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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하수도 공화국' 만들고 난 방조했다


입력 2012.02.28 17:04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 - '난민촌 대한민국'을 읽는 5가지 코드 ②>

진보적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증 사로잡힌 이땅의 지식인들이 짓는 죄

좀 부끄럽고 개인적인 일이지만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요즘 대세라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멤버 김어준과 필자는 한때 자주 어울렸다. 1968년생 어준이가 필자보다 12살 아래 띠동갑이지만, 우린 통했다. 당시 일간지 문화부기자였던 나는 그 당시 누구보다 리버럴한 성향이었고, 인터넷매체 <딴지일보>의 자칭 총수라는 턱수염의 새 인물의 등장을 눈여겨봤다. 그와의 술자리도 유쾌했다. 벌써 10여 년, 기억나는 게 그의 이런 레토릭이다.

“한국사회엔 세 가지 콤플렉스가 있어요. 첫째 화이트 콤플렉스. 근대역사 실패 이후 만들어진 서구에 대한 열패(劣敗)의식을 전 그렇게 부릅니다. 그건 이제 좀 극복했다지만, 레드 콤플렉스(공산권 콤플렉스)가 골치 아파요. 냉전이 끝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꽁꽁 얼어붙어 있잖아요. 조 기자님,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핑크 콤플렉스 극복이죠.”

“핑크 콤플렉스가 뭔데?”

“남녀칠세부동석 따위의 유교윤리를 벗지 못한 태도를 전 그렇게 불러요. 즉 근대적 의미의 성적 자유를 얻어내자는 겁니다. 서구 젊은이들이 길거리키스도 서슴없는데, 그건‘68혁명’ 이후 얻어낸 자유 아닙니까?”

그런 참신한 발상을 하는 김어준을 나는 아꼈다. 지금은 달라졌다. 어준이를 걱정한다. 정봉주를 응원하는 비키니 인증샷의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하고, 그걸 보며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고 낄낄대는 김어준은 내가 아는 김어준이 아니다. 하지만 10년전 무명이었던 그는 이제 젊은 층의 우상이자, 야권 정치의 배후로 성장했다. “성적 농담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떼쓰기가 나는 실로 안쓰럽다. 더구나 그는 내 눈에는 유죄다. 왜? 무엇 때문에? 지난 달 이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11월 30일 저녁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 FTA 반대 특별 공연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의원,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기자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지난해 11월 30일 저녁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 FTA 반대 특별 공연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의원,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기자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북한주민이 전체주의의 맷돌에 끼어있다면, 한반도 남쪽은 서로 다른 꿈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끼리 충돌하는 펄펄 끓는 사회이다.”

즉 김어준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 주인공의 한 명이다.‘하수도 사회’‘난민촌 대한민국’을 만든 혐의를 김어준이 피하기 힘들지만, 필자야말로 ‘방조죄(幇助罪)’를 적용 받아야 마땅하다. 반성한다. 그런데 함께 그걸 방조한 그룹이 있다. 오늘의 주제인 이 땅의 지식인 그룹이다.

대학교수를 포함한 지식인 그룹이야말로 ‘난민촌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보라. 지금 뿔뿔이 흩어진 개인은 구조조정의 물결 앞에 나 홀로 생존전략만을 생각하며, 공동체도 해체되기 직전이다. 명색이 공동체라면 어떤‘큰 그림’이 존재해야 하고, 이에 대한 동의와 합의가 필수인데 우리는 꿈도 못 꾼다. 격앙된 감정과 분노의 찌꺼기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한국사회를 관류하는 핵심코드는 그래서‘분노의 정서’이다. 파괴적인 그 에너지 탓에 이 땅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 표출의 마당이다.

“등록금 1000만원, 청년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혼자만 살려하지 말고 스크럼 짜고 일어나라.”

“신자유주의 세력을 혼내줘야 하고, 가진 자와 대기업들에게 항변하라”는 식이다. 보수세력의 대응도 어설프고 비이성적이라서 미덥지 못하다. 내가 아주 높이 평가하는 정치학 교수 한 명은 “삶의 조건과 방향을 설정해주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이상과 가치는 내면에서 파괴됐다. 이게 우리가 헌신해야 할 민주공화국과 인간공동체의 참 모습이란 말인가?”(박명림· 김상봉 지음 <다음 공화국을 말하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일단 공감한다. 하지만 인생 후배로 여기고 있는 그에게도 이번 기회에 한마디 조언을 하려 한다.

“당신의 말에도 뭔가 분노의 기미가 엿보인다. 시야 확보가 충분치 않은 아카데믹한 진지함이란 자칫 지적 센티멘탈리즘으로 빠진다.”

진정 안타깝다. 사회에는 건강하고 책임있는 메인스트림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은 주류없이 흘러가며 항구적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통합에 필수인 신뢰와 동의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없거나 태부족인 탓이다.

이 글을 마무리 짓자. 나의 오랜 의문은 이렇다.

“왜 지식인 다수는 자기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미 나는 그걸 내 책 <나는 보수다>(동아시아)에서 한국적 ‘리버럴 강박증’으로 규정했다. 그런 증후군이 등장한 사회역사적 배경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에 덩달아 깨춤을 추는 이들을 누군가가 지적해야 한다. 왜 그것이 문제인가? 그게 우리사회의 좌파정서에 원인제공을 했다. 그게 문제이다. 지식인의 리버럴 강박증이 파편화되고 주변부화된 채 대중사회 전반의 ‘묻지마 분노’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섭다. 좌파정서는 좌파와는 또 다른 실체인데, 이미 사회적 괴물로서 자라났다. 그 한 축을 맡고 있는 게 김어준이고, 정확하게는 지식인 그룹 전반이다. 이 칼럼 시리즈의 제목은 ‘난민촌 대한민국을 읽는 5가지 코드’인데, 나의 지적은 막연한 게 아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큰 지식인’이다. 인권· 민권을 외치면서도,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국권도 함께 생각하는 책임감, 정당한 분노와 함께 공동체의 오늘을 말할 줄 아는 지식인, 전(全)한반도의 시야로 50년 뒤를 내다보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큰 지식인’이다. 지금 나는 그런 새 지식인을 기다린다.

다시 고백한다. 지금 나의 관심은 김어준과 그의 그룹 정도가 아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잊으면 된다. 지식인 그룹도 소생의 징후가 거의 없다는 게 지금 나의 솔직한 중간 결론이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통섭하고, 보다 큰 비전을 이 사회에 새롭게 프로그래밍하고 싶다. 감히 그걸 소망하고, 스스로 그걸 꿈을 꾼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으니 몸짓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턱없이 큰 뜻을 품은 게 아니다. 나부터 밭을 갈구고 씨앗을 뿌리려는 태도다. 글을 아는 이로서, 이미 해체사회에 돌입한 이 시대와 이 사회에 대한 최소한 의무가 아닐까?

글/조우석 문화평론가·<나는 보수다>의 저자·굿소사이어티 고정필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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