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백제 역사의 비밀창고, 이성산성


신라의 축성으로 추정…성내 대량의 건물지 발견
아차산 보루군과 한강 일대 여러 성들 한눈에 조망
최진연 기자(cnnphoto@naver.com) |
▲ 이성산성 남쪽 성벽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서울과 수도권은 열지수가 34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기자는 이성산성을 현장취재하고 용인의 어느 농장도 섭외돼 있어 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어젯밤 한줄기 소나기 덕분에 맑아진 하늘이 눈부시다.

9일 오전 중부고속도로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하남의 이성산성 동문지. 네다섯 명이 망대 위에 세운 원두막에 걸터 앉아있다.

▲ 각 건물지가 배치된 투시도

“저기보세요.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꼼짝도 못해요. 무더위에 피서 간다고 난리들입니다.”

“저게 무슨 고생들입니까.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지요. 여기가 피서입니다.”

산 아래 초일동에서 왔다는 임영석(51) 씨는 일행들과 함께 쉬고 있는 원두막을 자랑하고 있다. 3년 전 마을 어른들과 원두막을 만들어놓고 틈만 나면 산에 온다는 임씨는 조선 중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후손이며 450년 동안 이 마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 복원한 동문지

어릴 적부터 산성을 올라 다녔다는 그는“30년 전 이곳도 민둥산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성 돌이 많이 보였는데 나무숲에 가리고 더러는 파묻혀졌습니다. 늦었지만 지난가을 동문을 복원해 다행입니다. 삼국시기에 대단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하니 산성전체를 복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성내 저수지

백제의 한성시대 때 중요한 거점지역인 하남 춘궁리 일대의 이성산성이 최근 신라의 축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해발209m)의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이성산성은 한강 인근 아차산 일대 보루군과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 여러 성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인 산성이다.

▲ 동문에서 본 고속도로

성 내에서는 삼국시대 유물과 대량의 건물지가 발견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팀이 1986년부터 15년 동안 집중 발굴한 결과 장방형 9각, 8각, 12각 등의 건물지와 2개의 저수지 신앙유적 등의 유구가 노출 됐다. 특히 만든 시기가 608년으로 추정되는 ‘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가 기록된 목간, 자, 목제인물상, 철제농구와 무기, 벼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산성둘레는 1.8km 성벽은 대부분 무너지고 복원한 동문에서 성벽높이가 5~6m나 된다. 성문자리 4곳과 성안에 우물지 4곳도 확인된다.

▲ 정상에서 본 미사리 방면

이성산성은 삼국이 서로 뺏고 빼앗긴 쟁탈 속에서 두 차례 이상 대규모의 수축을 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성산성의 초기 축성은 도대체 언제일까? 학계나 향토 사가들에게 가장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축성의 기록이 없는 이성산성은 일제시대에 정리한 <조선고적조사보고서>는 이성산성이 초기 백제의 고성이라는 추측을 남겼다.

그 후 1986년부터 발굴 조사가 실시되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면서 산성은 백제 한성 시대에 축조, 고구려·백제가 이용하다가 통일신라 때 개축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 건물지 초석

서울대박물관은 산성의 위치, 주변 지명과 유래로 볼 때 초기 백제 한성시대의 도읍지일 가능성을 밝혔다.

반면 한양대박물관은 산성의 위치와 발굴 유물의 성격, 그리고 축조 방식 등을 볼 때 신라의 축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성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 유역, 특히 그 옛날 초기 백제의 수도는 어디쯤일까?

수많은 역사의 비밀창고가 눈앞에 펼쳐진다. 풍납토성, 몽촌토성 고개를 돌리면 남한산성까지….

▲ 마을주민들

이성산성(사적422호)
위치-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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