에서는 현장을 샅샅이 파악하고 지시를 한다. 그러다 보니 눈에 충혈이 나타나곤 해서 얼마만큼이라도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엷은색 안경을 썼다.”

그러면서 혁명정부 시절 여류작가 최정희 씨가 박 의장에게 선글라스를 쓰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눈이 충혈돼서 쓴다고 말했다고 쓴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좀더 확실한 근거를 알고 싶어 미국 방문 당시의 기사를 살펴보다가 필자는 “오, 정말!”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와이 호놀룰루를 마지막으로 경유해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은 박 의장을 수행 기자가 가까이 본 모습이다.

-먼동이 틀 무렵 박 의장은 서울서부터 마지막까지 혼자 수행해온 본 기자(정연권)를 그의 옆자리로 반갑게 맞이한다. 안경을 벗는데 눈이 좀 충혈되고 있다. 그는 눈언저리를 가리키며 좀 부었다고 말한다. (1961-11-26 동아일보)

이 간단한 기사 대목이 박정희 안경에 대한 궁금증을 명쾌히 풀어주는 게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 있다. 검은 안경의 행방이다. 5.16 때의 그 검은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검은 안경은 지금 가족에게도 없고, 행방을 모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소지품이나 양복, 넥타이, 구두 같은 것들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꽤 많이 나눠주었다.

김두영 전 비서관은 양복과 가죽 점퍼, 스웨터, 구두 두 켤레를 받았고, 넥타이는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받은 가죽 점퍼와 구두 한 켤레는 지금 상암동 박대통령기념도서관에 유품으로 전시돼 있다.

그런데 대체 검은 안경은 어찌된 것일까.

박 대통령의 휘호 한 점이 경매장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고, 필자가 알기로 국가기록원에 원본이 소장돼 있는 박 대통령 사진 사본도 그것을 희귀하게 보아 경매 인기가 높다.

“5.16 때의 진품으로 보증된 검은 안경이 나온다면?”

“값이 없다.”

김두영 전 비서관은 말한다.

“부르는 게 값이겠지?”

“아니다. 역사 유물은 값을 매기지 않는 법이다.”

검은 안경, 어디로 갔는가.

52년 전 검은 안경을 쓴 아버지가 집을 나설 때 숙제하고 있던 초등생 소녀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세월이 그토록 무상한 것일까. 격동의 세월에 묻혀 망실된 것일까.

검은 안경의 행방, 그것이 알고 싶다.

글/김인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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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http://www.516.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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