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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붉은 치마´가 그려낸 인간 명성황후


입력 2009.03.15 17:28 수정        

이규희 작가 신간, 몸종 다희의 울림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

간결하고 어렵지 않아 아이들과 역사 이야기 나누기에 적당

‘왕비의 붉은 치마’(이규희 저, 계림북스, 208쪽, 8500원) ‘왕비의 붉은 치마’(이규희 저, 계림북스, 208쪽, 8500원)
명성황후는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다. 일제의 손에 목숨을 잃고, 호칭마저 빼앗긴 조선의 국모. 부당하게 ‘민비’로 강등되고 ‘조선을 망친 여우’라 폄훼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격변기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치열하게 살았던 명성황후는 언제나 ‘꼿꼿한 여장부’였다. 우리의 기억 속의 명성황후는 개항 이후 외세의 야욕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면서 일제에 맞섰던 투사였다. 그런 까닭에 TV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영화, 뮤지컬 등으로 되살아났지만 명성황후의 얼굴은 늘 근엄했고 견고했다. 일본 낭인들의 칼날 앞에서도 “나는 조선의 국모”라고 외치던 모습만이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왕비의 붉은 치마’(이규희 저, 계림북스, 208쪽, 8500원)는 조금은 먼 존재였던 명성황후를 생생하고 친근하게 그려냈다.

명성황후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다희’의 입을 빌렸다. 한맺힌 푸른 통곡 대신 담담하지만 애틋한 목소리가 전편에 흐른다.

몸종이었던 다희에게 동갑내기인 자영아씨(명성황후)는 ‘빨간 당혜와 짚신’만큼 감히 질투도 할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종황제와의 짧은 만남 이후, 신분의 차이에 서글퍼하다가, 마음에 은근히 담았던 이와 혼인을 올리는 자영아씨를 보면서도 미워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책 속의 명성황후는 언니처럼 친근하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벗’처럼 다희를 아끼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불러다 글을 가르쳐 주고 결혼을 마다하고 궁녀로 자신의 곁을 지켜줘 고맙다고 말하고, 열강의 야욕을 숨긴 채 회유하려 드는 외국인들 앞에서도 귀를 열고 들어줄 정도로 속이 깊기도 하다. 부당한 핍박과 미움에 괴로워하면서도 애써 억누르고 마주하는 명성황후의 모습에서는 ‘여장부’의 면모가 드러난다. 왕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는 수문장들에게 조목조목 대꾸하는 자영아씨는 우리가 그려왔던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헤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치의 동경과 약간의 질투를 넘어 함께 나이를 들어가면서 다희는 명성황후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려진 탓에 명성황후의 세밀한 내면 풍경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때로는 오기와 영민함으로 응답하고, 때로는 외로움과 번민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인간 명성황후가 그 곳에 있었다.

화려한게 성장한 외국 여성들 사이에서도 더욱 빛이 나는 명성황후를 보며 다희는 “나비 모양의 떨잠과 뒤꽂이로 치장한 어여머리나 화려하게 수놓은 진홍빛 비단 치마 저고리, 치마허리에 단 삼작 노리개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학식과 빼어난 말솜씨, 친절한 성품 탓에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굴곡보다는 인간 명성황후에 초점이 맞춰져 간결하고 어렵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조선 말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하다.

한편 이 책의 저자 이규희씨(57)는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동화문학상을 비롯 어린이문화대상,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등을 수상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대표적인 여류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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