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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랬더라면´…드라마 캐스팅 잔혹사


입력 2007.08.28 16:10 수정         이준목 객원기자

찰나의 선택, 기묘한 ‘나비효과’불러일으켜

배우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를 두고 ‘이 배역은 그가 아니면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다’는 평가다.

오늘날 말론 브랜도와 알파치노 없는 <대부>를, 조니 뎁이 없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상상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것은 영화 제작 당시만 하더라도 이들이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는 점.


오늘날 특정 배우 아니면 다른 인물을 생각할 수 없는 작품들도 캐스팅 비화를 살펴보면 처음 제작 당시에는 임자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1순위가 아니었던 대타가 의외의 대박을 치고, 시큰둥하게 거절했던 배역을 놓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다.

최근 홍정란-홍미란(환상의 커플) 자매 작가의 신작으로 주목받았던 KBS 2TV <홍길동>이 ‘캐스팅 논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초 주연으로 낙점됐던 주지훈에 이어 조현재마저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출연을 번복하며 위기를 맞이했던 이 드라마는 우여곡절 끝에 <경성스캔들>의 강지환이 대타로 최종 낙점되며 결국 파행을 피해갈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당초 1순위로 거론됐던 캐스팅이 교체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알고 보면 홍자매의 드라마가 ‘대타의 신화’라는 점이다.

2005년 홍자매의 이름을 세간에 알린 <쾌걸춘향>의 경우, 당초 윤계상과 한가인이 주연으로 내정됐었지만, 갑작스런 군입대와 출연 번복으로 인해 당시만 해도 지명도가 떨어졌던 한채영과 재희가 대타로 투입됐고, 결국 대박을 터뜨렸다. 2006년 <환상의 커플>에는 1순위였던 엄정화의 고사로 연기경력이 짧았던 한예슬이 투입되어 예상 밖의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1순위가 아니었다고 자존심 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대타로 ‘홈런’을 쏘아올린 케이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불멸의 이순신>,<하얀 거탑>의 김명민이다.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 송일국, 정준호, 최수종, 이병헌 등 쟁쟁한 후보들을 거쳐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김명민이 ‘미스캐스팅’ 논란을 딛고 이순신 장군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얀 거탑>의 경우 김명민은 처음 ‘최도영’ 역할을 제의받았지만, 주연으로 내정된 차승원이 ‘장준혁’ 역할은 김명민에게로 돌아왔다.

이서진과 송일국도 대타 신화의 주인공이다. <다모>의 종사관 황보윤 역할은 당초 이정진(9회말 투아웃)의 몫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출연번복으로 ‘장성백’역에 캐스팅되어있던 이서진이 황보윤 역할을 이어받았고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유행시키며 정상급스타로 부상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타이틀 롤을 놓친 송일국은 <해신>에서 한재석이 군입대 문제로 중도하차하며 ‘염장’역을 물려받아 전화위복에 성공했고, <주몽>에서는 처음 출연을 고사했으나 배역이 적임자를 찾지 못해 표류하면서 다시 송일국에게로 돌아오기도 했다.

여배우의 경우, 한혜진은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최강희, <주몽>에서는 송윤아가 거절했던 배역을 거머쥐었다. 남상미는 <달콤한 스파이>에서 황신혜, <불량가족>에서는 한채영의 대타로 투입되어 주연으로 자리 잡았다. 채정안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박지윤, 정유미는 <캐세라세라>에서 윤은혜가 고사한 배역을 물려받아 드라마 인기에 한 몫을 담당했다.

반면 한순간의 실수로 두고두고 아쉬움을 곱씹어야했던 경우도 있다. 단아한 이미지의 여배우 송윤아는 한류열풍의 선두주자였던 <대장금>의 장금이, <허준>의 예진아씨, <주몽>의 소서노같은 대박 드라마의 여주인공 배역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고, 결국 기회는 이영애와 황수정, 한혜진에게 돌아갔다.

이정재의 경우는 더욱 안타깝다. 이정재는 <파리의 연인>과 <미안하다 사랑한다>,<풀하우스>에 잇달아 주인공으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며 박신양, 소지섭, 정지훈(비)가 상종가를 기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했다. 반면, 야심차게 선택했던 영화 <태풍>과 드라마 <에어시티>는 모두 시원찮은 반응을 얻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무수한 캐스팅 비화들은 찰나의 선택이 배우와 운명과 걸작의 향방까지 바꾸어놓았던 기묘한 ‘나비효과’의 기록이기도 하다. 배우가 자신에게 ‘필생의 캐릭터’라고 할 만한 역할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 여하를 떠나 운명과도 같은 인연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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