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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2탄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07.08.05 10:10 수정 2013.05.22 16:58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디-워>와 한국 용 문화의 가능성

얼마 전 정부 부처 자문회의에 갔을 때다. 막판에 필자에게 질문이 하나 떨어졌다. 영화 <디-워>가 흥행에서 성공할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마침 <디-워>의 개봉일이었다. 느닷없는 질문을 다른 분이 채갔다. “영화 흥행에는 마케팅이 중요한데, 초기에 우리가 힘을 모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인데, 국내 흥행이 미국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식이 느껴졌다. 실제로 일종의 애국 마케팅, 민족적 마케팅의 힘은 <디-워>의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필자는 만약 <디-워>가 컴퓨터 그래픽에만 승부를 건다면 <트랜스포머>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는 <디-워>의 흥행은 다른 요인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암시다. 이 두 가지 지적은 양면성을 갖게 마련이다.

마케팅 차원에서 개발독재 시대의 수출 역군 논쟁 외에 <디-워> 작품 자체를 둘러싼 논쟁은 크게 하나다. 컴퓨터 그래픽은 제법인데, 내용-스토리는 별로라는 것이다. 흥행을 결정 짓는 데는 초반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개 초반 승기를 잡기 위해 무슨 짓을 다 할 판이다. 애국 마케팅이건 관계가 없다. 기회비용을 최대한 효용성을 가지고 사용하려는 관객들의 심리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때문인지 마케팅 차원에서 성공했다. 일단 노이즈 마케팅은 <디-워>를 만든 심형래 감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심형래 감독의 전작 <용가리>에서 대한 비판에서부터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라는 인신공격까지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영구와 땡칠이’ 세대의 적극적인 옹호는 약자에 대한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감조차 있었다. 심형래 감독은 부당한 세력에게서 공격받는 약자가 되었다. 여기에 심형래 감독의 학력 논쟁도 있었고, 애국 마케팅의 문제점 지적 자체가 노이즈를 일으키면 더욱 <디-워>를 보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역시 감정 마케팅이다. 하나는 약자의 일관성에 대한 대중적 지지다. 어쨌든 한 분야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한 이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한국인들의 특징이다. 더구나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배려하는 것이 정서다. 그것도 거대 문화산업국가인 미국에 대항했다는 마케팅 방식은 더욱 이러한 심리를 증폭 시켰다.

여기에 두 번째로 심형래 감독에 대한 ‘연민’ 그것에 대한 지지 심리가 작용한다. 그것은 민족적 감정 혹은 감수성과 결합한다. 1500여개의 미국 극장에 개봉한다는 사실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1개주 당 30여개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지, 민족적 감수성에 기대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마케팅의 성공과 작품의 질은 별개다. 그것이 노이즈 마케팅의 한계이자 기만일 수 있다.

사실 상업 영화에 대해 예술영화제작자가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상업 영화를 아무나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업 영화 자체를 선악의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 예술 영화가 반드시 선은 아니다. 사실 <디-워>는 비판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영화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이 되는가. <디-워>는 상업 오락 영화다. 그것이 주류 영화판 인사들을 불편하게 한다. 장르의 고유성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마케팅 차원에서 문제점을 가진 <디-워>의 홍보 방식에 대한 지적은 논외로 한다. 그것은 충분히 비판되었기도 하거니와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상업 영화이면서 시도한 의미 있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용이다. <트랜스포머>가 장난감 로봇이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로봇에 대한 로망을 키워 아저씨 세대의 꿈을 이루어주었다면, <디-워>는 한국인들의 용(龍)에 대한 로망을 실현했다. 물론 제작진은 이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서양의 드레곤이나 중국과 일본의 용과는 차별화되는 그야말로 코가 못생긴 한국적 용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단순히 괴수를 물리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선한 용의 승천이라는 구도는 세계 괴수 영화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괴수 영화에 애절한 이승과 저승의 이별, 그리고 윤회라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사랑의 컨셉은 괴수영화에 쉽지 않는 소재다.

두 번째, <용가리>에 이어서 <디-워>는 복합 문화기호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무국적성을 확보하면서, 이면에는 한국적 문화를 채움으로써 부드러운 카리스마 전략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작품에서 복장, 무기, 비행기, 자동차, 집 등은 철저하게 서양식을 따랐다. 여기에 공간 배경 자체도 유럽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단지 유럽에 대한 선망이라는 일본인의 심리를 반영한 것만이 아니다. 나름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대중문화 산업에 고유성이란 존재할 수 없이 문화 기혹의 복합과 혼종, 하이브리드가 우선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공각기동대>를 포함한 무수한 영화를 오마주 했다. 여기에 동양철학에 동양 무술로 포장했다. 동양권은 열광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철저하게 서양적 기독교 철학에 충실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관점은 철저하게 일본적이었다. 보편성과 개별성을 함께 추구하면서도 관점을 지켜냈다.

<디-워>의 경우, 초기에는 한국의 이무기 전설에 충실하면서 이무기와 여의주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한다. 할리우드의 문화 기호와 캐릭터들이 영상 안에서 조선 시대의 풍광과 접합된다. 이는 문화 상품의 혼종적 특성을 생각한다면 단지 키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할 수는 없다. 또한 배우들은 한국인들이 아니라 서양인들이었다.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비판은 없고, <디-워>에 대한 비판만 있다면 타당하지 않은데 다만, 그 철학적 확고함이 설익은 점은 있다. 즉, 좋은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디-워>는 아직 초벌구이에 그친 느낌이다. 이는 심형래 감독의 욕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영화를 그동안 실패와 비판에 대한 한풀이용으로 만들었다. 사적 욕심이 지나치게 개입될 때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각본은 그렇다고 해도 각본의 수정작업이 협업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시스템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매만지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데, 이는 2탄에서 기대할 일이다. 즉 컨셉의 가능성이 아깝다. 용의 승천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후속편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무기의 승천이라는 컨셉은 인문학 차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결말은 승천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는 없고, 사랑의 이별이 단지 급작스럽게 아리랑과 변주되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용의 승천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은 배제되었고, 오로지 추상적인 승천만이 기호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삶은 빠지고, 공허한 선악의 대결만이 있다. 사람살이의 애절한 소망이 그립다.

무엇보다 <디-워>는 정말 우스운 영화다. 각종 혼종이 난발하기 때문이다. 남발이 아니라 난발이다. 심형해식 유머는 먹히는 것도 있지만, 옛날 티브 같기도 하다. 특수효과 기술은 뛰어나지만, 캐릭터 대부분에 할리우드의 잔상이 많이 남아있다. 스토리의 전개는 아동용 만화 같다. 퓨전과 문화 기호의 복합화에 철학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무기와 삶, 승천에 얽힌 기본적인 인문학적 성찰조차 결핍되어 있다. 단지 수준낮은 할리우드를 적으로 삼아 화려한 그래픽과 컨셉만으로 이기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은 아닌가. 누구와의 전쟁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겼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생각해보는 것은 대중오락 영화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예술 영화 제작가가 아니라 대중들이 심형래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을 필요는 있다. <매트릭스>는 예술 영화가들에게는 형편없는 작품이지만,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강렬한 작품이었듯이 말이다. 오해없길, 그렇다고 <디-워>가 <매트릭스>가 같은 등급은 아니다.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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