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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모든 독재자가 박정희 같을 수는 없다


입력 2011.10.28 17:46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장하준에게 속은 23가지·17>박정희 시대의 성공이 정부지원 때문?

그나마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부 투자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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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주장의 큰 틀은 정부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부의 재정은 더욱 커져야 하며, 시장에 대한 규제도 더욱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가 시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은 기업을 길러낼 능력으로도 미친다. 정부도 올바른 투자를 할 수 있고, 또 될성부른 기업을 골라서 대기업으로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도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부도 기업을 길러내는 데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의 여부이다. 매우 낮은 확률을 보고 투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정부의 투자가 성공했고 어떤 경우에 실패했는지를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

장하준이 성공적인 정부 투자의 사례로 자주 드는 것이 박정희 시대의 한국이다. 앞 장들에서 설명했듯이 박정희 시대는 그 이전에 비해서 폭넓은 개방이 이루어지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시대다. 그와 더불어 관치금융을 통해서 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때 세워졌거나 그 시기에 도약을 한 기업들이 아직도 한국 경제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1965년 5월 18일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5년 5월 18일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는 박정희 대통령.

하지만 그 때 만들어진 기업들의 성공이 정부의 지원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았는데,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많은 빚 때문이었다. 1996년 당시의 30대 재벌 중 50%만이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길 수 있었다. 다음은 당시 쓰러진 기업들의 이름이다.

한보그룹(14위) 동아건설(15위) 한라그룹(16위) 진로그룹(19위) 고합그룹(24위) 해태그룹(25위) 삼미그룹(26위) 한일그룹(27위) 극동건설(28위) 뉴코아그룹(29위) 벽산그룹(30위)

그나마도 정부 지원책의 성공은 박정희 시대로 국한된다.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이 모두 그 무렵에 만들어지고 큰 기업들이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한국 정부의 투자 성적표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 가장 실패한 투자가 농업 투자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비한다고 농업에 막대한 지원을 했지만 농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여전히 농민들은 개방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주 예외적으로 하림 그룹 하나가 국제적 수준으로 성공을 했을 정도다. 벤처기업에 대해서도 지원은 많았지만, 소위 IT 거품이 걷히고 나서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중소기업 지원정책들도 그렇다. 중소기업에 대하여 막대한 지원책이 이어져왔지만 그들 중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의 기업들은 더 이상 커질 야망을 잃고, 중소기업에 머무르다가 수입품에 국내시장을 내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기업이라며 애지중지하던 기아자동차는 결국 부도를 면치 못했고, 현대자동차가 인수하고서야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SOC 투자 역시 그렇다. 좁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지방마다 공항을 건설한 결과 대부분이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우리가 독재라고 부르는 시절의 정부 투자가 그나마 성적이 나았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의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현명해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지원을 받는 기업이 지원과 보호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박정희는 그런 모습에 상당히 가까웠다. 그는 현명했기에 대부분의 결정을 정치가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내렸다. 또 해진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사심도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박정희 집권 초반기 기업에 대한 지원이 실적 좋은 기업들에게 차별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기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농촌지원 사업인 새마을운동 역시 실적이 좋은 곳을 우대했다. 이런 방식은 마지막 두 가지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준다. 즉 이미 실적 좋은 곳을 지원하기 때문에 미래가 없는 기업을 지원할 확률을 줄일 수 있고, 또 지원만 받고 성장은 안하는 문제 역시 최소화할 수 있었다.

후반기 중화학공업 투자의 경우는 시장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수익률은 낮았다. 자주국방이라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언정 경제적으로는 실패작인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말부터 10년 가까이 계속된 산업합리화 정책들은 그 과정에서 양산된 투자실패 기업들을 처리하는 작업이었다.

정부 투자가 시장 과정을 역행하는 현상은 민주화 이후에 더욱 심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투자는 여론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투자가 제대로 되려면 그 여론이 현명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전제이다.

다수의 국민이 미래야 어떻게 되든 일단 복지혜택을 받고 보자는 식의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복지정책의 결말이 안 좋은 것이다. 그마나 다수결이라도 관철되면 낳은 편이다. 시위대가 떼를 쓰고, 소수의 국회의원들이 국회의 단상을 점거하면 다수결 원칙조차도 관철되지 못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투자가 현명해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하준은 박정희나 이광요, 장개석처럼 현명한 독재자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한국과 대만과 홍콩과 싱가포르는 독재 기간 동안에 도약을 이룩했다. 한국은 박정희, 대만은 장개석의 치하에서 도약의 기초가 놓였다. 홍콩의 도약을 위한 기초를 놓은 사람도 영국 여왕이 파견한 패튼 총독이었다. 싱가포르는 실질적으로 아직도 이광요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민주화된 한국과 대만은 그렇지 못하다. 낮은 성장률은 경제에 많은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성장률이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절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적 번영과 더불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쩔쩔맬 정도의 자유민주주의까지 원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이루어내려면 여론이 개별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기본적인 틀만 제공하고 구체적인 결정은 국민 각자가 내리는 방식 말이다. 물론 그 체제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완전할 리 없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제시하듯이 정부가 일일이 각자의 활동에 개입하는 체제보다는 덜 불완전할 것이다.

글 / 김정호 자유기업원(www.cfe.org) 원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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