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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후 왜 의료진에 책임 안물었을까


입력 2012.07.20 14:19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정일의 죽음을 해부한다' 실화소설 파이널 커튼 최종회>

김정은은 장군님 추도 분위기 가시기도 전에 명절 같은 분위기로 바꿨어

내가 청해서 듣는 이야기지만, 황 참사의 말이 큰 기사거리가 되지는 않겠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예단한다. 그의 현직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구중심처에서 벌어진 일을 탈북한 노동자로부터 들어서 기사화했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겠는가. 황 참사 역시 자신이 구태여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기자로서의 내 관심에 부응하여 이 마당에 못할 말이 뭐가 있느냐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들 사회의 권력투쟁과 비리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 특종을 기대한 편집국장의 당혹스런 얼굴이 떠오른다. 북경특파원이 김정은 옹립세력에 항의하던 북한 고위관리가 도망쳤다, 운운한 정보보고가 심히 잘못되었다. 물론 경희한테서 듣고 쓴 것일 테지만. 경희는 그렇게 나를 유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희가 노리는 건 무엇일까? 돈일까? 황 참사의 안전한 도피일까? 황 참사가 죄를 지었다 하기로서니 그깟 일로 국가기관이 눈이 뻘개져서 다른 나라 국가기관과 공조까지 하여 잡으려고 나선 건 아무래도 좀 지나친 일 아닐까? 황 참사가 그처럼 대역죄인일까? 황 참사의 폭로에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어서일까?

“응급치료를 인위적으로 지연시켜 김정일을 죽게 했다고 한다면, 김정일 사후에 의료진이라든가 의료진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물었을 것 같은데? 김정은 측근들이 면피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든지 하지 않았겠어요?”

“기런 일이 없었어. 기런 일이 없었다는 것도 김정은이 측근들이 암약했다는 증거 아니겠어? 김정은이는 장군님 서거가 선군혁명위업 달성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다고 하면서도 관계자들에 대한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어. 그때 당정기관, 군대의 간부들은 장군님 서거에 책임 있는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벌과 숙청 바람이 틀림없이 불어 닥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아? 조금만 불순하다 싶은 언행을 하면 반당반혁명분자라는 모자를 씌워 무자비하게 처형하잖아? 기러니까니 일반 인민들까지도 봉화진료소장 이선봉이 정도는 대역죄로 총살 당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어. 당시 평양시민들은 봉화진료소에 돌을 마구 던져 병원 유리창들을 다 깨버렸다고. 봉화진료소장은 맞아 죽을까 봐서리 출근도 못했다는 거야. 하지만 김정은이가 봉화진료소장은 죄가 없다는 면죄부를 안겨줬어. 기리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지. 오히려 김정은이는 장군님 추도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모든 인민들이 장군님에 대한 슬픔을 혁명적 낙관으로 전환하여 명절 같은 분위기로 살며 일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어.”

“그렇다고 왜 중뿔나게 형이 대들었어요? 지금까지도 잘 견뎌 왔으면서. 김정일이 죽으면 어떻고 김정은이 권력을 잡으면 어때요? 다 개진도진 아녜요?”

“이젠 참을 수 없기 때문이야. 용접공으로 13년이나 견뎌왔어. 굶기를 밥 먹듯 해왔어. 날 따르는 동무들 상당수가 가망 없는 내게 등을 돌렸어. 아우 생각이 간절했어. 기러나 내가 직접 연락할 길이 없었지. 남을 시키면 금관 훔친 것만 들통날 것 같았고.”

그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힘이 빠진다. 정말 참을 수 없었다는 듯이. 나는 더 이상 그의 이야기를 독자들의 아침 식탁에 올릴 궁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습관적으로 묻는다.

“그럼 어디로 갈 건가요?”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말은 묻고 있지만 표정은 서울행의 결단을 종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눈치채기를 바란다. 그는 나를 힐끗 마주 쳐다보다가 애써 먼 하늘로 힘없이 눈길을 옮긴다.

“많이 생각해봤어.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거의 평생을 전쟁 준비를 하면서 살아왔어. 기래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개인으로서의 자유도 다 남의 나라 일처럼 여기고 살았어. 지은 죄도 없이 굶어 죽어야 했어. 이제 우리 인민이면 누구나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 우리 공화국이 멸망하는 전쟁이라도 반기게 되었어. 기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전쟁 준비와 고단한 삶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야. 이젠 북과 남, 전쟁, 이런 단어가 너무 지겨워. 이런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그곳이 어딘데요?”

“북도 남도 아닌 곳. 우선 북대황(北大荒) 쪽으로 가서 러시아 국경을 넘어볼까 해. 추워서 기렇지 거기는 러시아 쪽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군.”

나는 조금 전 물경 삼십만 달러의 금관값이 든 가방을 그에게 내준 걸 후회한다. 서울에 가야 그것을 준다고 흥정을 했다면 그가 서울에 오겠다고 했을까? 하지만 서울에 오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인생은 그가 책임져야 하니까.

“가족은 어떻게 하고?”

“생각하면 가슴 아파. 더는 묻지마.”


말투에 진행중인 통증이 듬뿍 묻어 있다. 제주도에 갔다 온 부하를 권총으로 살해했듯이 가족도 살해했을까? 아니면 혹시 가족들은 굶어 죽었을까? 아니면 위급한 상황이라서 가족은 놔두고 자신만 도망쳤을까? 어떤 경우든 가족과 이별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의 아픔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 나는 더 파고 들지 않기로 한다.

