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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리 건방떨다 박 대통령에게 혼쭐나다


입력 2013.04.28 15:02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그린 국무부 부차관보 다리 꼬고 담배피우다

박정희 혼쭐에 자세 고쳐…당시 통역 회고 "국가원수란 무서운 자리"

얼마 전 청와대를 예방한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의 ‘한손 악수’가 언론의 표적이 됐었다. 미국의 생활습관과 한국의 예의범절 차이로 빚어진 화제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빌 게이츠는 안온 것만 못하게 본전도 못건진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래리 페이지 구글 회장이 청와대를 예방해 박근혜 대통령과 ‘두손 악수’를 해 “빌 게이츠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의 우리는 외국의 고자세나 시건방진 꼴을 무덤덤 받아주던 예전의 대한민국 구성원이 아니다.

경제와 국방을 미국에 많이 의존하던 예전에는 그 의존하는 만큼 미국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미 관리들이나 의회 의원들도 한국에 오면 당국자를 제치고 청와대로 직행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그들의 고자세와 무례한 언행에 자존심 상하는 일 또한 적지 않았다.

따라서 꽤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진해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미 의회 의원 10여명이 서울에 와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휴가 중인 대통령을 만나자는 것인데, 거꾸로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워싱턴에 가서 백악관을 떠나 별장에서 휴가 중인 미 대통령을 면담하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일례로 5.16 이듬해인 1962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김 부장을 소파에 앉게 하고 자신은 집무책상 위에 다리를 얹어놓고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 내려다보더라고 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상원의원 시절 청와대에 와서도 무례한 태도를 보여 박 대통령이 사석에서 “귀때기에 피도 안 마른 새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1968년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이 일어나 그 대응방법을 놓고 한미관계가 뒤틀어졌을 때 사이런스 밴스 특사가 서울에 왔었다. 그가 온 날이 2월 11일 일요일이었다. 그들은 일요일인 그날 당장 대통령을 면담하겠다는 것이고, 최규하 외무장관은 이를 거절했다. 박 대통령은 그날 청와대 경호실 지하 사격장에서 육영수 여사와 함께 사격연습을 하고 월요일에 그들을 만났다.

앞의 미 의회 의원들이 휴가 중인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이 괘씸하고 아니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모른체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추진되고 미국과 중공이 수교를 하는 등 내외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국가 안위가 크게 걱정되던 때였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들을 진해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들은 데탕트라고 하여 코끼리 두 마리가 좋아져서 서로 몸을 비비고 있는 격인데, 그러는 사이에 잔디가 밟혀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이 바로 그런 잔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시 청와대 김두영 비서관의 증언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국가안보에 관해 ‘고슴도치 이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려면 고슴도치처럼 단단하게 무장을 하여 힘세다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종 국산 병기와 국산 미사일 ‘백곰’을 개발하고 은밀히 핵개발을 추진했던 일련의 자주국방 노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단단히 혼쭐이 난 마샬 그린(우). 1965년 5월 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서 그를 접견한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에게 단단히 혼쭐이 난 마샬 그린(우). 1965년 5월 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서 그를 접견한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을 아는 사람들은 소탈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내외 예방객을 접견하면 담배를 권하며 격의없이 대화하는 일이 잦을 만큼 소탈한 반면, 돈 좀 있고 힘깨나 쓰는 위치에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건방떠는 꼴은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2003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발간한 '미국 기업과 한국의 기적'(American Business and the Korean miracle) 책자에 박 대통령을 면담한 한 미국 기업인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잠시 화장실이 급해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나에게 외쳤다. ‘자리에 앉아서 들어(Sit down and listen to me)’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박 대통령은 어떻게 대통령이 얘기하는데 감히 자리를 뜰 수 있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기업인이 이렇게 회고하더라는 것.

그것도 그렇겠지만, 대통령을 만나려고 오면서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이 없었던 것, 다시 말해 길을 가다가 아무데서나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심한 자세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하는 노기가 발동해 호통친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박 대통령에게 가장 혼쭐이 난 미국인은 5.16 때 주한 미 대리대사였고 미 국무성 극동담당으로 뻔질나게 한국을 방문했던 마샬 그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미 국무성 극동담당 부차관보 직책을 걸친 마샬 그린이 청와대에 와서 대통령 앞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거만하게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 버르장머리에 비위가 상하기도 했지만, 그가 청와대에 오기 전에 야당 총재 윤보선 씨를 먼저 만나 박 대통령의 방미 초청을 취소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하는 윤보선 씨, 반미 데모가 아니고 박 정권에 압력을 가해 달라고 데모하는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그같은 사대주의 근성을 거의 저주에 가깝도록 경멸했다.

박 대통령은 통역 비서관에게 “이 자에게 내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빼지 말고 그대로 통역토록 하시오”라고 말하고는 불을 뿜은 눈으로 마샬 그린을 바위가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통역 비서관이었던 박상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회고록'나와 제3, 4공화국'에서 당시 마샬 그린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 손님은 대통령의 말씀이 몇 마디 진행되자 겹친 무릎을 풀고 자세가 장군 앞에 선 병졸 모양으로 초긴장되면서, 교장선생에게 꾸중 듣는 학생 모양으로 담배는커녕 손끝까지 떨리는 듯하였다. 그리곤 정확한 발음으로, ‘예-써 엑설런시(Yes, Sir Excellency)’ 소리만 연거푸 하다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정신없이 나갔다. 나는 이때 크든 작든 한 나라의 국가원수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하고 느꼈고, 한 독립국가의 주권에 대하여 뼈로부터 우러나오는 긍지를 통감하였다.”

박 대통령은 아니꼽고 치사해도 참아야 하는 현실에 부닥칠 때마다 “힘 있어야 큰나라 간섭 안받는다”고 절치부심의 심정을 토로하면서 공직자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해가 떠도 국력, 달이 떠도 국력, 오로지 국력신장의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박 대통령에게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한 인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은 그에게 “미국이 우리한테 군사원조를 해주는 것 같지만 원조액의 몇 배나 되는 무기를 우리가 사주어야 한다”고 실정을 토로하면서 미국의 정책을 비난했다.

노심초사하는 대통령 모습을 본 그는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뒤 가슴이 쓰라렸다. 미국으로부터 소외당하고 포위당한 대통령의 고독감, 고립감, 그리고 쌓인 한이 나에게도 전염되어오는 듯했다”면서 이 면담 뒤로는, 적어도 인간적인 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미워할 수가 없게 되더라고 했다.

글/김인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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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http://www.516.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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