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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출산 항일독립운동사<3>


입력 2007.03.26 18:48 수정        

3월의 바람을 먹고 구름을 토하면서

흔히 친일청산에서 거론되는 대표적 인물인 박정희의 경우 당시 교사라는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던 25세의 젊은이가 만주 군관학교에 자진해서 입사하고 근무한 것은, 혹 강제징병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하더라도, 변명의 여지없는 친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혹 박정희가 교사로 일생을 마쳤다 해도, 일제에 의해 사상범으로 체포되지 않았다면, 친일부역자라는 사실이다.

일제시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황국식민교육에 앞장섰던 일제의 주구(走狗)들이었으며, 일제의 당근정책으로 황국사관에 충실한 교사들은 강제 징집될 염려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 박정희가 만주 군관학교를 제 발로 찾아가 소위가 됐다는 것은, 말이 필요 없는 적극적인 친일파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36년이라는 일제의 긴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1925년 이후 출생한 사람으로, 스스로 학비를 조달할 재정능력은 물론 가치판단의 능력도 없는 17~8세 어린 나이에 일본육사에 들어가 해방을 맞은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일괄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이들 모두를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당시 교사들의 권유와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학도병(學徒兵)으로 자진 입대하였거나, 훗날 학도병의 이름으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 간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아무도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나라 잃은 국민들이, 총독부 치하에서 강제 징병으로 끌려가 개죽음 당하느니,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일본 육사에 지원한 부류들 또한 숫할 것인데, 이들 모두를 친일파라 한다면, 이 땅의 사람들치고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물론 이들 가운데에는 용서할 수 없는 친일파들이 있을 것이며, 친일청산은 쌀 속에 섞어있는 뉘를 골라내듯이, 이들 친일파들만 골라내면 되는 일이다.

당시 식자층 가운데 대표적인 친일파 서정주(徐廷柱 1915∼2000)는 일제 말기 자신의 친일부역에 대하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둘러대, 당시의 국민 모두를 자신과 같은 판단을 하고 행동한 친일파들로 만들어버렸는데, 이것은 민족을 배반한 자신의 친일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를 친일파로 만들어 버리는 야비하고 교활한 말장난이며, 종내는 친일청산을 어렵게 하여, 좌절시키려는 매국노의 함정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이 탐욕으로 망할 전쟁을 시작했다면서, 해방이 멀지 않았음을 기뻐하였고, 다시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때는, 망하는 것이 시간문제임을 분명하게 알고, 그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이른바 징병과 징용이라는 일제의 마지막 광란의 칼끝에서, 어떻게든 개죽음을 당하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외치고 있었음으로, 일본이 패망할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친일파 서정주의 말은, 국민을 속이는 또 하나의 거짓말일 뿐이다.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의 바다에서, 서정주와 박정희를 비교하여 보면, 당시 박정희는 일반적인 친일 부역자 즉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된 제국주의 군인이었을 뿐, 세간에서 선동하는 것처럼, 이른바 죄질이 무거운 악질 또는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굳이 친일의 죄를 논한다면, 박정희는 서정주나 최린(崔麟)같은 식자들처럼, 친일청산의 대표성을 가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음에도, 마치 친일이라는 역사의 바다에 박정희가 전부인양 호도하면서, 친일 부역자 선정 기준을 박정희가 가지고 있던 소위계급으로 정한 것은, 박정희라는 현대 정치사의 거물을 제물로 삼아, 정적(政敵)들을 제거하려는 쇼일 뿐, 우리 모두가 소원하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사의 정의는 아니라는 말이다.

부연하면, 만일 현대사에서 대통령이었다는 정치적인 의미만 없다면, 친일의 논죄에서 박정희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존재였으며, 소위 계급이 친일 반역의 기준점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친일청산의 기준점을 박정희로 하는 그 자체가 역사왜곡이라는 말이다.
이번에는 관동군 소위 박정희와는 다르게 친일청산을 외치는 이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영웅으로 만들어놓은 손기정을 살펴보자.

당시 선민의식에 도취되어있던 일본이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에 24세의 조선인 손기정과 남승룡을 출전시킨 것은, 조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세계인들의 앞에서 선전하고, 일본과 조선은 같은 조상 한 뿌리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내세워 조선인들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민족성을 없애버리고, 일본인화(日本人化)를 만드는 도구였으며, 손기정과 남승룡은 그런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친일파였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을 놓고, 일본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도구로 썼고, 일본에 저항하는 조선의 식자들은 조선의 민중들에게 민족의 우월성을 일깨워 자존심과 자긍심을 회복 일본에 저항하는 도구로 삼았지만, 정작 손기정 본인은 우리민족의 소원인 자주독립을 위해 손가락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일본의 신민화(臣民化) 정책에 동조, 1940년 28세의 나이에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군수산업에 자금을 조달하던 조선저축은행(朝鮮貯蓄銀行)에 입사한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명백한 친일 매국노의 행위였다.

손기정이 애국자라면, 최소한 올림픽 이후 민족진영에 가담했어야 하는데, 그는 총독부의 배려 속에서 호의호식한 황국신민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손기정은, 황국신민이 되면,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조선 민중들에게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항일의지(抗日意志)를 버리도록 유도 선전한 일제의 도구였으며, 그 자신은 전형적인 친일 매국노였을 뿐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가 “골인지점에 이르러 슬펐다.” “시상식장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유니폼의 일장기가 보이지 않도록 월계관수를 가슴으로 끌어당겨 감춘 애국자였다.”는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널리 선양했던 친일 매국노 손기정을 국가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국가와 민족의 정의를 논할 것인가? 순국선열들과 후손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일제시대 조국을 배반하고 동포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매국노들을 단죄하는데, 별것도 아닌 관동군 소위 박정희는 “매국노”라 하고,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항일의지(抗日意志)를 버리고, 일본에 동화되도록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친일파 손기정은 “영웅”이라 부르고 있는 오늘의 친일청산은 국가 권력에 의한 역사왜곡이며,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대저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정권, 어느 집단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준을 정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나치스 부역자들의 색출과 처벌에 엄한 잣대를 적용하는 독일이 이러한 기준을 정하였는가? 프랑스와 이스라엘이 그러하였는가?

이따위 엉터리 기준을 정하여, 민족의 정기를 어지럽히는 이들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현대판 매국노 집단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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