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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말레이시아를 따라잡으려면 150년?


입력 2012.09.10 11:33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박대통령 순방때 말레이시아 총리 만나주려 하지 않아

반세기후 마하티르 "박대통령은 한국의 진정한 국부" 한국을 롤 모델로

21세기는 아시아 시대. 그 주역이 중국인가, 한국인가, 일본인가를 놓고 미래를 점치는 가운데 세계 17위의 무역대국으로 떠오른 나라가 있다. 말레이시아.

22년간 집권하면서 말레이시아를 그렇게 만든 전 총리 마하티르의 자서전이 최근 국내 번역본으로 출간돼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어제 오늘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지음|정호재ㆍ김은정 외 옮김)

이 책은 말레이시아의 성장과정에서 한국과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은 것이 특징.

첫째 마하티르가 영국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평민 출신으로 처음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오른 것.

둘째는 말레이시아인들이 늘 선진국에 주눅이 들어 “우리는 안돼”라며 지레 좌절하고, 무능하고 나태하다는 고정관념 속에 빠져 있었다는 것.

이런 국민을 깨우쳐 후진 농업국이던 말레이시아를 잘사는 무역대국으로 만들기까지의 이야기가 책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성장 시대와, 집권 후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력을 연상케 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마하티르는 자존심 강한 민족주의자로 장기집권을 했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박 대통령이 70년대에 단 한차례도 외국에 나가지 않은 이유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2월 동남아 순방의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었다. 당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필리핀에도 가려고 했지만 마르코스가 몇가지 이유로 불가하다는 통보를 해왔고, 말레이시아는 “오겠다니 만나주기는 하겠지만 양국 사이에 특별 의제는 없다”고 냉담한 반응이었다. 후진국 대한민국의 처지가 그러했다.

1966년 2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공항으로 영접나온 말레이시아 인사와 악수하는 모습. ⓒ 국가기록원 1966년 2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공항으로 영접나온 말레이시아 인사와 악수하는 모습. ⓒ 국가기록원

당시만 해도 말레이시아 역시 일본 다음으로 잘산다고 할 만큼 부유한 나라였다.

그때 동남아 순방 수행기자의 한 사람인 김종신은 저서 〈영시의 횃불〉에서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차이를 이렇게 썼다.

말레이시아는 1차산업의 수출액만도 20억불이 넘는다. 65년도 한국의 총수출고가 1억7천만불이니 15배가 넘는다. 국민 6명당 자동차가 한대씩이며 시골 농가도 차고(車庫) 없는 집이 드물었다. 한국 자동차가 4만1천대이니 말레이시아는 인구 900만에 150만대. 한국이 앞으로 매년 1만대를 생산한다 해도 150년 후에나 말레이지아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레이시아가 그대로 멈춰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열심히 따라가도 150년이 걸린다는 계산에 그저 아득하기만 해서 기가 막히더라는 것.

앞서 1964년 서독에 갔던 박 대통령은 우리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고 초라한 숙소에 돌아와 육영수 여사와 함께 가난 설움으로 얼마나 통곡했던지 내외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전에는 외국에 안나가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광모 지음 〈청와대〉)

그후 60년대에 꼭 필요한 외교 일정상 몇차례 남의 나라 비행기를 빌려타고 외국에 나갔을 뿐,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70년대에는 주한미군 철수, 월남 패망 등 내외 정세의 급변이 몰아치는 유신시대를 이끌면서 단 한차례도 외국에 나가지 않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진그룹 조중훈에게 “국적기를 타보는 게 소원”이라면서 대한항공을 강요하다시피 출범시키고는 정작 그 자신은 태극마크가 달린 우리 비행기를 단 한차례도 타보지 못하고 오로지 국가 목표를 향해 줄달음쳤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이 시기, 박 대통령의 집권 18년에 남쪽나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는 한국이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두 나라 경제력에 대역전극이 무섭게 벌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후 그가 1981년에 총리로 집권을 시작해 2003년까지 국가경영을 지휘하면서 시종일관 추진한 것이 ‘동방정책’ 즉 “미국과 서구의 경험은 필요없다. 동쪽을 보자”며 한국과 일본을 롤모델로 삼은 것.

그는 유학생과 산업연수생을 한국과 일본으로 보냈고 특히 새마을운동을 말레이시아 농촌에 접목시키는 데 주력했다.

마하티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분명하게 이루어냈고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것 자체가 뛰어난 업적입니다. 그는 한국을 위해 큰 일을 했습니다. 한국민들은 그가 현대한국의 진정한 국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경제 1997년 3월 3일)

“단언컨대 한국이 처음부터 민주화가 됐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겁니다.” (조선일보 2000년 3월 27일)

“경제 분야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아일보 2012년 8월 25일)

우리와 말레이시아의 반세기를 돌아보면 실로 격세지감과 더불어 인간과 국가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무상(無常)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말레이시아를 22년간 통치한 마하티르는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한국의 진정한 국부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특히 정치권과 언론, 지도층에서) 박 대통령을 과연 그렇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글/김인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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