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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위험 닥치면 숨는 거북이...왜?


입력 2012.07.08 10:55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장준영의 미얀마 읽기>외부 쿠자 원하면서도 자존감 지키려는 속내 이해해야

지난달 19일,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2단계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정전협정에 합의하지 않은 소수종족과의 협상과 양심수 석방 등 정치개혁을 신정부의 1차년도 치적이라고 공표하고, 올해는 민생 안정을 도모할 경제발전을 거시적 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채택했다.

구체적으로 미시경제정책을 포함한 국가경제발전계획 초안 완성, 공적원조자금을 포함한 해외 원조의 확대, 토지개혁 및 도시개발, 전력수급 문제 해결 등 4대 현안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또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 발전, 지역간 균형발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경제발전, 정확한 통계 축적 등 국가의 전환기에 적합한 4대 경제정책도 추가했다.

2010~2011년 기준으로 연간 7.7% GDP 성장률을 목표치로 산정했고, 2015~2016년 기준 1인당 GDP를 현 수준의 3배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산업구조 또한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에서 2, 3차 산업을 육성시키는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일에는 5월 사의를 밝힌 부통령의 사임을 공식화하고, 개혁에 수동적인 각료들을 교체할 의지를 내비쳤다. 군부가 지명하여 무투표로 취임한 부통령은 의회 내 강경파의 좌장급으로서 지난 1년 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미얀마를 공식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오후 네피도 대통령궁에서 열린 한국-미얀마 정상회담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미얀마를 공식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오후 네피도 대통령궁에서 열린 한국-미얀마 정상회담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지만 부통령의 사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며, 미얀마 정치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는 사실의 반증하기도 하다. 그런 반면 또 다른 강경파로 분류되던 하원의장이 개혁파로 변신하는 등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국민적 열의 앞에서 더 이상 구시대의 질서는 통용될 수 없다는 시대정신이 표출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부통령이 사임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전 군사평의회 의장에 의해 주도되는 막후정치는 더 이상 효력을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의 권한과 위상이 그 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개혁성향의 야당인사가 후임 부통령으로 지명될 경우 정치적 발전과 개혁이 동시에 진행되리라 본다.

이제 일부 각료들을 교체하면 개혁에 ‘딴죽’을 거는 군부나 의회 내 강경파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며, 여전히 불안한 미래를 점치거나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내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또 다른 변화의 서막을 기념하기라도 하듯이 500 여명에 가까운 양심수 중 46명(남 37, 여 9)을 석방했다. 정치범석방을 위한 NGO(AAPP)에 따르면 석방자 중 NLD 당원 2명을 포함하여 승려, 학생운동가 등 정치범은 총 25명이라고 한다. 숫자는 미미하지만 정부가 정치범 석방을 일종의 대외 선전카드로 활용해왔던 측면을 고려할 때 향후 추가적인 정치적 자유는 보장될 것이다.

2011년 3월 신정부가 출범한 이후 그야말로 숨 가쁜 레이스를 하고 있으며, 금번 2단계 발전 전략의 발표로 인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더욱이 정부가 직접 민생경제를 챙기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내수 경기부양을 위한 외국인 투자와 해외 원조가 필수 요건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얀마 대통령의 언급처럼 원조를 주겠다고 한 국가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는 시작단계에 정체되어 있다. 각종 제도를 도입 또는 개정하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외국인투자법은 계류 중이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유효하다. 그야말로 기업들은 누가 먼저 시작할지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미얀마를 방문한 인사가 모 일간지에 투고하기를, 그저 도와달리는 식으로 한국의 투자를 부탁했다고 개인적 소감을 밝혔는데, 이는 미얀마에 대한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으로 보인다. 외화에 눈이 먼 미얀마 정부는 애처롭게 외국의 투자를 구걸하듯이 독려하고, 따라서 어떤 분야든지 자본의 규모에 상관없이 외국의 국내 진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필자가 들은 것처럼 “미얀마는 이미 레드오션이다.”라는 관측이 나올 법하다. 미얀마에 투자를 희망하는 대기열의 끝이 보이지 않고, 이들이 모두 투자에 성공한다는 조건이라면 이 논리는 정확하다. 간단히 말하면 미얀마는 외국인이 투자하고 성공하기에 그렇게 쉬운 국가는 절대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1962년부터 미얀마는 국제사회에서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영국 식민시기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얀마 정치인과 군부에게 영국 식민시기는 그들이 창달한 정신문화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 혼란기이자 자본주의로 무장한 서구국가에게 자원만 수탈당하는 자원공급국에 불과한 시기였다.

따라서 외부와의 차단이라는 극단적 처방은 과거를 치유하기 위한 그들만의 고육지책이었다. 둘째는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자력갱생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희망하는 외국계 기업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등 차별 대우의 대상이었다.

부당한 투자환경은 외국기업의 자발적 도태를 유발시켰고, 미얀마는 기업하기 힘든 최악의 국가가 되었다. 1988년 집권한 신군부는 시장체제를 주창했으나 구시대의 관행은 일시에 사라질리 없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외국인투자법을 비롯하여 신정부가 야심차게 마련한 법령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해외 기업들에 무제한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국내 산업은 외국기업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경제적 종속으로 귀결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군부는 이런 환경을 식민시기의 도래로 판단하며, 곧 주권의 상실이자 국가의 위기로 정의할 것이 뻔하다. 지난 50년 간 누려온 군인과 군인사회의 배타적 이익도 보장되어야만 기업하기에 유리해 보인다.

미얀마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국인투자가 봇물을 넘쳐 정부가 행정지원을 하지 못할 상황까지 다다르면 해당 분야의 정부 인적자원을 추가로 투입하여 업무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조치가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는 모든 외국인투자를 잠정 중지시키고, 업무에 혼선이 빚어질 환경이 모두 제거되면 역량 내 수준에서 업무를 재개하기도 한다.

시시한 서류 한 장도 관계 부처의 수장이 일일이 확인하고 서명을 해야 되고, 업무 혁신을 가져올 아래로부터의 제안이나 요청은 먼 나라의 얘기다. 그들의 상황 인식과 판단은 절대적으로 그들의 기준이며, 그것이 그들의 법칙이다. 느린 걸음을 걷더라도 위험이 도래했을 때 사지를 등껍질로 숨기는 거북이의 습성이 미얀마와 매우 닮아 있다.

외부의 지원을 희망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거지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미얀마의 자존심은 정부의 유형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은 높다. 미얀마의 법이나 제도에 대한 이해보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역사관을 지녀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글/장준영 한국외대 교수·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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