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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스라이팅, 처벌할 수 있을까?


입력 2021.09.13 05:04 수정 2021.09.12 14:28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법조계 "사람의 마음을 조작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 어려워…양형 반영은 가능"

"가스라이팅 심각한 범죄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돼야"

가스라이팅.ⓒ게티이미지뱅크 가스라이팅.ⓒ게티이미지뱅크

군인 남편의 '가스라이팅'과 가정 폭력에 못 이긴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이 전해져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유족들은 남편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가스라이팅 행위만으로 법적인 처벌을 가하기는 어려우며 각종 범죄 혐의와의 인과관계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법조계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스라이팅 및 가정폭력으로 제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사관의 처벌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존감을 잃고 자신이 잘못된 거라고 느끼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 등을 말한다.


고인의 언니라고 밝힌 청원인에 따르면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동생 A씨는 직업군인인 B씨와 오랜 연애 후 지난해 부부가 됐다.


청원인에 따르면 B씨는 신혼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처가에 돈을 요구하면서 아내와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고 장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B씨의 언어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A씨는 지난 7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청원인이 공개한 A씨의 휴대전화 내용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나니까 참고 사는 거야. 복종해. 빌어", "모두 네가 잘못한 거다", "네 가족은 널 딸이라 생각 안해 정신 차려"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B씨는 A씨에게 수차례 돈을 요구했고, 입금이 늦어지자 "XX 진짜, 위기 상황이라고. 너 같은 사람 필요 없어", "꺼져, 이혼할 거야. 이기적인 X"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또 B씨는 답장이 늦다는 이유로 "XX 진짜 살다 살다 너 같은 XXX은 처음 본다", "너 같은 X은 너랑 똑같은 사람이랑 살아야 해"라고 폭언을 쏟아냈다.


이밖에도 "너는 진짜 별로야. 내가 너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도 안 잡혀?" 등의 말을 하며 A씨의 자존감을 짓밟는 말을 일삼기도 했다.


지난 7월 사망한 동생의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남편과의 대화 내용이라며 유족이 공개한 사진.ⓒ인스타그램 지난 7월 사망한 동생의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남편과의 대화 내용이라며 유족이 공개한 사진.ⓒ인스타그램

A씨는 생전에 남편의 폭언에 지쳐 "무릎 꿇고 빌고 그 모습을 봐야만 용서가 되는 거냐", "빌고 울어도 안 받아줄 거면서 왜 자꾸 기회란 단어를 쓰는 거냐"며 심적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원인은 "동생은 B씨와의 관계가 사랑이 아닌 줄도 모른 채 10년 동안 지배당하고, 때때로 돌아오는 현실감각과 견디기 힘든 폭력을 부정하며 괴로워하고 우울해하다가 끝내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숨졌다"며 B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팅 행위 자체만으로는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처벌의 전제는 죄형법정주의인데 사람의 마음을 조작했다는 행위만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면서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의 고지가 있다면 협박죄가 성립될 수 있고,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수반된다면 폭행죄가 성립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가스라이팅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만으로는 형법상 처벌이 어렵지만 범죄수사 단계의 '범죄피해평가제도'를 통해 재판과정에서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피해를 증거로 채택해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면서 "가스라이팅이 심각한 범죄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처벌 규정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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