“중국여권을 만들어 줄 수 있갔어?”

“그럴 능력이 안 돼요. 중국도 지금은 호구부를 다 전산화했다고 해요. 관리가 철저하대요. 되든 안되든 다리를 놔줄 사람도 없어요. 정연화 여권을 만들어줬던 최 노인도 벌써 치매에 걸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걸요.”

그가 서울로 간다면 내가 나서서 확실히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숨어든 탈북자들이 수천 킬로미터의 중국대륙을 횡단하여 동남아시아로 들어가는 탈북자루트가 있다. 서울과 중국에서 활동중인 브로커들을 찾아내면 어렵지 않게 그 루트를 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희망을 존중하기로 한다.

어느 편의 잘잘못을 떠나 남북 사이의 각축과 전쟁 위험성을 기억에서 지워도 좋을 곳으로 가고자 하는 그의 소망이 너무 간절하다. 남과 북을 거부하고 중립국으로 가다가 자살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마이 웨이>를 흥얼거린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다.

And now, the end is near.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군.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고 있어.

My friend, I'll say it clear.
친구,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을 얘기해 볼게.


처량한 노래 가락이 석양에 퍼진다. 우울한 떨림으로 바람소리와 함께 귓속을 파고 든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And now, as tears subside, I find it all so amusing.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즐겁다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그 말을 후회와 슬픔뿐이라고 바꿔본다. 그렇게 바꾸고 보니 가슴이 더 미어진다. 니미, 한국으로 가자니까, 라고 외치고 싶다. 되레 그보다 내가 더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끔직한 고통은 그것으로 멀리 떨어져 남의 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나 크게 보이는 법이다. 정작 그것을 체감하는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오직 넘어야 할 고산준령이거나 절망하고 주저앉아야 할 망망대해일 뿐이다.

숲 속에 어둠이 찾아왔다. 차량의 불빛들이 숲길을 밝힌다. 아까부터 사뭇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자작으로 나를 일깨운다. 일직선으로 뻗은 몇 개의 차량 불빛들이 황 참사와 나를 초점에 가두고 서서히 다가온다. 황 참사도 불길함을 눈치챘는지 노래를 뚝 멈춘다. 뚜렷해진 미루나무 그림자들이 부산하게 쓰러지고, 쓰러진 그림자 사이로 빛의 구멍이 생긴다.

이젠 불빛이 우리 몸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불빛의 정체를 새삼 깨닫는다. 넘어뜨리고 싶은 것들을 다 넘어뜨리고, 잡고 싶은 것들을 다 잡는 강력한 힘을 가진 불빛들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불빛들이 나와 황 참사의 눈 앞에 쏟아진다. 끼익끽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경광등이 파랑과 빨강빛을 차갑게 토해낸다. 덜컹, 빗장이 질러진 기분이 든다. 불빛을 가르며 시커먼 것들이 튀어나온다.

“어이, 황선호!”

분명한 우리말이다.

“개자식!”

황 참사가 일순 부르르 몸을 떨며 내뱉는다. 불빛의 반대방향으로 잽싸게 튄다. 나는 황 참사의 욕이 내게 하는 말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고자질 한 것이 아니니까. 나는 북경서 분명히 휴대폰을 끄고 여기까지 왔다. 여기로 간다는 말을 북경특파원에게까지 하지 않았으니까 의심할 만한 사람도 없다.

“거기 서!”

중국말로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시커먼 것들이 황 참사를 따라 달린다. 황 참사는 미루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숲에는 나무들이 조밀하지 않다. 그가 내 시야에 보이지 않을 뿐 숨을 곳은 못 된다.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그때 내 등 가운데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 와 닿는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앞으로 꼬꾸라진다. 얼굴이 있는 힘을 다해 지면과 부딪힌다. 누군가 구두발로 걷어찬 것이다.

“머저리 같은 자식, 금관값을 주갔다고 할 때 협조할 것이지.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거야.”

양 참사의 목소리다.

“참사 동지, 저기, 저기로 가고 있습니다.”

경희 남편이라는 김씨의 목소리다. 호텔에서 쉬고 있어야 할 사람이다. 황 참사가 말한 개자식의 주인공들이 내 곁에 거친 호흡을 내쉬며 서 있다. 양 참사가 황 참사가 도망치는 곳으로 달려가려 한다. 나는 소용 없는 짓이라고 믿으면서도 양 참사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황 참사가 도망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번에는 김씨가 나를 걷어찬다. 그래도 나는 양 참사의 다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걷어차는 발길질이 횟수를 거듭한다. 김씨가 결국 차 쪽에 있는 중국 공안을 부른다. 공안 둘이 달려와 내 양 손을 등뒤에 올려 수갑을 채운다.

“문화재 절도와 밀매 국제조직의 일원으로 당신을 체포한다.”

공안이 하지도 않은 말을 김씨가 대신한다. 그러더니 그가 내 옆구리를 다시 한번 걷어찬다.

“히히히. 나도 배신잔 줄 알았나?”

탕탕. 먼 데서 총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지면에 얼굴을 박고 총소리를 듣는다. <대미>

글/유경 소설가 yookyungpy@gmail.com
그림/이철규 화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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